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수중전 시즌 3 역사강의 3강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3-30 18:46
조회
70
전 ‘선비’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높은 뜻을 가지고 현실과 전혀 타협하지 않는 굳건한 절개! 궁핍해도 지조를 지키는 청렴한 모습! 이런 표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역사에서 이런 인물들은 몇 없더군요. 그리고 조그만 불편도 견디지 못하는 제가 이런 표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좀 웃긴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시간에 바로 그 표상에 딱 들어맞는 선비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야, 고사(高士)!

고사를 살피기에 앞서 《고사전》을 지은 황보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은 황보씨고, 이름은 밀입니다. 황보밀은 후한말 황건적의 난을 평정한 대표적 인물 중 한명인 황보숭의 손자지만, 처음에는 공부에 뜻이 없어 가산을 탕진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나중에 숙부, 숙모에게 입양되어 혼나고 20살에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늦은 만큼 더 불이 붙었는지, 중풍으로 몸이 마비되어도 책을 읽을 정도로 학문에 매진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그를 서음(書淫 : 책벌레)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몸이 아팠을 때는 의학서를 읽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실험체 삼아 침술을 익혔는데, 나중에는 침구학의 대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저서 중 《황제삼부침구갑을경》은 지금도 교재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시대를 살펴보면, 우리가 《삼국지》로 알고 있는 후한말 ~ 위진시대에 ‘고사’라는 인물 유형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즉, 신분은 낮으나 학식이 높은 선비들이 대거 많아진 시대입니다. 이들은 정계를 비롯해 여러 명사와 인맥은 있으나 찾아가지 않고, 권력자가 부르거나 찾아와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쌤은 고사들에게 “나아가지 않고, 어디서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不就 不知所終)”는 문장이 자주 쓰인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문장은 신선들에게도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고사는 아니지만 고사에 비슷한 대표적인 인물이 제갈량입니다. 제갈량은 평민출신으로 유비를 만나기 전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세 번 찾아올 때까지는 일부러 벼슬에 나아가려 하지 않았죠. 간혹 권력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고사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고사라는 인물 유형이 하나의 유행처럼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왜 하필 이 시대에 고사가 등장한 게 신기했습니다. 1강에서 살펴봤듯이, 이때는 이민족의 침입, 외국인의 유입 등 이질적인 것이 들어오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괴이한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시대에서 은둔하면서 뜻을 지키는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지금 저의 머리로는 딱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똑같이 난세였던 전국시대에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왜 하필 위진시대에 등장한 걸까요? 비슷한 시대 고사와는 약간 다른 죽림칠현과 같은 유형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대의 모습을 다채롭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남은 강의를 들으면서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ㅎ

고사(高士)란 학식이 높아 품행은 고상하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은둔형 군자를 말합니다. 고사란 단어는 황보밀이 《고사전》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재밌는 것은 고사에 공자와 백이숙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황보밀은 〈고사전서〉에서 옛 인물들 중에서 고사를 선별할 때 자격조건으로 “왕공(王公)에게 몸을 굽히지 않고, 이름은 살면서 죽을 때까지 훼손시키지 않는(身不屈於王公, 名不耗於終始)” 점을 꼽았습니다. 그러니까 황보밀이 보기에 공자와 백이숙제는 권력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공자는 대사구란 높은 벼슬을 하기도 했고, 평생 자신을 기용할 사람을 찾아다녔다는 점에서 고사와 들어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굶어죽은 백이숙제의 경우에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황보밀은 정말 권력에 뜻이 없었다면 바로 수양산으로 갔을 텐데, 그러지 않고 주나라 문왕을 찾아간 것은 권력을 통해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공자와 백이숙제를 고사로 분류하지 않는 것은 황보밀의 해석이지만, 그 역시 권력을 멀리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서진시대 무제(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는 황보밀을 여러 차례 초징(招徵 : 황제가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말)했지만, 황보밀은 모두 거절하고 대신 책이나 보내달라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무제는 황보밀의 사람됨을 알았기에 정말 책 한 수레를 보내줬다네요. 하하. 이런 점 때문에 황보밀 본인도 후세에 고사로 분류됐습니다. 어쨌든 그가 어떤 인물들을 고사로 분류했는지 책을 보고 싶네요. ㅎ

황보밀은 〈고사전서〉에서 자신의 기록의 의의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고양지사(高讓之士)란 말을 하는데, 뜻이 높고 벼슬을 사양할 줄 아는 인물들이 있기에 탁세(濁世)임에도 불구하고 악행을 개선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황보밀은 사마천과 반고가 고사를 너무 간략하게 다뤘기 때문에 자신이 고사를 새로 편집했다는 것이죠. 그렇게 요 임금부터 삼국지의 위나라까지 90명을 간추린 것이 《고사전》입니다. 그런데 피의, 왕예, 설결, 허유, 포의자, 경상초, 노래자, 증삼, 안회, 원헌 등 《논어》나 《장자》에 나왔던 익숙한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우쌤은 《장자》에 나오는 인물 중 16명이 《고사전》에도 나오기 때문에 익숙하겠지만, 다르게 그려진 이야기도 있어서 《장자》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재밌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유명한 허유의 이야기만 소개해보겠습니다. ㅎㅎ 부족하다 느끼신다면 직접 읽어보시죠!

《장자》에는 요가 허유에게 천하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장면까지만 있었죠. 여기에 더해 《고사전》에서는 소부(巢父)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허유가 평소 권력을 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요 임금으로부터 양위를 부탁받게 된 것이라며 그와 절교하고 강물에 귀와 눈을 씻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요 임금의 양위를 거절한 허유가 강물에 귀와 눈을 씻어버리자 하류에서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고 있던 소부가 상류로 끌고 가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는 허유와 절교하고 소부가 귀와 눈을 씻는 게 포인트라면, 두 번째는 허유가 귀와 눈을 씻고 소부는 송아지에게 그런 물조차 먹이지 않겠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게 두 번째 이야기인데, 이것은 다른 데 나오지 않고 《고사전》에만 나온다고 합니다. 우쌤은 이처럼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고사전》에서 나오기도 하고, 다른 데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사전》을 봤네요. 다음 시간에는 《신선전》과 《열녀전》입니다. 동시대의 죽림칠현, 고사와는 또 다른 인물유형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러면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_ _)
전체 2

  • 2018-03-30 19:08
    황보밀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네요. '입양되어 혼나고' 이 부분에서는 빵 터지기도 했습니다. ^^ 서음 황보, '고사전'을 쓰고 '고사'가 되다! 멋지군요.

  • 2018-04-03 13:22
    이 재미난 얘기를 놓치다니~~ㅠ 동아시아 인간학을 탐구해볼 자는 필히 위진 시대로 향해야 할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