깜짝세미나

4월 5일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탄생- 강의후기

작성자
김지현
작성일
2019-04-08 18:16
조회
176
(1) 나의 첫 호기심

어린 시절 우리 집 책장에는 ‘딱다구리 도서관’이라고 100권짜리 전집이 있었는데, 그 중 <알라딘의 마술램프>라는 책 한권이 내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서 갖게 된 호기심의 시작이자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복수의 대상이 독이 발린 책장을 넘기며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목이 잘려진 채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는 의사 이반의 지독함과 치밀함, 도둑이 숨어 있는 단지에 끓는 기름을 부어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범한 여자 주인공,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만으로 문이 스르륵 열리도록 설계된 보물 창고와 금화를 숨겨 놓은 올리브 기름단지. 초등학교 5학년 때 걸프전이 발발하여 이진숙 특파원이 방탄조끼 입은 모습으로 그곳의 참상을 보도하고, 911테러로 ‘악의 축’ 발언이 회자되어도 나에게 이슬람 문화권은 동화 속 주인공, 삽화로 본 소품, 궁궐, 사막으로 이미지화된 신비로운 세계였다.

작년 7월 <규문>에서 이슬람 제국에 대한 공부와 여행이 기획되었을 때부터 나는 이 세미나를 기대하고 있었다.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강의를 맡은 규창씨가 무지는 순수한 것이 아니라 편견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다. 뉴스, 신문,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서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 데 우리가 어떤 시대와 공간에 대해서 순수하게 백지일 수 있겠는가. 왜곡과 과장, 맥락을 이어붙이지 못한 정보의 파편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 있겠지. <그리스 로마신화> 머리글에 이윤기 선생님께서 신화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같은 것이니 그것을 따라 천천히 가보자고 말씀하셨듯이, 나에게 규창씨의 글과 강의는 이슬람세계로 인도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인 셈이다.

 

(2) 얼굴이 가려진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에게 계시를 받는 장면을 그려놓은 그림에서 무함마드의 얼굴은 하얗게 지워진 것인지 비워놓은 것인지 간에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해외토픽 뉴스에서 예수의 얼굴 형상으로 곰팡이 핀 치즈 한 덩어리가 높은 가격으로 미국 경매 사이트에서 팔렸다는 기사와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도 점안식이 아주 중요한 행사라고 들었는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성인에 해당되는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렇게 해놓으니 나는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영화 ‘십계’에서 우상숭배를 금지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새긴 ‘돌판’을 절대 숭배의 대상으로 내세우는데 반해 그 어떤 형상도 허락하지 않는 이슬람의 세계관을 현세적이라고 해석한다면 어떤 지점을 살펴보아야 할까.

상인이라는 직업, 여러 명을 아내를 두고 산 무함마드의 삶을 보면 금욕적인 모습을 강조하던 예수나 붓다의 모습보다는 확실히 낯설다. ‘재물’과 ‘여러 명의 아내’처럼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에 충실했던 무함마드를 인정하는 것을 보면 이슬람교나 믿는 사람들 모두 욕망을 억압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꾸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이들은 손해를 볼 자이다’라는 식으로 상인의 언어로 윤리를 설명한다는 것과 적혀 있는 글자 모양에서 리듬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암송을 통해 글자를 몸으로 느끼면서 현세의 실천 윤리로 삼는 경전, <꾸란>. 이번 세미나에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규창씨가 생각하기에 이슬람 문명권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모스크에 찾아가는 그들의 종교 생활 때문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자본주의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축적을 일삼고, 능력과 성취를 사유화 하는 사고가 지배적이라면, 이슬람문명권 사람들은 하루에 적어도 한번 이상 모스크를 찾아가는 데 그곳은 경건한 의식만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라고 한다. 규창씨가 방문한 모스크에서는 기도할 사람 기도하고, 어린 아이는 뛰어 놀고, 졸리는 사람은 잠시 쉬어가고, 여러 사람이 담소를 나누면서 공동체의 삶을 매일 경험하는 곳으로 그 때문에 개인의 불안이나 영광 같은 망상을 계속 허물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해줬는데, 나는 꽤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3)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

자기 조건에 만족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처한 환경은 항상 척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 날씨와 체력, 여분의 식량과 물에 대해서 매 순간 판단을 요하는 사막의 삶을 떠올려보면 적어도 우리는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막에서 낯선 자를 환대로 맞이하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아니면 적을 만드는 것보다 얼른 친밀감을 쌓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하다는 빠른 계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이라는 공간은 생존만큼이나 공동체 윤리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않는 약탈행위 ‘가주(ghazu)’의 흔적이 어떤 식으로 남아있는 지가 궁금했고, 소생 팀은 여행 중에 이란인들에게 이슬람 공동체 ‘움마’에 대해서 여러 차례 질문을 했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온 듯하다. 나와 소생 팀은 왜 그토록 낯선 자를 배려하고 품어주는 문화, 아니면 그것이 변형된 잔재라도 확인해보고자 했던 것일까. 사막이 낳은 그 공동체 문화를 맛보고 싶어 하는 문명인의 욕망, 호기심으로 납작하게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만큼 그 기예를 탐구하고 정리한 책들은 서점에 널렸다. 어떤 곳이든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타자를 맞이하고 돌려보내는 기예는 필요한데, 문명인들이 누리는 안전은 그것을 낳기는커녕 무력해도 당장 사는데 지장 없다는 식의 환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이 능력만 갖추면 저절로 해결된다, 또는 그게 더 우선이라는 사고방식 말이다 (내가 16년간 교육받은 학교에서는 공동체 윤리를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욕망과 호기심이 아닌 지혜를 얻고자하는 간절함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전체 8

  • 2019-04-09 09:43
    저는 이슬람에 대해 오해나 편견조차 없었지요. 그냥 무관심? 그냥 무지? 그런 거였지요. 그런데 저번 시간 샘의 인트로 강의와 무함마드,꾸란, 모스크라는 창을 통해 슬쩍 들여다본 이슬람은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답니다. 그래서 이번 금욜이 더 기다려집니다. ㅎㅎ 드뎌 지현쌤 고난의(?) 수행길에 첫 발을 내디디셨군요~^^ 감축드리고 응원합니당 ㅎㅎㅎ

    • 2019-04-09 09:50
      현숙쌤. 찌찌뽕!! 이런 동시다발적인 댓글이라니. 무시 이래의 시간에서 보면 5분의 시간 차는 거의 동시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 2019-04-09 13:54
      현숙썜, 수행의 길을 많이 가지도 못했는데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도 참석하시는 것이지요?

  • 2019-04-09 09:48
    그날 참 재미있었어요. 이슬람 하면 IS가 자동으로 떠오르곤 했었는데, 규창이의 발표를 듣고나니 새로운 이미지들이 그 자리로 조금씩 밀고 들어오네요. 인간의 얼굴을 한 종교 형상들에 익숙해진 저에게 얼굴 없는 예언자도 새로웠고, 무함마드의 상인의 윤리도 인상적이었어요. 당장 눈 앞의 이해득실로 이익과 손해를 생각했었는데, 내가 속한 장의 생태계를 고려하는 상인의 윤리라니. 그런게 가능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궁금해지네요.
    다음 발표도 기대됩니당. 부담은 갖지 마시라. 그냥 갔다온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이불 덮고 고구마 까먹으면서 듣고싶다. 오손도손,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면서 ㅎㅎ

    • 2019-04-09 10:11
      푸하하하~~ 무시 이래의 시간까지 들먹이며 ㅋㅋㅋ 근디 오늘 근무하는 날 아녀? 이런이런! 이 열정적 오지랍이라뉘!!!

  • 2019-04-09 12:27
    키야 쌤들 덕분에 이슬람 깜짝 세미나가 후끈후끈합니다~! 여러 모로 모자란 발표를 메꿔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ㅎㅎ
    더 재밌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을 기대하시라~

  • 2019-04-10 11:48
    사막의 조건과 타자의 윤리. 가주와 움마 전통을 귀동냥해서 좋았습니다.

  • 2019-04-24 11:56
    궁금했던,무시무시한? 이슬람 세계 맛보기에 동참해서 좋습니다.
    생생한 현장 체험을 나누어서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