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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탁Q 3학기 에세이 후기

작성자
이정수
작성일
2017-10-02 17:15
조회
134
한 학기 동안의 니체 공부를 마무리하는 에세이 시간. 3개조로 나누어 에세이 발표와 토론 그리고 채운쌤의 멘트가 차례로 이어졌습니다. 그 후론 뒤풀이도~~. 12시간 이상의 토론으로 풍성한 대화들이 오고갔으나 각각의 에세이에 대한 개별적인 멘트는 생략하고, 채운쌤이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신 전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 간략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은 차이나는 힘들, ‘힘들의 관계들의 우주다.

니체 이전의 형이상학은 존재를 중시했으나 니체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만들어 내는 힘들에 주목했다. 힘이란 존재의 근거를 내재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존재란 역동적인 힘의 결과로 나오는 산물이다. 힘 자체는 규정성(력)이 없지만, 힘들의 차이로부터 규정성이 생긴다. 관계 이전에 뭔가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자체가 큰 힘도 만들고 작은 힘도 만든다.

능동적 힘은 가치를 형성하는 힘이고 반응적 힘은 기존에 형성된 가치에 반응하며 지키려는 힘이다. 계보학은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가치의 기원을 찾아가서 그 가치가 처음부터 자명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가치를 전도하는 것이다. 니체는 기존의 선악 구분을 넘어서서 능동적 힘, 반응적 힘에 대해 말한다. ‘선악의 가치를 넘어서서 너의 힘을 능동적으로 써서 창조적으로 살라.’ 내 쪽에서 힘을 전환시키면, 힘쓰는 방식을 바꾸면 힘의 장이 바뀐다.

우주는 수시변역(隨時變易)한다.

생성의 세계란 관계에 의해 때에 따라 끊임없이 변역하는 세계다. 생성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운동중이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관점보다는 변역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생성이란 becoming(되어감, 되기)이다. 끊임없이 운동하면서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맺는, ‘차이화’하는 우주는 열려있으며 모든 존재는 외부성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힘에의 의지는 힘들이 다른 힘들과 부딪힐 때 발생하는 미분적 요소()이다.

힘에의 의지는 힘들의 관계를 변이시키고자 하는 것, 세계변화의 근거이다. 힘에의 의지는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우발성이자 발생적 성분으로, 힘의 배치와 힘의 방향을 비틀고 바꿀 수 있는 역량이며, 힘이 가진 잠정적 규정력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잠재성이다.

힘에는 힘이 계속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우발성이 내재해 있다. 힘들 자체는 1:1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다수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세계는 ‘준안정적 상태라는 안정적 리듬’하에 늘 변수가 작동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는 매일이 카오스, 무질서일 것이다.

 

개체는 개체화의 결과다.

개체가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차이들 때문에 개체가 돌아오고 차이로 인해 동일성이 변주된다. 동일성이라는 상태가 차이를 깔고 있다.

‘나’란 지금 여기서 행위하고 말하는 그것이 전부이지 그 이외에 무엇이 없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성이 바람처럼 지나가면서 내 힘의지의 배치를 변화시킨다. 힘의지의 전환을 위해서는 다른 힘의 개입이 필요하다. 나의 외부, 타자성들로부터 나를 바꾸는 힘을 얻어 보자.

차이화는 자신의 변화 역량이다. 어떻게 스스로 차이를 만들어가는 능동성을 가지고 타자들과 공존할 것인가?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의 규정성을 벗어나면서 새로운 차이를 생성할 것인가?

 

오해하지 않도록...

개념은 개념일 뿐! 힘 그 자체는 윤리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생성도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자기한테 맞는 렌즈로 자기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신체는 정신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연민은 삶에 대한 사랑이지만, 약하고 병들고 반응적인 삶에 대한 사랑이다.”(들뢰즈)

아픔을 나눈다는 것으로 서로의 관계를 바꿀 수는 없다. 연민은 부정적 힘의지에 의해서 촉발되며, 부정적 힘으로 서로 교감하는 방식이다. 고통에 공감하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힘의지에 의해 내가 건드려지며, 고통을 나누는데서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구나’ 하는 쾌와 위로를 느끼게 된다. 타인에 대해 연민을 갖든 안 갖든 내가 곧 타자임을 이해하자.

 

글쓰기...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에 생각의 길이 있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의식적인 행위이지만 그래도 글 속에는 무의식적인 것이 남는다.

 

느닷없이(?) 후기를 쓰게 되어 에세이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만, 채운쌤의 좋은 말씀들 한 번 더 돌아보시며 잠시(!) 니체와 차라투스트라를 떠나보내시기 바랍니다. 다들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고 푸코와 함께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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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09 21:18
    철학자의 개념을 도구로 쓰라던 샘의 말이 아직은 실감이 안 되네요. 생활에서 개념을 찾아 응용해보고 궁리해봐야할 듯한데 그러려면 개념이 명확해야할텐데 여기부터 쉽지 안네요 ㅋㅋ 내가 얼마나 연민에 쉽게 동조하는지 우주의 변혁이 나임을 깨닫는다는게 나란 힘의지의 결과라는게 그나마 한학기를 마치며 조금은 다가옵니다. 후기 정리글로 다시 한 번 복습! 담 학기도 푸코의 개념을 모두 함께 잘 헤쳐나가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