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선악의 저편 마지막 시간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12-21 02:30
조회
226
지난 월요일. 《선악의 저편》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한 페이지씩 공통과제를 써와서 그와 관련한 채운샘의 코멘트 겸 강의를 듣는 시간이었죠. 이번 시즌은 짧기도 했고 에세이도 쓰지 않아서 그런지 뭔가 훅하고 지나간 느낌입니다. 부디 《도덕의 계보》도 함께해주세요! 아마 내년 2월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간단히 지난 시간을 복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어쩌면 그다지 놀랍지 않게도, 저와 영숙샘 정도를 제외한 모든 분들께서 ‘고귀함’을 가지고 공통과제를 써오셨습니다. 때문에 자연스레 채운샘 강의도 고귀함이라는 키워드에 중심이 맞춰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채운샘께서는 ‘니체가 말하는 고귀함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설명을 하는 대신, 우리가 읽은 책의 제목이 ‘선악의 저편’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니체는 ‘고귀함’을 정의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선악’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고, 고귀함이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튀어나온 가치라는 것. 그러니까 처음부터 니체가 도덕(선악)을 어떤 관점 속에서 비판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아무리 고귀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결국 좋은 게 좋은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반복하자면, 니체는 이미 존재하는 가치들 중에서 무엇이 더 옳은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가치들의 전제를 묻고 그로부터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고귀함을 말했다는 것.

그렇다면, 니체가 문제 삼은 ‘선악’이란 무엇일까요? 니체가 비판하는 선과 악, 그리고 그러한 가치들을 출현시킨 노예적 도덕이란 악을 근거로 삼음으로써만 선에 도달할 수 있는 수동적 도덕입니다. 기독교적 사유 속에서 선이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죠. 때문에 기독교적 도덕 속에서 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부정해야 합니다. 본능의 부정, 존재의 부정, 힘의 부정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니체는 ‘왜 우리는 언제나 타인을 통해서 밖에 스스로에게 이르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기독교적 도덕의 기원을 탐사합니다. 이러한 기원의 탐사를 통해 니체는 가치들의 기원에는 폭력과 무근거성만이 있을 뿐임을 밝혀냈고, 동시에 전혀 다른 도덕의 가능성을 발견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로마적 도덕이죠. 니체가 보기에 이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의 도덕을 입법합니다. 이들은 동일자적 무리에 들어감으로써가 아니라, 거리를 감지하고 차이를 통해 다른 것들과 만날 때 느껴지는 거리의 파토스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긍정에 이릅니다. 무엇에 복종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귀족들의 고귀함. 자기부정으로서의 도덕이 아니라 자기 예찬으로서의 도덕. 니체는 자기 시대의 도덕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 즉 선과 악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하는 과정 속에서 고귀함이라는 가치를 구성해냈다는 것.

‘니체와 여성’이라는 (저의) 주제와 관련해서 니체의 언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니체의 글쓰기는 공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읽는 내내 절절히 느끼는 바입니다^^; 우리는 흔히 텍스트를 접할 때 언표의 주체에 언표행위의 주체를 포갭니다. ‘한국인’, ‘남자’, ‘20대’ 같은 말들이 나오면 저는 자동으로 그 단어의 자리에 저 자신을 위치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니체는 그러한 읽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텍스트 속에서 단어들은 단어의 일반적 의미를 내포한 채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죠.

‘여성’이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니체는 여성의 변덕스러움, 종잡을 수 없음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그 자체로 긍정이나 부정을 내포한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장 속에서 작동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때로 여성은 형이상학자들의 관념적 세계를 넘어가는 존재로서 언급되는가 하면, 다른 경우에는 스스로의 가치를 입법하지 못하는 수동적이고 노예적인 존재로서 언급됩니다. 여기서 니체는 여성일반에 대해 규정하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어떤 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채운샘께서는 니체가 여성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가 아니라, 니체가 얼마나 여성을 고정된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니체에게 ‘사회적 약자’란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니체는 강자와 약자를 상대적으로 구분 가능한 척도를 가지고 이해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현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능동적으로 가치들을 만들어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지, 이미 주어진 ‘사회적’ 가치의 구도 속에서 누가 더 강하고 더 약한가 하는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니체는 누군가를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그를 보호한다는 것 자체가 그 누군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시간 후기는 여기까지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내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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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1 08:36
    ㅎㅎ 여행 직전까지 후기 쓰시는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시즌 소니 짧았지만 다시 시작해서 넘 좋았어요 ^^
    왠지 이름상 소니팀 친구같은 소생팀 모두들 무사히,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내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