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수중전 시즌2 역사강의 4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1-27 10:49
조회
75
171122 수중전 후기


수중전 4강은 <정관정요>에 대한 강의입니다. ‘정관의 치(治)’, 즉 당태종의 다스림을 본받아 나라를 잘 다스려보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는 책이죠. 일종의 제왕학 교과서로서, 후에 군주들이 훈련 받을 때 읽는 책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내용은 왕과 대신들의 ‘썰전’. 정치의 요체와 핵심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태종은 어떤 사람인가. 강의 내용을 종합하면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끝까지 안고 가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18명의 지식인들을 자기 곁에 두고 있었다 해서 ‘십팔학사도’라는 그림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인재가 많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 왕조인 수나라가 멸망하고 난립한 군벌을 정리하면서도 그들을 다시 등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자신과 이질적인 것도 안고 가며 자기화하는 당나라의 제국으로서의 면모가 엿보이지요. 이렇게 18명의 지식인을 한데 모아서 이세민(당태종)은 형의 목을 치고 칼을 찬 채 아버지에게 위협적인(?) 문안 인사를 올려 자리를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형의 측근들을 자기 밑에 두지요. 왕규, 위징과 같은 인물이 그렇습니다. 위징은 당태종 시대가 배경인 <서유기>에도 나오는데요, 아무래도 이세민의 형 이건성의 사람이었고 도가 쪽에도 연이 있다보니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주는 사람처럼 나옵니다.
당태종은 즉위하고 나서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합니다. ‘정관(貞觀)의 치(治)’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안으로는 제도를 정비하고 밖으로는 문물을 전파하여 당나라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교과서적(?)인데요, 정말 서쪽으로는 돌궐의 칸 칭호를 얻었고 동쪽으로는 고구려 정벌에 힘썼으며 한무제가 했던 봉선제도 지내고 귀족들의 칭호를 다시 다듬었지요. 거기다 외교정책으로 ‘기미책’을 써서, 공주들을 주변 나라로 시집보내 당나라의 문화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공주가 한 명 시집가면 거기에 딸린 식구들만 해도 한 동네를 이룰 정도였는데요, 그런 공주의 패션이 주변국들을 하나둘씩 사로잡았던 것이죠. 이렇게 주변국에 대한 문명유화책도 훌륭하니 후대에 ‘다시 행해야 할 정치’로 ‘정관의 치’가 거론될 만도 했습니다. 거기다 인재들에게 그렇게 잘해서 필요하다면 수염까지 잘라줬다고 하니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던 황제였던 것이죠.
그런데 정관 13년 위징의 상소문을 보면 ‘왕이 변했다!’고 써 있습니다. 사치, 교만, 방종은 기본이요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 되었다고요. 감정기복이란 사람이 늙어서 더 이상 생각의 유연함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일까요? 우쌤은 아무리 잘하는 황제도 10년이 마지노선이라고 하셨지요ㅎㅎ 어쨌든 이런 상소까지 받아든 당태종은 정말 자기 사람은 계속 데리고 간다는 일관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태종의 부인들도 참 쟁쟁합니다. 먼저 장손왕후(문덕순성왕후)가 있습니다. 선비족 계열의 대부족장 집의 딸이었다고 하는데요, 정치가 안정되는 데 공을 세웠다 하여 훗날 양귀비와 비교되어 존경받는 왕후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칙>이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책도 썼고요.
그리고 부인 중에 무측천이 있습니다. 원래 그녀는 무재인이라는 이름의 당태종 후궁이었고, 황제 사후 절에 들어갑니다만, 다시 고종의 왕황후가 궁궐로 불러들입니다. 왜냐하면 라이벌 손숙비를 해치우기 위해서(!) 다시 궁궐로 온 무측천은 고종의 딸을 낳고 왕황후와도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걸! 무측천은 자신의 딸을 죽이고 그 죄를 왕황후에게 뒤집어씌워 해치워 버린 후 황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황제 둘을 연달아 폐위시키고(중종, 예종) 본인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요. (고속승진?!) 나라 이름도 주(周)라고 바꿉니다. 유일하게 나라 이름을 바꾸고 황제가 되어 연호를 쓴 여자가 되지요.
무측천, 즉 성신황제가 다스리는 시절은 우리나라 역사와도 연관이 깊다고 합니다. 이때 신라로 군대를 파견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까요. 성신황제도 당태종처럼 자기 학자 그룹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낙양으로 천도하여 장안의 귀족을 억압하고 과거로 인재를 등용했지요. 거기다 궁에 기거하며 역사를 기록하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후에 <정관정요>도 ‘공무원 역사가’ 제도가 있었기에 만들어졌지요. 이런 성신황제의 정체를 ‘武周의 치’라고 합니다.
이렇게 측천무후가 황제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군벌 집안의 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신세력의 딸이라 직접 군 세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쌤께선 왕실의 여자들을 볼 때는 왕의 총애를 얻고 자시고간에 우선 친정 세력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측천 이후의 황실 족보는 한바탕 아수라장입니다만, 후에 당현종이 되는 이융기가 정권을 잡습니다. 이융기는 무측천의 딸 태평공주 세력을 제거하고 무측천에 의해 폐위되었던 예종을 복위시키지요. 그리고 2년 후 황제가 됩니다.
당현종의 정치는 “개원(開元)의 治”라는 칭호가 붙습니다. 슬로건은 “당태종의 정치를 다시 한 번” 그리하여 720년, 하남 개봉 출신의 ‘공무원 역사가’ 오극에 의해 <정관정요>가 완성됩니다.
<정관정요>의 구성은 10권 40책 287항목입니다. 각 권마다 신하들과 당태종의 문답이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지요. 정체의 본질, 인재등용, 후계자교육, 유가정치론, 경제론, 법... 이중 태자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답이 정리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네요. 모든 황제들의 걱정은 결국 아들 걱정입니다. 아들은 많으면 서로 싸우고 적으면 덜떨어지고(?). 이러니 황제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불로장생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인간 되라고 선생 붙여줬더니 앙심을 품고 선생에게 자객을 보낸 왕자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목숨 걸고 하는 태자의 스승노릇... 하지만 제아무리 용을 써도 장자계승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경우는 중국 역사에서도 손에 꼽는다고 합니다.
<정관정요>의 키워드는 “극언무은(極言無隱)”입니다 숨기지 말고 할 말을 다 하라는 것이죠. 신하에게 기탄없는 조언을 구하는 당태종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심지어 <정관정요>의 마지막 장은 ‘사치, 교만, 오만하고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왕이 변했다!’라는 내용의 위징이 올린 상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언로가 열려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우쌤은 태자 시절부터 함께 하던 인재들은 물론 그 후에 거둔 인재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당태종의 모습은 군신관계라기 보단 일종의 ‘의형제’ 관계에 가깝다고 합니다. 지난 삼국지 시간에 들었다시피 의형제 관계는 북방 유목민의 풍습이지요. 이는 선비족 계열의 군벌이 당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중국이 계속해서 주변과 섞이며 존재해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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