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선성 (外編)

작성자
다음엇지
작성일
2019-01-13 23:30
조회
128
修繕의 繕인데, 繕字 자체가 훼손된 것을 '깁는다'는 뜻으로, 繕性이라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 살다 보면 마모되고 흔들린 것을 修理해서 가자는 것 입니다. 無爲自然의 道의 根本으로 돌아가기 위한 '存身'과 '得志'를 위해 '正己'라는 儒家적 修養論과 妥協(?) 折衷(?) 하는 결론이 재미있습니다.



繕性於俗,(俗)學以求復其初,滑欲於俗,思以求致其明,謂之蔽蒙之民。
이 세상에 살면서 (흔들리고 훼손된) 가지고 태어난 性을 잘 고쳐서, 학문으로써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구하거나,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본성을 어지럽히는 욕망의 상태에서 마음속으로 분별하여 맑고 밝은 지혜의 상태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을, 일러 막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한다.

· 繕性於俗: 已治性於俗矣. 注에는 다스린다고 되어 있으나 繕은 수선하다, 고친다는 뜻.
· 俗(두 번째): 없는 판본도 있음
· 復其初: 타고난 그것 자체를 회복하는 것 (復初, 復性)
· 滑: 亂也
· 蔽蒙之民: 蔽,塞也. 蒙, 昏也. 꽉 막히고 어리석은 사람 (출발점)

※ 다분히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論語, 爲政篇)"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봐야겠다, 孔子가 말했던 學과 思로는 안된다는 것 (疏1: 方更行仁義智儒俗之學, 以求歸復本初之性, 故俗彌得而性彌失, 學逾近而道逾遠也. 바야흐로 "仁義禮智" 儒俗之學을 행하여, 본래의 性을 되찾으려 하였으므로, 세속이 더욱 盛하면서 , 性은 더욱 傷하였고, 학문에 더욱 가까이 갈 수록 도는 더 멀어졌다 )

古之治道者,以恬養知;知生而無以知為也,謂之以知養恬。知與恬交相養,而和理出其性。夫德,和也;道,理也。德無不容,仁也;道無不理,義也;義明而物親,忠也;中純實而反乎情,樂也;信行容體而順乎文,禮也。禮樂遍行,則天下亂矣。彼正而蒙己德,德則不冒,冒則物必失其性也。
옛날 道를 닦은 사람들은, 자기 無慾으로써 지혜를 키웠다 ; 지혜가 자라나도 타고난 대로 살아서 머리를 써서 무엇을 일삼지 않는다고 하는 것, 이를 일컬어 지혜가 고요한 마음을 키운다고 하는 것이다. 지혜와 고요한 마음이 서로 잘 자라면, 조화와 질서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릇 德은, 중화지도인 것이고 ; 道는, 자연지리인 것이다. 德이 용납하지 않음이 없는 것(넓은 것)은, 仁이라 하고 ; 無爲自然의 道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어, 義라하니 ; 義가 밝아지면 만물과 가까와지는 것이, 忠이고 ; 마음 속이 순수하고 참되어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樂이고 ; 나의 몸과 마음에서 信이 행해지면 문리(정해진 조직, 관례 등 정해진 약속)에 따르게 되니, 예라 한다. 예와 악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仁義가 없이) 행해진다면,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이 자신은 바르게 했다고 하면서 자기의 덕을 강요한다면, 덕은 행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한다). 무리해서 행하게되면 만물은 반드시 그 본성을 잃게 된다.

· 恬: 靜也, '虛'로 봐도 되겠다. 無慾.
· 知生: 率性而照, 知生者也, 타고난 것을 따라서 비추니, 지혜가 자라나는 것이라함
· 知: 판단력, 明에 가깝다
· 性: 生也 (※ 장자에서 이 두 글자는 거의 같이 쓰인다)
· 和理出其性: 斯則中和之道存乎寸心自然之理出乎天性. 중화지도(和)가 촌심에 있게 되어 자연지리(理)가 천성으로부터 드러난다.
· 樂: 音樂也
· 遍: 偏也 (※ 논란은 많으나 문맥상 '두루'가 아닌 '치우친'으로 해석)
· 彼: ① 謂履正道之聖人也, 正을 행하는 성인. 자기는 완벽한 존재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덕을 타인에게 강요 (例: 堯, 舜) ② 禮樂也 (바로 앞의 것을 지칭),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예약을 바르게 하기를 주장하며 그것을 자신의 덕으로 제한하면(蒙, 강요), 덕이 갖고 있는 포용성은 사라짐, 둘 다 편협하게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만든다는 의미
· 冒(앞): 덮다, 容也
· 冒(뒤): 무릅쓰다, 나아가다, 강요하다 (注: 亂也)

※ 이 부분은 삶의 태도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즉,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각 개인은 매사에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 장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의 방식이 설명된다. 도의 작용으로 용납하지 못할 것이 없어지고, 이 세상 모든 것을 관할하게 되고, 그것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친밀성이 되며, 내면이 순실해져서 진으로 돌아가며, 몸과 모습으로 신을 행하며 문을 따르는 것.
※ 논어에서 仁을 실천하는 것은 내가 실천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실천을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다 안고 가는 것'은 유가의 인이 되기는 힘듬. 유가의 인의 실천에는 순서(序)와 나와 타자의 구별(分)이 있기 때문이다. 끝에가서 그것이 모두 다 包容된다고는 하지만.
※ 禮는 차별의 논리로 자꾸 나누고자 하나, 나누기만 하면 안되기 때문에 音樂을 통해 전체적 동일성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공유하여 동질감을 나누게 하는 목적이 있으나, 여기서의 樂은 보다 자기 省察적
※ 文은 꾸미고 장식하는 것으로 '거리'를 측정한다. 즉, 禮는 나를 중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

古之人在混芒之中,與一世而得澹漠焉。當是時也,陰陽和靜,鬼神不擾,四時得節,萬物不傷,群生不夭,人雖有知,無所用之,此之謂至一。當是時也,莫之為而常自然。
옛사람들이 혼둔의 시대에 있을 때,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서 깨끗하고 순수한 삶을 누렸다. 이 시대에 해당 될 때는, 음양의 기운이 조화롭고 편안했으며, 귀신도 시끄럽지 않았고, 사계절의 운행도 순서(절기)에 맞았고, 만물이 다칠 일이 없었으며, 모든 생명체가 일찍 죽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이 비록 지혜가 있어도, 그를 써 먹을 데가 없었으니, 이런 시기를 일컬어 至一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 시대에 있어서는, 의도적으로 기획해서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항상 자연의 상태였다.

· 至一: 천지인이 일치했던 시대를 지극한 일치의 시대로 표현. (이런 이상적인 세상을 생각해 보고 기준으로 두는 것은 노자, 장자의 특징이다. 합일, 동일로도 쓸 수 있겠다)
· 常自然: 自然, 謂自成也, 항상 저절로 '이루어졌다', 즉, 그 시대가 항상 최상의 상태를 이루었다. (※ 노자 51장: 夫莫之命而常自然, 아무도 명하지 않았는데, 늘 저절로 이루어진다. 맹자 만장 상: 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 아무도 도모하지 않았는데 이루어지는 것을 天이라 하며,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이르는 것을 命이라 한다. )

逮德下衰,及燧人、伏羲始為天下,是故順而不一。德又下衰,及神農、黃帝始為天下,是故安而不順。德又下衰,及唐、虞始為天下,興治化之流,[氵+梟]淳散朴,離道以善,險德以行,然後去性而從於心。心與心識知而不足以定天下,然後附之以文,益之以博。文滅質,博溺心,然後民始惑亂,無以反其性情而復其初。
덕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쇠해짐에 미치니, 수인과 복희가 처음으로 천하를 다스리는(관리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이치를 따랐지만 일체가되지는 못했다. 덕이 또 다시 내려와 쇠퇴하니, 신농씨와 황제가 비로소 또 천하를 다스렸다, 이렇게되자 사람들은 편안하게는 살았지만 천지자연의 이치를 따르지 못했다. 덕이 다시 쇠퇴하자, 요와 순이 비로소 또 천하를 다스렸고, 다스려서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흐름을 만들어 내서, 순박한 것을 희박하게 하고 흐트려뜨려서, 道에서 분리된 것을 善이라고 하고, 德을 거스리는 것을 실행(行)하게 되었다. 그런 연후에 타고난 것들이 사라지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제 너와 나의 욕망을 알게 되면서(피차간에 사심을 갖고 사심을 엿보게 되면서), 지혜로써 천하를 안정시기에는 부족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후에 그에 덕지덕지 가식이 붙고, 박식으로 그에 더 하였다. (교양미와 박식을 떠벌이게 되었다) 껍데기가 본바탕을 사라지게 하고, 많이 아는 것이 순소한 마음을 잠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후에 백성들은 비로소 미혹되고 혼란에 빠져,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그 최초 상태인 道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 德: 道와 德의 구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이야기할 때는 德이 된다.
· [氵+梟]: 澆也 얇다, 희박해 진다
· 險: 忤也, 위태롭게 한다기 보다는 무리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거스른다고 본다
· 文: 禮의 다른 이름이자 假飾, 文華,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敎養
· 博: 많이 아는 것, 博學 (※ 文博者心質之飾(장식))

※ 불을 가져 온 燧人, 이름에 '희생'이 포함되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伏羲 등, 무엇인가를 도모하여 일을 하고자 한 인물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由是觀之,世喪道矣,道喪世矣。世與道交相喪也。道之人何由興乎世,世亦何由興乎道哉!道無以興乎世,世無以興乎道,雖聖人不在山林之中,其德隱矣。
이것으로 보건데, 이 세상에 도가 사라졌고, 도가 이 세상에서 행해질 수 없게 되었다. 세상과 도가 같이 사라져 버렸다. 도를 체득한 성인이 있어도 어찌 이 세상에서 어떤 방법으로 뜻을 펼 수 있으며, 세상 또한 어떤 방법으로 도를 흥하게 할 것인가! 도가 이 세상에서 흥할 수가 없게 되었고, 세상도 도를 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으니, 성인이 산림에 몸을 감추지 않아도 (우리 곁에서 같이 살더라도), 그 덕은 숨겨진 것이다.

※ 세상이 도를 흥하게 하려면 道人을 써야 하는데, 그 道人이 뜻을 펼칠 세상을 잃었다

隱,故不自隱。古之所謂隱士者,非伏其身而弗見也,非閉其言而不出也,非藏其知而不發也,時命大謬也。當時命而大行乎天下,則反一無跡;不當時命而大窮乎天下,則深根寧極而待。此存身之道也。
버려졌기에, 스스로 숨은 것이 아니다. 옛날 이른바 은자라는 사람들은, 그 몸을 숨기지 않더라도 드러나지(세상이 주목하지) 않았고, 입을 닫고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며, 그 지식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시명이 크게 어긋나 있었을 뿐이다. 시대의 운에 맞게 되면 천하에 크게 시행되어, (지극한) 일치의 세계를 회복하게 하되, 남은 자취가 없고 (누가 했는지 알 수 없고) ; 시대의 운에 맞지 않으면 처지가 어려워지게 되면, (타고난 자연의 근본에) 뿌리를 더 깊게 파고 (유가적) 無何有之鄕의 단계에서 편하게 놀면서 기다렸다. 이것이 몸을 보존하는 도이다. (정신을 보존하는 것이 몸을 보존하는 것이다)

· 隱: 棄也, 버려진 것. 어떤 뜻을 갖고 스스로 숨은(自隱) 게 아니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 時命: 時運, 현실 조건, 환경, 분위기
· 深根: 深固自然之本, 자연의 근본을 견고하게 함
· 寧極: 保寧至極之性, 지극한 본성을 편안하게 보존함
· 待: 處常而待終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삶
· 存身: 修身也

※ 유가는 시대의 문제를 군주만의 문제로 연결시켰으나, 시대의 현실 조건, 환경, 분위기는 군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유가의 좁아 보이는 시각은 후대의 과거 제도의 틀 안에서, 蘊蓄하더라도 누가 나를 뽑아주어야 하는,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사회 구조도 생각해 볼 것

古之行身者,不以辯飾知,不以知窮天下,不以知窮德,危然處其所而反其性,己又何為哉!道固不小行,德固不小識。小識傷德,小行傷道。故曰:正己而已矣。樂全之謂得志。
몸을 보존하고자 (修行)했던 사람들은, 이런 저런 말솜씨로 지혜를 꾸미지 않았고, 지혜로써 천하의 이치를 다 알려고 하지 않으며, 지혜로써 덕을 끝까지 하려 하지 않고, 자신을 바르게 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르면서,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였으니, 또 (자신이 알고 있는 지혜로써) 무엇을 하고자 했겠는가! 덕은 참으로 小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고, 덕은 참으로 小識으로 되지는 않는 것이다. 小識에 매달리게 되면 타고난 덕을 상하게 되고, 小行에 매달리면 도를 훼손시킨다. 그래서 이르기를: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 따름이다. 전체를 즐기는 단계를 이르러 뜻을 얻었다고 한다.

· 行: 存也, 몸을 保存 또는 修行하는 것
· 不以知窮天下: 澹泊之情也 (※ 알 수 없는 것의 중심을 비워 놓는 사유)· 窮: 끝까지 추구하여 끝장을 보겠다는 것
· 危然: 혼란한 세상에서 자기 혼자서라도 중심을 잡고 (※ 危: 獨也正, 獨也高)
· 處其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 道固不小行: 遊於坦塗(평탄한길, 道) 즉, 小行은 道를 추구하지 않고 현실의 이익이나 출세를 추구하는 것 (※孟子: 從其小體爲小人, 告子上)
· 樂全: 道와 德의 본질
· 志: 성인이 되는 길
· 樂全之謂得志: 自得其志獨夷其心而無哀樂之情斯樂之全者也. 그 뜻을 자득하면, 홀로라도 그마음이 평안(夷: 平)져,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 그 즐거움이 온전해 지는 것

古之所謂得志者,非軒冕之謂也,謂其無以益其樂而已矣。今之所謂得志者,軒冕之謂也。軒冕在身,非性命也,物之儻來,寄者也。寄之,其來不可圉,其去不可止。故不為軒冕肆志,不為窮約趨俗,其樂彼與此同,故無憂而已矣。今寄去則不樂,由是觀之,雖樂,未嘗不荒也。故曰:喪己於物,失性於俗者,謂之倒置之民。
옛날에 뜻을 얻은 사람들은, 높은 관직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무위로써 일생을 지속했을 따름이다. 지금 세상에서 그 뜻을 얻었다고 하면, 높은 관직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높은 벼슬을 하고 있다고 해도, 하늘이 준 것이 아니며, 어쩌다가 나에게 와 있을 뿐이니, 잠시 寄託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올 때 막을 수 없으나, 그것이 갈 때 잡을 수도 없다. 높은 관직에 올랐다고 해서 그 뜻을 멋대로 부리지 않으며, 어려운 처지라고 해서 (부귀영화 등을 위해 자기 뜻을 굽혀) 세속에 영합하지 않으며, 어떤 처지에서도 다 즐겁게 살았다. 그리하여 걱정할 것이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 지탁했던 것을 떠나 보내게 되면 즐겁지 아니하니, 이것으로 보건데, 비록 즐겁다고 하더라도, 일찍이 황폐해지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外物에서 자기의 본래 모습을 잃어 버리고, 세속의 가치에서 타고난 성을 잃은 사람들을 本末이 顚倒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 軒冕: 수레와 면류관, 높은 관직 (※孟子: 仁義忠信樂善不倦,此天爵也. 公卿大夫,此人爵也. 告子上)
· 其無以益其樂: 그 무위로써 그 즐거움을 더함. 益은 지속성을 의미하여 일생을 그렇게 살았음을 의미
· 雖樂: 當樂軒冕時
· 荒: 荒亂 (亡失: 네 정신은 處其所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출세를 위해서 혼비백산 뛰어 다녔을 것이기에)
· 物: 外物也, 외적으로 과시하는 것

※ 사람의 삶의 조건에 가장 발목을 잡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로, 장자의 가난함을 일화처럼 이야기하나 이 당시의 신분 낮은 도시에서 굶주리고 사는 士 계층의 가난을 잘 드러내고 있는 책이 장자로 볼 수 있겠다. 극복하라고 해서 극복할 수 없는 것이 먹고사니즘. 이들은 혼란의 시대에 땅에서 내몰렸든, 대토지 소유자에게 편입된 農戶이든 먹고 살기 위해 노예처럼 살기 보다는 산으로 들어가든 도시에서 근근히 굶주리며 살아가는 노동으로 극복하기 보다는 빈민의 삶을 감수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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