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8주차 발표 후기

작성자
호정
작성일
2020-01-01 14:07
조회
221

찰진 후기



소생팀은 올해 5월에 러시아를 더 진하게 만나기 위해 그 나라의 역사, 문학, 철학을 미리 좀 훑고 가기로 했습니다. 먼저 1학기에는 세계 역사를 대략적으로 공부했고, 크로포트킨을 통해 무정부주의를 맛보았으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습니다. 매주 분량의 압박을 받으며 책을 읽었고, 공통과제를 했으며, 쪽지시험도 봤네요. 그렇게 7주를 마치고, 8주째에 팀별로 준비한 여행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아싸’ 러시아 역사

먼저, 역사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혜원, 규창, 현숙. 단촐하네요. ‘‘아싸’ 러시아 역사’라는 주제로 러시아의 역사와 여행지 제안을 했습니다. 여기서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준말인데요, 유럽의 중심이 되고 싶지만, 유럽의 변방에 머무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서 정체성에 혼돈을 겪고 있는 러시아를 의미한다고 하는군요. 러시아는 영토가 한반도의 170배라고 할 정도로 넓어 아무리 외부의 적이 침입해도 통치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잦은 침략으로 러시아의 국경은 유동적이었고, 이 때문에 오히려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혜원이는 지도만 띄워놓고 몽고 지배 시기와 러시아 제국까지의 러시아의 역사를 재미있게 설명해 줬습니다. 공간 감각 제로에 길치인 저로서는 그저 감탄만. 역사팀에서는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로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 부르크를 꼽았습니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성도이자 수도였는데, 18세기 초에 표트르 대제가 상트 페테르 부르크로 수도를 옮깁니다. 이 곳은 서구 유럽을 모방한 계획도시로 건설되었습니다. 원래 늪지대였는데 물을 퍼내고, 돌로 메우고, 말뚝을 박으며 땅을 개간했다고 합니다. 페테르 부르크는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매년 3만 명의 민중들이 끌려와서 추위와 강풍을 맞으며 물과 진흙탕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환경 속에서 일하다가 죽었고, 시체는 늪에 던져졌다고 하네요. 9년에 걸쳐 완공된 이 도시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약 200년간 수도로 기능했다고 합니다. 역사팀에서는 오늘의 발표를 위해 미리 두 도시를 다녀 왔다고 (주장)합니다. 현숙샘이 기억을 되살리며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 부르크의 여행 코스를 제안했습니다. 본인이 다녀왔다고 주장한 곳과 우리가 앞으로 갈 곳이 가끔 헷갈리긴 했지만, 천연덕스럽게 발표를 마쳤습니다.

 

                    



아나키즘으로 만나는 러시아

다음은, 철학팀의 발표. 혜연, 정옥, 윤순, 지영, 민호. 무려 다섯. 막강합니다. 철학팀은 크로포트킨을 매개로 아나키즘을 살펴보았는데요, 먼저 크로포트킨의 생애와 그의 아나키즘, 사회주의와의 차이, 상호부조론, 여행지 발표를 했습니다. 혜연샘은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아나키즘에 관심이 생겨 바쿠닌과 프루동의 책도 샀다고 합니다.(그런데 말입니다. 혜연샘은 과연 그 책을 다 읽었을까요? 왜 저는 자꾸 그런 데만 관심이 가는 걸까요?) 암튼, 짧은 준비 기간에 새로 책을 사서 읽어보고 정리하려는 그 열의에 감탄했습니다. 철학팀은 무려 다섯 명의 내용을 하나의 자료로 수합하기 위해 가장 많이 모여 토론을 했죠. 아나키즘은 맹목적인 무정부주의나 무질서주의가 아니라, 인간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외부의 강압적 권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질서는 중심과 주변을 상정합니다. 크로포트킨은 권력이 그토록 지키려 하는 질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질서는 아나키즘이 말하려는 질서와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크로포트킨의 질서는 ‘개개인의 노동은 만인을, 만인의 노동은 개개인을 위한 것일 때 이해관계의 결합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출현하는 질서’입니다. 그의 아나키즘은 개인의 역량과 공동체의 역량이 함께 커질 때 출현하는 자생적 질서의 회복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중앙의 권력이 없는 공동체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나키즘이 강력한 당과 같은 정치체로 합쳐질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하나의 세계관이나 사상의 통일을 거부하며 다원성과 창조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팀은 한 학기 동안 우리가 공부하고 배운 크로포트킨과 아나키즘을 정리한 발표에 뒤이어 시베리아를 여행지로 제안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데는 대략 4일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맞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도 러시아는 음...... 시베리아를 빼놓을 수 없죠.

 

        



톨스토이를 통해 만난 러시아 문화

마지막, 문화팀입니다. 영식, 호정, 혜림, 건화. 문화팀은 톨스토이를 징검다리 삼아 러시아 문화를 만나보았습니다. 톨스토이 자신이 직접 쓴 참회록에 드러난 그의 고민을 정리하였고, 전쟁과 평화에 나타난 러시아 귀족 문화와 풍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톨스토이는 평생에 걸쳐 삶의 의미를 탐구했습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학문적 탐구를 시작하지만, 학문은 인생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학문에 회의를 느낀 톨스토이가 향하게 되는 곳은 신앙입니다. 그는 신앙이란 삶의 의미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며 그러한 인식으로 인해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소박하고 참된 생활을 통해 삶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으로서의 신앙을 가난하고 학식이 없으며 자신들의 고된 삶에 만족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믿음으로부터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만이 ‘삶이 무의미하다’는 삶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삶이 의미 있는 듯 스스로를 기만하며 우매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삶의 무의미함을 의연히 마주하며 살아왔으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온 수십억의 인류가 있었기에 자기 자신도 지금 이런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불현 듯 자각하게 됩니다. 전체 안에서의 개체, 타자에 기대 존재하는 상호부조가 떠오르네요. 전쟁과 평화에서도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사색, 사람들 간의 연대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전쟁과 평화에 나온 귀족사회의 춤과 의복, 이콘과 관련된 풍습이 묘사된 대목을 찾아보고 관련 동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톨스토이 관련 여행지로는 톨스토이가 80생애 중 50년을 보낸 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와 톨스토이가 죽은 레프 톨스토이 역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톨스토이가 태어나고 살았던 곳, 그의 무덤이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 꼭 가보고 싶네요.

 

          



1905.1.22. vs 비스마르크

두구두구두구두구 두. 두둥. 혜림팀과 지영팀의 역사 배틀, 스피드 퀴즈. 각 팀별로 15문제씩 준비된 문제를 혜림과 지영이 조원들에게 설명해서, 더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클리어하는 팀이 이기는 팀별 대항 게임. 먼저 시작한 혜림팀, 예상 외로 혜림이 선전했네요. 키워드 중심의 스피드한 문답이 진행되는 가운데, 채운샘의 회심작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출문제 14개와 채운샘의 새로운 문제 1개가 더해졌는데, 이 새로운 하나에 발목 잡힌 거죠. 도무지 진도를 못 나가다가 어찌어찌 겨우겨우 15문제를 다 맞췄습니다.

다음은 지영팀. 스케치북에 쓰인 문제를 보는 순간 지영이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연습할 땐 물 흐르듯 입술 끝으로 새어나오던 말들이 콱 막혀버렸어요. 조원들의 천천히 하라는 말에 천천히 진행되던 스피드 퀴즈. 근데 새로운 문제도 아니고 기출문제에서 시간을 확 뺏기고 말았네요. 오늘의 유행어 ‘비스마르크’ 때문이었죠. 지영의 머리에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비스마르크. 러시아인이라는 지영의 주장에 답은 더 멀어지고. ‘하늘에서 내리는’(비)이라는 첫 글자 힌트를 잡고 천신만고 끝에 규창이가 답을 맞혔습니다. 이게 더 신기합니다. 죽고 못 사는 사이도 아닌 지영이와 규창이가 합을 맞췄네요. 혜림팀보다 더 오래 걸렸지만, 결과는 무승부. 하하하. 이 무슨 조화속? 채운샘의 회심작 ‘1905년 1월 22일’ 때문이었죠. 피의 일요일은 ‘1905년 1월 22일’인데, 혜림팀이 내놓은 답은 ‘1805년 1월 22일’이었던 거죠. 정답 맞출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알 수 없으므로 결과는 무승부. 아싸~~

 

          



합을 맞춰가는 공부

매 시간 저희의 과제에 멘트를 달아주시고, 질문과 요구 사항에 대해 정리해주셨던 선민샘께서 오늘도 함께 하셨습니다. 팀별 발표가 끝난 후 간단한 총평을 해주셨는데, 전반적으로 팀별 주제가 선명하지 않았다. 중심 없음, 자발성, 자주성이라는 아나키즘의 키워드는 개인들이 고민하기에도 좋은 주제인 것 같다. 이런 것들을 살려 어떻게 여행할지 각자의 주제를 미리 잡아가야 하지 않을까?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이 상호부조를 실천할 수 있는 과정인데, 그 부분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는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흥. 많이 웃으셨으면서. 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짧은 준비기간에 비춰보면 발표도 다들 잘 하셨고. 러시아가 땅이 넓어 어디에서나 외적이 침입할 수 있었지만, 특별한 하나의 힘이 통치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숫자가 많은 팀은 자원이 많기도 하지만, 그 에너지를 하나로 수렴하는 게 또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노력이 결과로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생각도, 나이도, 공부 이력도 다른 우리가 모여 함께 여행을 준비하고, 이렇게 저렇게 팀을 꾸려 서로 다독이며 개인의 역량이 공동체의 역량이 되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겠지요. 우리가 각각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이 힘이 되면 좋겠네요.

 

          



해외 독자 특별 이벤트 – 김치, 쌍화차 투척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해외 독자를 위해 ‘그림의 김치와 쌍화차’ 투척합니다.

채운샘. 해피 뉴 이억!!!

 
  • 깨알 재미 - 원래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성채’를 뜻한다고 하네요. 지금은 대통령의 관저와 정부 주요기관이 위치하는 러시아의 중심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지만, 원래는 성채가 있는 곳은 다 크렘린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전체 5

  • 2020-01-01 16:04
    한 치의 오차 없이 공정했던 문제를 저런 정의롭지 않은 이유로 비기게 만들어버리는 만행이라니! 내가 보기에 저건 지영팀 승임. '러시아인'이라는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비스마르크를 맞췄다는 건 기적에 가까움. 이로써 규창의 전생인연이 또하나 늘게 되나요...ㅋㅋㅋ 민호,건화,혜림은 혜원, 규창, 지영에서 책 한 권씩 선물하라! 선물을 주는 자는 명예를 챙기고, 선물을 받는 자는 이익을 챙기고!! 글고, 어쩐지 제가 발표를 실견하지 않은 것이 무척 다행이라(여러분들에게) 생각되는 군요.... 쓰읍.

  • 2020-01-01 16:16
    규창이는 이번 생에 성불해서 더 이상 전생인연을 만들지 않기를. ㅎㅎ. 글구 해외독자님은 아까운 발표를 놓치셨네요. 쌍화차 드시고 기운내서 호통치소서

  • 2020-01-01 17:28
    지난 주의 왁짜지껄이 고스란히 재생되는 찰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ㅎㅎ 1905.1.22의 찝찝함이 이렇게 들통나네요.
    글고 페테르부르크가 잔혹한 희생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네요. 러시아는 여러모로 냉혹한 나라인 듯 하네요

  • 2020-01-01 23:29
    허걱! 묵은해 마지막 날부터 새해 첫 날까지 맏며느리 노릇하며 제사 치르고 돌아와 컴텨 앞에 앉았더니만~~ 찰진(?) 후기라뉘!!
    찰진지 아닌지는 더 따져봐야겠지만 분명한 거슨, 불교팀에서 볼 수 없었던(?) 뭔가 생경한 생동감? 이랄까? 아주 씬이 났구만 씬이 났어! 흥!!
    명리학공부는 신청도 하지 않고... 두고보자 호정! 과연 러쉬아를 멀쩡한 두 다리로 갈 수 있쓰까??? ㅋㅋㅋ

  • 2020-01-03 11:59
    내용도 내용이지만, 신나게 놀았던 하루였습니다 ㅋㅋ 부실했던 점은 다음에 채우면 되고, 재미는 고대로 가져가죠!
    그리고 저는 이번 생에 부단히 노력해서 다시는 업을 쌓지 않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