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8. 나의 복전(福田), 나의 동학(同學)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1-07 12:29
조회
657
8. 나의 복전(福田), 나의 동학(同學)

내게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포켓 주역 책(《손에 잡히는 주역 인해》(대유학당))이 있다. 버스에서든 어디서든 쉽게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사자마자 채운샘은 “너 W샘 따라한거지~”하며 놀리셨다. “아니에요. 전 그저 주역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라고 말하고 싶지만 머리나 긁적일 뿐이다.

W샘은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연구실에서 공부하시는 중년 - 중년을 넘기고 있는? - 남성분이다. 이제 2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막내 딸이 있다. 사모님께서는 포항에서 병원을 하시는데 전에 보니 두 분은 항상 손을 잡고 다니시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엊그제 송년회 때 온 막내 따님과도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하시더라. 다정한 타입이시다! 다들 아시다시피 W샘께서는 포항에 살고 계신다. 전에는 그곳에 있는 제철소에서 일을 하셨지만 지금 선생님의 주업(主業)은 공부가 아닐지. W샘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셨다. 이제는 목요일, 금요일을 빼고 대부분 서울에 머무르며 공부하신다. 동사서독(전 ‘고전학교’)에서 오래 공부하셨고, 불교N, 절차탁마, 주역 강독 수업에서도 열공 중이시다. 얼마 전에는 삼경스쿨에 입학하셔서 나로서는 ‘학교 가는 길’이 든든하게 되었다.

연구실이 혜화동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에세이 준비 기간이 찾아왔다. 불교N, 동사서독 등 프로그램의 마무리 시기가 겹쳐 꽤나 난감해 했었다. 그 때 마침 W샘께서는 서울에 올라와 에세이 준비에 집중하기로 결심하셨고 덕택에 나는 W샘과 그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 그 때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원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새벽4~5시 정도에 하루를 시작하는 선생님의 일과는 완전히 공부와 함께 짜여져 있다. 일어나 산책을 하고, 사모님과 식사를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점심을 먹고, 다시 또 공부를 하고… 이것이 당시 들은 선생님 생활의 전부였다. 선생님은 또 수업 때 언급되는 온갖 책들을 다 찾아 읽으신다. 포항 도서관의 프리미엄회원이 아닐지.(^^) 많이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도 글쓰기를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은 쓰고 싶지 않다. 강의만 들으면 안되냐’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처럼 공은 들이지 않은 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공통과제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도 꽤나 많은 시간 신경을 쓴다. 선생님처럼 미리미리 책을 읽는 분은 처음 본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쓰고자 하는 내용도 시간을 두어 정하고 그 다음에는 본인이 쓸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쓰면서 완성한다. 이것은 단순히 ‘열심히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선생님께서는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댓글 하나까지도 나보다 더 빨리 읽으시곤 한다. 연구실의 자질구레한 일들도 눈에 들어오는 대로 챙기신다. 맛난 밥을 사주는 것은 예사다. 연구실에서 식사를 마치시면 어느새 향을 피우고 계신다. 우리 화장실에 1주일에 휴지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를 체크하시고 때에 맞게 가져다 놓으신다. 연구실 물건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청소기는 언제 어떻게 돌리는지, 이번 달 전기료는 얼마나 나왔는지, 쿤우샘은 요새 뭘 하고 계시는지, 지난 번 선물 온 귤은 썩지 않게 다 먹었는지 등등 보지 않는 일이 없고 신경 쓰지 않는 일이 없다. 선생님께서 공통과제 하나를 할 때에도 이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았다. 본인 공부가 중하고 그만큼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도 중한 것 아닐까. ‘중요하다’라고  말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신 것 같다. 공통과제 하나에도 그런 점들 때문에 더 마음을 쓰는 것 같다. 간식 하나를 준비할 때도 그러하다.

전에는 연구실에서 강의 등을 하는 선생님이나 선배들만 보였던 것 같다. W샘과 같이 공부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같이 공부하는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부하는 이가 있구나’, ‘이렇게 마음을 쓰는 이가 있구나’. 세미나 한 시간이 새삼 중요하게 다가왔다. 실은 의아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 건가?’ 가끔 친구를 만나면 연구실의 선생님들에 대해 이래저래 이야기를 한다. 한번은 그 친구가 “너는 정작 니 공부는 안하고, 거기 계시는 선생님들 좋아서 그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어쨌든 자기 좋고 또 행복하려고 이런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나는 내게 이상하게 감동을 주는 사람들 속에 아직은 더 있고 싶은 것 같다.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고 좀 더 오래 같이 공부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채운샘께서 ‘좀 가볍게 쓰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요번 ‘한문 앓이’에는 W샘에 대해 써보라고 권해주셨다. 그런데 W샘이 보실 것을 생각하니 정말 어렵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만 또 괜히 하고 싶지 않고 아껴두고 싶기도 하고. 어쨌든 써버렸다. 나보다 샘이 더 부담스러울 것 같은 글을 쓴 것도 같다.(ㅋㅋ) 쓰고 났더니 문득 ‘복전(福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불교 경전에서 종종 나오는 단어다. 곡식을 기르는 밭을 갈 듯이 수행자는 수행자의 밭을 간다. 부처님 법을 익히고 승가에 공양을 하는 일 따위가 수행자가 자기 밭을 갈고 자기 ‘복(福)’을 기르는 일이 된다. 내 생각에 공부하는 이에게 동학(同學)은 큰 복인 것 같다.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부터 그렇다. 이 복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무슨 밭을 어떻게 갈면 좋을까. 생각해 보아야겠다.
전체 6

  • 2016-01-07 14:29
    제철소...ㅋㅋ W샘의 전직은 대장장이?ㅋㅋ ㅋ

    • 2016-01-07 21:58
      아... 음,,, 제철소는 제철소입니다-ㅋㅋㅋㅋ

  • 2016-01-08 17:41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학. 복전. W샘께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

    • 2016-01-14 13:51
      저희가 미리 배우고 있겠슴미당~0~!

  • 2016-01-13 13:11
    난 아닌거 같은데, w선생이라니 누구죠?^^ 여튼 멋지십니다.

    • 2016-01-14 13:40
      'wook'샘 편도 쓸 수 있슴미다ㅋㅋㅋㅋ 암튼 그 더운 나라는 좋으심미까?! 어서 오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