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수중전 시즌 3 역사강의 4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4-06 18:38
조회
90
저번 시간에는 '고상한 선비' 즉 고사(高士)를 다룬 텍스트인 <고사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지요. <춘추>, <예기>, <역>, 등등 유교적인 책을 읽고 공부하지만 권력에 결탁하지 않으며 자신의 절개를 지키는 선비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더러운 정치판과 안 놀겠다고 선언한 고사들이 산속을 차지하고 앉아 황제가 찾아와도 머리털 하나 안 보여줬다면 다른 한편에는 신선들, 책을 읽는다면 약 제조 관련 실용서(?)만 읽고 어떻게 하면 불로장생하고 승천할지에 대해 골몰하던 세속적 욕망의 끝판왕(!)들이 있었습니다. 신선담에서 전하는 신선들이 하는 일이라면 몸에 좋다는 건 다 먹어보고 다 해보고 권력자에 줄 대서 어떻게든 한 건(?) 해보려는 것이었지요. 이쯤 되면 우리가 아는 신선에 대한 이미지가 와장창 깨져나갑니다. 정치에 대한 텍스트를 줄줄이 읽는 선비들은 오히려 세속과 연을 끊은 반면 탈속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신선은 가장 세속적인 이 역설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쩌면 신선과 선비는 인간이 세속에 대해 갖는 욕망의 양단인 것 같습니다.

 

한대 이후에는 <열선전>, <신선전>이 <고사전>과 함께 유행했는데요.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통일 제국이 되자 평민들은 이제 출세길이 막혔다고요. 그러니까 혼란기에는 어영부영 틈새공략을 하면 평민으로 태어나더라도 출세할 수 있었고 그래서 평민출신 지식인들이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습니다만, 통일제국 이후로 그런 '틈새'는 정말 좁아진 것입니다. 이때 평민출신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은? 1. 그래도 공부한다!(-><고사전>으로~), 2. 공부는 이제 소용이 없어. 약을 팔자!(-><열선전><신선전>으로~) 이렇게 선택지가 나뉜 것입니다.

 

<열선전>은 유향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유향이 지었다고 하는 이유는 <열녀전>의 형식이 <열선전>과 비슷하기 때문이거든요. <열선전>은 40~200자 정도 되는 간략한 기사 뒤에 4언 8구의 시로 통일된 형식을 갖추었는데, 이것은 분량이 중구난방인 <신선전>과 다른 점입니다.

 

<열선전>은 '신선담'의 효시입니다. 신선이 나타나 이것저것 하고 사라졌더라 하는 이야기가 <열녀전>부터 이어진 것이지요. 우쌤은 이러한 신선담이 유행하게 된 그 이면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고고한 신선들의 이야기지만 그 이면을 보면 천박하리만치 세속적인 욕망을 담고 있으니까요. 불로장생하려고 누군가에게서 약을 강탈한다든가, 질투한다든가 등등. 이런 이면을 고고한 외면과 동시에 보는 것이 신선담을 읽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신선담에 나오는 인물은 대개 책을 읽지 않고 약초를 재배하거나 약을 제조한다고 합니다. 주로 (돈이 안 되는)침의 대가였던 고사들과는 달리 '약팔이'들이지요. 과연, 돈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이들은 주로 떠돌이 출신의 약장수, 사기꾼, 허접한 지식이나 정보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는데 처음에는 고위직 관리나 황제와 만나 출세를 도모합니다. 그런데 점점 민생을 돌보고 서민의 영웅 노릇을 하는 이야기가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아마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신선들의 유형도 다채롭습니다. 약팔이나 정보상은 예사요 200년 사는 것은 신선 축에도 못 들고요, 회춘은 기본, 예언이나 변신은 옵션입니다. 재밌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부활입니다. 예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이 몇 백 년 후에 나타나서 사실 내가 그 사람이었다고 하며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열선전>에는 신선이되는 방법이 그야말로 총망라 되어 있습니다. 기본은 우선 기연을 만나는 것이죠. 스승을 만나 비법을 전수받거나, 아니면 이상한 새나 물고기한테서(?) 비전을 전수받는 등 신선이 되는 것은 일단 무턱대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스승을 만나 비전을 전수받는가하면 맨땅에 헤딩, 뭐든 주워 먹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오곡을 먹거나/오곡만 먹는 경우가 있고요. 호흡을 잘 해보자! 아니다 체조를 하자! 등등 몸을 써서 경지에 오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 방중술을 통해 정을 빼앗고 보존하는 수련을 하려는 시도도 있고요. 그러다가 재밌게도 위진남북조 이후, 그러니까 불교가 들어온 다음에는 착한일을 잘 하면 하늘이 알아서 데려간다는 발상이 생깁니다. 어쨌든 기본은 인간에게 있는 세 가지 욕망, 뇌에 있는 제물욕, 배에 있는 식욕, 발에 있는 성욕을 제거해서 신선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속적 욕망으로 똘똘 뭉쳤는데 기본은 욕망의 제거라니 재밌지요.

 

등장인물은 대개 실존인물을 모델로 합니다. <장자>에 등장한 신선이라든가 <논어>에 등장한 광인들도 여기 등장하지요. <고사전>과 겹치는 인물도 더러 있습니다. 특별히 오래 살지 않아도 등장하곤 하는데 아무래도 기준은 '장수'보다는 '약을 판다' 인 것 같습니다. 신선이 되든 되지 않았든 그걸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를 파헤치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인 것이죠.

 

<열녀전>이 신선담의 효시라면 <신선전>은 현장 인력(?)의 보증서가 붙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인 갈홍이 도가에서는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집안 출신이거든요. 신선가인 증조부, 고위직인 아버지, 15세부터 연단비술을 가르쳐준 도사님들... 이렇게 컸으면 정말 숨 쉬듯 자연스럽게 신선을 목표로 살았을 것 같습니다. 마치 별 생각 없이 인문계 고등학생이 된 학생이 수능 봐서 대학 갈 생각을 하는 것처럼 ㅎㅎ 어쨌든 그런 환경 속에서 쓴 책이 <신선전>과 한방 역사에 아주 중요한 <금궤약방>, <금궤약방>의 다이제스트 <주후요급방>이 있습니다. 역시 신선과 약은 통하는 것이지요.

 

<신선전>은 <열선전>과 달리 편마다 분량의 편차가 심하고 찬이 없는데다 대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보량이 많지요. 그리고 이전에 신인, 방사, 진인 등 이전의 신이한 사람들이 '신선' 범주로 합쳐지게 되지요. <신선전>에 있는 이야기 유형 중 재밌는 것은 입산 전후의 시간입니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바둑 한판 두고 왔는데 시간이 몇백년 흘렀다더라 하는 이야기 유형이 <신선전>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게 장수하는 사람, 약 먹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부적을 붙이는 등 좀 더 '서민적(?)'인 이야기도 많아집니다. 급기야 천상에 올라 다시 서열 꼴찌가 되느니 지상에서 유유자적 하겠다는 인물도 나오지요. 이런 이야기를 전해듣다보면 신선담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떠나고 싶은 이 세상’과 ‘어떻게든 더 잘 살고 싶은 이 세상’이 있는 것 같아요. 첫시간에 들은 위진남북조 시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만, 그때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이란 이런 세상이라도 더 오래 잘 살고 싶다는 것이라서 대체 '속세'와 '탈속'을 긋는 경계는 어디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음 시간은 <수신기>, 좀 더 버라이어티(?)한 판타지 세계로 떠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지 기대됩니다ㅋㅋㅋㅋㅋ
전체 2

  • 2018-04-07 20:07
    신선하면 생각했던 고상한 이미지가 깨저버렸어요. ㅋㅋㅋ 이토록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 집단인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신기했던 건 한쪽에서는 고사가 활동하고, 다른쪽에서는 신선이 활동하는 게 신기하더군요. 같은 시대지만 어떻게 이런 다른 양상을 자아내는지! 그리고 이들의 모습과 별개가 아닌 기묘한 이야기들! 위진남북조가 생각보다 사람들한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발굴해낼 수 있는 이야기가 한가득인 것 같네요~~

  • 2018-04-09 14:56
    신선과 선비는 인간이 세속에 대해 갖는 욕망의 양단인 것 같다??!! 음~~그런 것 같기~~도. 어째 신선들 꼬라지가, 내 어렸을 때 마을 공회당에서 갖은 요설로 어리숙한 영감들 꼬드기던 약장수들이랑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지~~, 애잔함이 막 몰려오기까지 했으면 말 다한거지 뭐~~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