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9. 놀자(遊)!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1-14 15:04
조회
494

9. 놀자(遊)!


흔히 중국인 관광객을 칭할 때 쓰는 말이 ‘요우커’다. 한자로는 ‘유객(遊客)’. 놀다, 여행하다 등을 뜻하는 ‘유(遊)’자와 나그네(여행자)나 손님을 뜻하는 ‘객(客)’자가 합쳐진 말이다. 놀러온 자 혹은 여행자가 바로 요우커, 유객(遊客)이다. 그런데 요우커를 말하는 우리의 뉘앙스에는 어떤 비하가 있다. 흥청망청 돈이나 쓰고 일 없이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요우커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 ‘유(遊)’자 때문이다. 유의 대표적인 뜻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놀다’이다. 그리고 ‘노는 자’라고 하면 어쩐지 의미 있는 일에 매진하는 것과 달리 근심도 없고 포부도 없이 한가한 사람, 한 마디로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런데 최근 유遊의 새로운 용례를 알게 되어 놀랐다. ‘유’자에 ’배움’이라는 뜻이 있었던 것.


천자문 중에 ‘맹가돈소(孟軻敦素. 맹가는 본바탕을 돈독히 닦았다)’라는 구절이 있다. 맹가는 맹자다. 주석에서는 그의 수학(修學) 과정을 어린 시절과 장년 시절로 나누어 알려준다. 맹자는 ‘어려서는 자혜로운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다.(幼被慈母之敎)’ 그리고 ‘장성해서는 자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長遊子思之門)’ 두 구절 모두 맹자가 어디서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말한다. 그런데 두 경우에 쓰는 동사가 다르다. 앞에서는 ‘피(被)’를 썼고 뒤에서는 ‘유(遊)’를 썼다. 우샘의 설명에 따르면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때 ‘피’를 쓴 것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베풂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다’에서 ‘피’자를 쓴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은혜를 입듯이 배움을 받으며 자란다. 맹자는 자라서 모친 품을 떠나 자사(子思)라는 스승 문하로 가는데, 여기서는 유(遊)자를 쓴다.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라면, 맹자는 자사의 문하에서 ‘놀았던’ 것이다.(長遊子思之門)


우샘의 설명에 따르면, 유(遊)를 쓰는 것은 특정한 학문만이 아니라 모든 생활을 함께 하며 배운다는 것 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스승 자사의 문하에서 맹자는 무엇을 어떻게 배운 것일까. 우샘 설명에 비추어 보면 맹자가 배운 것은 역시 몇 가지 지식만은 아닐 것이다. 맹자는 《맹자(孟子)》를 남겼고 이 책은 인간 본성(性)이나 국가의 정치에 관한 여러 생각을 담고 있다. 맹자에게 선대 지식의 습득이 없지 않았겠지만, 유(遊)를 쓰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맹자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통해 배웠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상조차 스승이나 동학들의 모든 말과 글, 마음들 또 그가 먹은 것과 그가 겪은 일, 갖가지 만남과 모든 시간 등의 결과물이다.


놀이(遊)는 결과에 구애받지 않는다. 놀이를 하다 엎어지고 혹 친구와 속상하게 되었을 때조차 우리는 다음날 또 같은 놀이를 같은 이들과 신나게 한다. 그것은 어떤 손해나 실패도 놀이의 기쁨을 훼손시키지 못함을 말해준다. 아니 놀이를 하는 자는 이미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래서 끝없이 하고 싶고 언제나 ‘실컷’ ‘맘껏’ ‘여한 없이’ 하고만 싶은 것이 노는 것이다.


맹자는 자사의 문하에서 ‘놀았다’고 한다. 이 구절은 맹자가 공부 같은 것은 안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배움의 과정이 그만큼 자유롭고 충만했음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어떤 결과나 대가에도 구애받을 수 없이 충만한 시간, 그것이 그가 자사의 문하에서 공부했던 ‘노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직은 어색하게 다가오지만 우리의 공부 역시 놀이와 같을 수가 있다!


우리에게도 분명 우리의 배움 자리를 놀이의 자리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실컷 놀아보도록 하자.


* 遊(유)
- 놀다, 즐기다, 떠돌다, 여행하다, 사귀다, 배우다, 유세하다, 놀이 등
- 용례 : 遊園地(유원지), 外遊(외유. 공부 또는 유람할 목적으로 외국에 여행함), 遊牧(유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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