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11월 19일 선악의 저편 3주차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11-17 14:54
조회
95
공지가 늦었네요. 짧게 공지하겠습니다.

다음주 《선악의 저편》은 4장 ‘잠언과 간주곡’과 5장 ‘도덕의 자연사’를 읽고 오시면 됩니다. 비교적 분량이 짧아서 토론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4, 5장 이야기를 빠르게 마치게 되면 그동안 이야기 못하고 지나갔던 부분들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간식은 성희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지난주처럼 재미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한 구절 하나(더 많이 하셔도 됩니다) 정해서 질문&설명 준비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선악의 저편》 2장과 3장을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은 전반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2장은 내용이 복잡하고, 3장은 종교에 관해 굉장히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져서, 2장 3장 모두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길게 이야기 되었던 구절은 2장의 40절이었죠. 니체는 “깊이 있는 모든 것은 가면을 사랑한다.”라는 심오한 문장으로 40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 전체를 딱 떨어지게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여기서 니체가 패러디적인 표현을 통해 ‘깊이’와 ‘가면’ 사이의 위계를 비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면이라고 하면 보통 떠올리게 되는 것은 가면 뒤에 가려진 맨얼굴이죠. 때문에 가면은 맨얼굴(본질, 진실)을 감춘 외피(기만?)로 여겨집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면과 맨얼굴의 구분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덧없고 지리멸렬한 하루하루의 삶의 배후나 이면에는 어떤 진정한 의미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거나, 지금 이런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나 이외에 어떤 진실하고 통일적인 나를 따로 상정한다거나, 어떤 사건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들 너머에는 그 사건의 바꿀 수 없는 진실이 엄연히 자리 잡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드러나는 것과 숨겨진 것의 위계 속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무수한 오해에 가려진 진정한 이해를, 지금 드러나는 피상적인 것들 아래에 감추어진 깊이 있는 무엇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만약 ‘맨얼굴’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실재하는 것은 오류와 오해와 가상, 즉 가면일 뿐이라면? 그렇다면 맨얼굴과 가면의 위계는 우리가 만들어낸, 삶에 반하는 가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들뢰즈에 따르면 가면은 니체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니체에게는 모든 것이 가면”입니다. “그의 건강은 그의 천재성에 대한 제1의 가면이며 그의 병고는 그의 천재성과 아울러 그의 건강에 대한 제2의 가면”이고, 니체는 “바그너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파울 레조차도 자신의 고유한 가면으로 체험”했다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니체에게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가면 너머에 있는 진정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가면들을 부단히 바꿔 쓰는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다양한 건강상태와 그만큼이나 다양한 관점들, 사유들을 가로지르는 일. “니체는 하나의 자아의 통일성을 믿지 않으며 그것을 느끼지도”(질 들뢰즈, 《들뢰즈의 니체》, 철학과 현실사, 18쪽) 않았습니다. 세미나 중에 니체가 자신의 텍스트 속에서 매번 가면을 쓰고서 나타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게 생각납니다. 우리의 미션도 니체가 하고자 했던 참뜻을 찾는 게 아니라 니체의 가면놀이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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