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모아> 3월18일 4주차 수업후기

작성자
김은순
작성일
2021-03-22 20:25
조회
136

* 1교시 수업내용 : 명상, 『친우서』낭송과 입발제


* 2교시 수업내용 : 부파불교, 용수보살(나가르주나)의 생애.


<1교시>


윤지샘의 가이드로 시작되는 명상 수업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시작을 고요하게 하니 이어지는 수업 시간이 편안하고 집중도 잘 되는 것 같다. 또한 명상 직후 이어지는 『친우서』는 용수보살이 낙행왕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으로 부처님의 주옥같은 가르침이 녹아있다. 명상 후에 낭송해서 그런 건지 좀 더 바르게 이해되는 기분이다. 이번 시간에도 알아차리며 사물을 보는 연습을 했다. 지난주 우리들은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매일 5분명상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이번주 그것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실천한 도반은 없는 것 같았다. 명상의 이로움을 알지만(?)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잘 안 되는 게 현실이다. 목요일에 하는 명상이 일상에서도 이어지길  바래본다.


<2교시>


브라만교와 불교의 차이점

불교는 ‘우파니샤드’ 전통 속에서 나온 사상이다. 우파니샤드와 불교 사상은 아주 많은 개념들이 대립되지만 공유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불교의 사상적 맥락을 이해하려면 브라만교의 성전인 ‘베다’ 특히 베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우파니샤드도 같이 공부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동감한다. (정말이지 공부는 끝이 없구나!)

브라만교와 불교가 대별되는 지점은 ‘존재’에 대한 관점이다. 브라만교의 핵심 사상은 고정 불변의 실체인 아트만, 즉 ‘아(我)’라는 실체에 근간에 둔다. 고정 불변의 실체가 있어 끊임없이 윤회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불교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세계관을 갖는다. 존재가 그 자체로 있지 않고 변화한다는 안아트만, 즉 무아(無我)사상을 말한다.

서양 철학도 크게 이 두 가지라고 한다. ‘있다’ 이것으로부터 출발한 고대 철학자가 파르메니데스이고, 이 반대편에서 ‘만물유전’을 내세운 철학자가 헤라클레이토스라고 한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존재에 대한 입장 차이가 철학의 핵심적인 논의였다고 한다. 문득! 동서양의 고전과 철학과 문화를 넘나드는 채운샘의 세계는 어떠할까? 궁금하다.

부파불교의 전개

부처님 열반 직후 성문들은 불교의 전통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결집을 하였다.이것을 ‘제1차 결집’이라고 하며 이때에 경장과 율장이 성립되었다. 제1차 결집 후 약100년 뒤, 교단의 생활 규칙인 율이나 교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통일된 하나의 교단이 분열하게 된다. 서인도 중심의 보수적 교단인 ‘상좌부’와 동인도 중심의 진보적 교단인 ‘대중부’로 나누어진다. 불교 교단이 최초로 나뉘었기 때문에 이를 ‘근본분열’이라고 한다.

분열의 동기나 장소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린다. 남방 테라와다 전승에 따르면 바이샬리에 있는 몇몇 비구들이 ‘십사’(열 가지 계율)의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펴자 집회가 소집되었고(제2차 결집), 집회 결과 십사 조항은 지켜져야 한다는 판정이 났다고 한다. 그러자 십사 조항의 폐지를 주장하는 비구들이 대중부라는 교파를 세웠다는 것이다. 십사 중 가장 크게 문제가 되었던 항목은, 뿔로 만든 용기에 소금을 저장해서 가지고 다니는 관행(각염정)과 금, 은을 받는 관행(금,은정)이었다고 한다. 반면 북방의 전승에 따르면 마하데와 라는 비구가 아라한도 다섯 가지 결점(아라한도 정욕, 무명, 의심 등이 남아있다)을 가질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마하데와의 주장을 따르는 비구가 더 많았고 이들은 스스로를 ‘대중부’로, 나머지 비구들은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지키는 정통파라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상좌부’로 불렀다고 진술한다.

제2차 결집 이후 교단은 더욱 다양하게 분열한다. 아소카왕 때 ‘제3차 결집’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는 상좌부와 대중부인 근본2부를 중심으로 18개 혹은 20개의 부파로 파생된다. 제3차 결집에서는 경과 율에 대한 주석서로 논서가 추가된다. 제3차 결집의 결과 경•율•론이라는 삼장의 구조가 완비된다. 18개 혹은 20개의 부파들 가운데 사상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부파로는 대중부, 설일체부, 장로부(테라와다), 독자부, 경량부를 꼽을 수 있다.

대승불교의 등장

대승불교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 누구에 의해, 무슨 이유로 발생했는가라고 물으면 아무도 확실한 증거에 바탕한 답변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적인 자료에 근거해 보면 가장 주된 이유가 당시 불교계의 상황에 있었다고 본다. 수많은 전쟁과 박해 속에서 민중들은 종교적 구원에의 열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의 승려들은 자신의 깨달음에 보다 집중하는 사람들로 민중의 아픔과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다. 승려들은 승원에 은둔하며 다르마에 대한 연구를 중시했고 전문적이고 세밀한 아바달마의 이론 속에 파묻혀 대중들의 생활과 유리되었다.

승원의 아비달마 불교의 발전은 이후 불교가 논리적, 교학적으로 체계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전법에 나선 까닭이 민중을 교화하기 위함이었던 종교적 열정과 실천이 그들에게는 미약했다. 이런 부파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등장한 이들로 대승불교운동은 시작된다. ‘소승불교’라는 말은 이때 부파불교를 폄하하며 나온 말이다.

대승불교의 특징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은 무엇보다 서로 다른 경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부파불교의 경전인 니까야(아함)는 부처님의 교설을 성문승들이 전한 것이다. 이에 반해 대승불교는 『반야경』을 위시하여 『법화경』, 『화엄경』, 『정토경』… 다양하고 풍부한 대승경전을 독자적으로 구비하고 있다. 대승경전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7~8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으며, 부처님의 교설이 재 해석된 경전이다.

두 번째 특징은  ‘보살’의 이상이다. 부파불교에도 보살이라는 말이 있으나 그것은 부처님께서 성도하기 이전의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승에서의 보살이란 이타행이 강조된,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구제하려는 원에 따라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참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관세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 보현보살과 같은 분들은 재가인으로 최고의 경지인 보살에 오른 분들이다. 반면 문수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은 출가한 승려들 중에 보살이 된 분들이다.

세 번째는 불타관의 차이이다. 부파불교에서는 부처님 이전에 과거 7불과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그러한 사상을 더 밀고 나가서 과거나 미래뿐 아니라 바로 현재에도 모든 곳에 진리의 몸으로서의 부처가 현존하면서 진리를 현시한다고 가르친다. 아미타불, 아촉불, 약사여래 부처님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다른 곳에서 지금 우리와 함께 현존하고 계신다고 설한다.

네 번째는 수행법의 차이이다. 부파불교의 수행법이 8정도 라면 대승의 수행법은 6바라밀이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바라밀 가운데서도 다른것의 바탕이 되는 것은 지혜(반야)바라밀이며, 그에 바탕한 보시행을 강조하는 것이 보살의 길(道)이다. 대승불교의 토대가 되는 핵심 덕목은 모든 사물의 공성( 空性)을 증득하는 무분별지다.

다섯 번째는 불이(不二) 사상으로 진제와 속제, 번뇌 즉 보리, 생사 즉 열반, 부처와 중생, 제가와 출가가 다르지 않다는 사상이다. 깨닫기 전에는 이 두 개의 차원이 다르지만, 깨닫고 보면 양자는 분리를 넘어선 하나라는 것이다. 반면 부파불교에서는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로 나아가는 이원적 대립을 전제로 한다.

여섯 번째로 원(願)과 회향(廻向)사상이 있다. 부파불교에서는 인과응보에 따르는 업의 법칙을 중시하는데 대해서 대승불교는 원과 회향으로 업이 소멸되는 비약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업이 소멸되는 계기들이 대승불교에서는 중요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부파불교가 다르마(法) 중심의 불교라면 대승불교는 불(佛)중심의 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 부파불교는 “자등명 법등명” 이라는 부처님의 유언에 따라 자력적인 수행을 중시한 반면, 대승불교에 와서는 법신으로서의 우주적인 부처 내지 보신불로서의 아미타불,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등의 초인적이고 전지전능한 불•보살에 대한 귀의와 신앙이 중시된다. 불•보살에게 귀의하여, 그 힘에 의지해서 수행을 실천하고 구원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설해진다.

대승경전과 중론 그리고 용수보살

이런 대승불교의 흐름속에서 『반야경』은 초기에 성립된 경전이다. 특징은 일체의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는 공(空)사상이 핵심이다. 이런 공사상을 용수보살은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으로 삼는다. 우리가 앞으로 공부해나갈 『중론』은 『반야경』의 공사상에 대한 논서이다. 또한 『반야경』에서 설하는 공사상을 중도의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에 ‘중관사상’이라고도 한다.

용수보살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작은 석가모니라는 뜻에서 ‘소석가’나 불교 8종파의 시조라는 뜻을 담아 ‘8종의 조사’라는 수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활동하던 시기는 대략 150~ 250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대승경전이 활발하게 만들어진 시기이며, 상좌부의 논들도 발달해 가던 시기였다. 용수보살을 개조로 하는 중관학파는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단멸론과 상주론을 비판했고 공사상으로 논파했다. 이에 대한 논서가 『중론』인 것이다.

나가며

수업후기를 쓰다보니『중론』과 용수보살을 만나기까지 참 먼 길을 온 것 같다. 이제부터 일체법은 연기이기에 무자성이라는, 공이라는, 가명이라는, 중도라는 공사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잠깐 들여다본 『중론』이 어려워 좀 놀랬지만, 선생님 그리고 도반들과 함께 가다 보면 용수보살이 세상을 봤던 시선에 얼마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수업 마지막에 짧은 용수의 생애를 돌아가며 읽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같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다를수가 있구나!를 외치게 만드는 사람이다. 용수보살에 대해서는 다음 텍스트에서 다뤄지므로 이번 수업후기에는 올리지 않는다.
전체 1

  • 2021-03-23 17:24
    불교의 역사를 보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끝없이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부파 분열도 결국 다들 각자의 관점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실천하려고 했던 거였겠죠!
    은순샘의 후기를 보니 저희가 채운 샘의 강의로 매우 방대한 역사적 흐름을 공부한 거였네요. 용수보살의 예사롭지 않은 전기도 매우 흥미로웠고요. 다시 한번 공부 내용을 환기시켜주는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은순샘~ ^^

    스승님께서 이렇게 역사적 배경과 맥락들을 짚어주셨으니 이제 저희가 중론을 직접 돌파하는 일만 남았네요. 일단 이번 주엔 제 1품 '연에 관한 고찰' 입니다. 짧은 게송들이지만 읽어내기가 결코 만만치않음을 다들 체감하고 계신듯 하온데.... ^^;; 암튼 정성을 기울여 열심히 읽고 공부해서 목요일에 만나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