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 4 네 번째 시간(6.9)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06-07 23:59
조회
89
지난 화요일 우리는 《주체의 해석학》 1월 20일, 1월 27일 강의를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토론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조에서는 ‘노년의 특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알키비아데스》에서 처음으로 정의되고 표명되는 자기 배려는 통치행위와의 근본적인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자기 배려를 해야 하는 이유는 타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이고, 따라서 자기 배려를 할 필요가 있는 연령은 통치행위를 준비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국한됩니다. 그런데 기원후 1~2세기가 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기 배려는 이제 통치행위라는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자목적적 활동이 됩니다. 자기 배려의 궁극적 대상과 목표는 ‘자기’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결과 자기 배려의 특권적 연령은 청년이 아니라 노년이 됩니다.

자기 배려가 이제 평생에 걸친 사업이 되었기에 노년은 자기 배려가 완성되는 시기, 즉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한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으며 모든 즐거움과 만족을 내부에 설정할 수 있는 시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노년은 단순한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자기 배려의 부단한 과정으로서의 삶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지점으로 출현합니다. 세네카는 ‘서둘러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온갖 정념들로 인한 동요와 불의의 사건과 우리 자신의 탐욕과 권태 등등 온갖 것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에 추적당하는 것처럼 서둘러 우리의 은신처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확실한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노년이죠. 푸코는 세네카의 말을 정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서둘러 늙자, 늙기 위해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는 이런 생각이 정말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유로운 상태’를 늙음과 동일시하고 있는데, 제게 자유로운 상태는 언제나 젊음의 이미지와 연관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자신의 몸뚱이 외에 딱히 책임져야 할 것도 없는 상태,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자기 욕망과 충동에 따를 수 있는 상태. 아무래도 저는 이런 걸 자유의 이미지로 삼고 있었나봅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자유, 외부적 조건에 의해 제약되지 않는 상태로서의 자유의 이미지에는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의 차원이 배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행복을 안락한 상태와 동일시하는 것처럼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상태, 그렇게 할 수 있는 외부적 조건과 동일시하는 것. 이때에는 가령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그것이 발생하는 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로부터 자기 욕망과의 관계 속에서 능동적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는 여지는 없습니다.

그렇담 노년의 자유로움이란 무엇일까요? 저희 조 토론에서는 ‘세네카의 말에 공감한다’고 하신 (노년의?)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정말로 노년이 되니 번다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평화롭게 유유자적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고. 그런데 이때 난희샘이 고민해볼 만한 질문을 던져주셨습니다. 그러한 의미의 편안함, 자유로움이란 결국 안락한 외부적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 이 질문에 다른 선생님들도 공감하시며 나이 들어 퇴직을 한 지인들이 여행 다니는 낙에 살았는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우울해하고 있다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의 편안함은 나이든 버전의 소확행인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분명 세네카가 말하는 노년의 자유로움과 우리가 상식적으로 떠올리는 안정된 노후의 편안함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노년의 자유란 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단순히 인생의 한 시기이거나 외부적 조건이 갖춰진 상태가 아니라, 부단한 사유의 훈련과 고행의 결과물이며 그러한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자유와 평정이란, “모든 사고 · 불행 · 불운 · 몰락 등을 품위 있게 견뎌낼 수 있도록”(131쪽)하는 부단한 훈련 속에 있는 자, 가장 강도 높게 삶을 겪어내고 있는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긴장된 편안함인 것이죠.

다음 시간에는 《주체의 해석학》 2월 3일 강의와 2월 10일 강의를 읽고 오시면 됩니다. 메모 꼭 해오시구요. 간식은 미현샘과 미영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지난 시간 후기는 경혜샘께서 써 주실 거구요^^! 그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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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9 14:36
    사건들을 품위 있게 견뎌낼 수 있음으로서의 자유, 그것이 세네카가 말하는 노년의 자유의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둘러 늙어야겠네요! 무엇에 의해서도 동요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평정을 내어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그 능력을 함양하는 수양의 문제. <주체의 해석학>에 소개되는 자기배려의 큰 축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