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모아> 3월 10일 3주차 수업후기

작성자
현화
작성일
2021-03-17 00:36
조회
133
<불티세미나  3주 차 수업 후기>

 

불티 세미나에서는 본 수업 전에 윤지 샘의 안내에 따라 30분 명상을 진행합니다. 이번 주에는 열린 알아차림에 이어 한지로 만든 연꽃을 명상의 도구로 두고 무심히 바라보는 형태 명상을 했습니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조차 들끓는 생각으로 인해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체험 했다지요^^; 윤지 샘은 명상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하루에 5분 정도라도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주일 동안 명상하기 과제를 내주셨어요.

명상 후 『친우서』를 읽고 각자 맡은 분량을 입 발제한 후 토론했고, 『중론』을 읽기 전 워밍업으로 하는 채운 샘의 이번 강의 주제는 붓다의 생애와 사상이었습니다. 불교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붓다가 입멸한 후 수 백년이 지난 뒤 불전 문학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붓다의 생애는 비역사적, 신화적인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이 신화를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불교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붓다의 호칭과 불전(佛傳)

2500년 전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고따마 붓다를 ‘석가족의 존자’라는 의미로 ‘석존’이라 부릅니다. 석존의 호칭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붓다(Buddha)’인데, 중국에서는 ‘불(佛)’, ‘불타(佛陀)’로 음사되었습니다. 붓다란 ‘깨달은 사람(覺者)’이라는 뜻으로, 초기불교에서는 석존 이전에도 여섯 명의 붓다가 존재했다고 설합니다. 석존은 그들 중의 한 분이라 고타마라고 하는 그의 족성에 따라 고타마 붓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는 인도음 ‘샤카무니’를 한자로 음사한 말로 ‘샤카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입니다.

유일신교인 기독교의 예수와 이슬람교의 무함메드는 신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들이기 때문에 신의 대리자로서 이들의 생애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약과 이슬람의 코란은 창시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붓다는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보통의 인간인 자기 스스로 삶과 우주의 본질을 통찰한 자였기 때문에 붓다의 생애 보다는 붓다가 깨달은 내용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초기불교 교단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교설)에 중점을 두었지 생애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답니다. ‘붓다는 어떻게 깨달을 수 있었는가?’ ‘무엇을 깨달았는가?’ ‘부처님의 말씀을 내가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가 주요 관심사였기에 붓다의 생애는 대부분 불전으로만 전해집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남방의 불전에서는 ①탄생 ②깨달음을 이루다 ③최초의 설법 ④열반에 들다 라는 네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설합니다. 북방의 불전에서는 ①도솔천에서 내려오시다 ②마야부인의 태내에 들다 ③탄생 ④출가 ⑤마귀 파순과 싸워 이기시다 ⑥깨달음을 여시다 ⑦처음으로 설법하시다 ⑧열반에 들다의 여덟 가지로 분류합니다.

붓다라는 한 인간의 생애를 서술하는 것은 결국 깨달음의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불상은 무엇의 상일까요? 불교 초기에는 탑만 만들어 졌었다가 기원전 1~2세기 경 불상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대중은 눈에 보이는 형상을 좋아하므로 깨달은 자를 시각화한 것이 불상이 된 것이지, 불상은 역사적인 석존의 모습은 아닙니다.

 

붓다 탄생 이전의 인도

니체는 “철학은 열대나 한대 지역에서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온대 지역은 루틴한 안정감이 있어서 색다른 사유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몸담고 있는 지형, 날씨와 같은 자연 환경과 그의 사유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붓다의 생애와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인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도는 히말라야 산맥에서부터 인도양에 이르기까지 국토가 커서 기후도 아주 다양합니다. 이런 광대한 자연환경 속에서 아리야인의 문화와 토착민의 문화가 상호 융합과 변용작용을 거쳐 각양각색의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져 힌두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인도는 자연환경과 민족, 종교와 언어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지만, 반대로 사상이 깊이 있게 발전하는 조건도 됩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이렇게 다양성이 공존하는 인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느 곳에 살건, 어떻게 무아와 공을 깨닫는 삶을 살 것인가?를 사유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다양성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고민했기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불교가 가능했을 겁니다.

 

붓다시대의 정치 경제적 상황

붓다 당시에 인도에는 바라문 중심의 문화가 성립되어 베다 종교가 출현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격변기여서 작은 군소 부족이 점차 통합되어 독재권을 가진 왕을 지도자로 받드는 왕국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초기경전에 16대국의 명칭이 나올 정도로 복잡한 정치상황에서 공화정과 군주정 두 가지 형태의 통치가 행해지고 있었는데,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인해 히말라야 산기슭에 인접한 공화국은 쇠퇴해가고 갠지즈강 유역의 군주국은 팽창해 나갔습니다. 붓다 당시 공화제였던 석가족도 군주제인 코살라국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

붓다시대에는 촌락사회로부터 도시국가로 변모되어서 직업의 분화, 생산기술의 향상, 대상인의 출현, 서방제국과의 교통로 확립 등 현저한 사회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기원전 800년 경 철기의 도입으로 농업 생산이 증대했고, 풍부하게 생산된 제품은 자급자족의 범위를 넘어 상품으로 거래되면서 상인계층이 출현했습니다. 도시 사이를 왕래하는 상인들은 교역로의 안전을 위해 무력을 지닌 왕족과 관계를 맺었고, 왕족은 상인들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화폐경제가 일반화되고, 도시를 중심으로 사회의 상층계급을 형성한 대상인 자본가와 왕족은 바라문들이 주장하는 사성제도(varna)에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농촌사회와 다른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가 발생하면서 바라문의 종교적 권위는 옛날의 빛을 잃게 되었고 비바라문적 또는 반바라문적 분위기도 강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의 발달은 종교적으로 보다 고차원적인 ‘해탈’을 추구하는 경지를 희구하게 되었고, 해탈에 관한 수행법과 사상이 정비되고, 윤회와 업의 사상도 일반화되었습니다. 바라문의 권위가 쇠퇴하면서 새로운 사상운동이 꽃피게 되는데, 슈라마나(사문)라는 출가유행자 그룹이 이러한 사상운동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은 반바라문적 색채를 감추려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학설을 제시했는데, 붓다도 이런 슈라마나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붓다가 창시한 불교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등 인간생활의 여러 면에서 기존의 전통이 의심되었던 격동의 시대에 태어난 신흥종교 중 하나였습니다.

 

붓다의 가계(家系)

붓다의 가계는 석가족인데, 석가족이 어느 종족인가에 대한 논의는 분분합니다. 서구학자들은 석가족이 자신들과 동족인 아리야계라고 논의하지만, 최근의 여러 학설들은 석가족이 비(非)아리야 계통의 종족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초기 경전을 근거로 붓다의 생애를 정치적 시각에서 재조명한 태국의 불교학자에 의하면 “석가 왕국이 설립되었던 네팔을 포함하여 오늘날에도 히말라야 산맥 기슭을 따라서 분포된 민족의 대부분은 몽고계 인종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석가족들은 틀림없이 몽고계 인종이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석가족이 아리야인이냐 비아리야인이냐 보다 중요한 것은 샤카족에 비비라문, 반바라문적인 요소가 농후했다는 것입니다. 석존에서 시작되는 불교가 비아리야적 요소가 짙은 인도의 토착문화적 토양 가운데에서 성립 발전되었다는 겁니다. 크사트리야인 샤카족에서 바라문 계급의 종교적, 사회적 권위가 공공연히 부정되고, 베다적인 제사도 수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석존이 슈라마나로 수행을 시작했던 것도 비바라문적 요소가 강한 동인도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초기경전인 숫타니빠따에 석가모니 붓다께서 직접 자신의 가문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석존이 출가해서 깨달음을 이루기 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에서 탁발을 하고 있을 때, 빔비사라 왕이 그의 태생에 대해 묻자 석존은 자신의 가계는 아딧짜(태양을 의미)이고, 가문은 사끼야, 즉 샤카라고 밝힙니다. 이 외에도 석존은 ‘감자왕(Okkakaraja)의 후예’이고 ‘석가족의 아들’, ‘태양의 후예’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붓다의 씨족이 아딧짜라는 것을 근거로 샤카족이 아리야계의 태양씨족이었을 것이라 말하는 학자도 있고, 정반대로 이를 근거로 비아리야계임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석가족의 나라

석가모니 붓다는 기원전 6세기 혹은 5세기에 북인도에서 네팔에 이르는 지방에 있던 석가국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사캬족의 나라에 대해서는 불교도의 저작으로만 알려졌지 인도의 정치사에서 그 실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석가족의 근거지는 까삘라밧투로 중국의 역경가들은 가비라성이라고 번역합니다. 석가족이 살던 지대는 히말라야의 남쪽 기슭으로 로히니강이 흐르고, 땅이 비옥하고, 목축에도 적당해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석가 일가의 가문의 이름을 고타마(Gotama)라 했는데, 그 뜻은 ‘가장 훌륭한 소’ 또는 ‘소를 제일 소중히 여기는 자’란 의미이므로 석가족이 농업과 목축을 주로 하는 종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석가족의 정치적 지위는 그리 높지 않았고 강대국인 꼬살라국에서 허가한 범위 내에서만 자유를 누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고따마 싯닷타가 태어나자 석가족의 수장인 그의 아버지와 국민들은 싯닷타가 최고의 군주가 되어 석가국을 꼬살라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싯닷타는 자기 자신과 자기 씨족의 지위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모한 유혈전쟁을 벌이지 않고 평화적으로 독립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내린 결론은 출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붓다의 탄생

붓다의 생애 가운데 탄생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가장 많습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크샤트리아 계급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입니다. 옆구리 탄생설은 인간이 수직적으로 태어나는 계보가 아니라 다른 방향인 수평적인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붓다의 ‘탄생게’는 가장 유명한 설화로, 경전들에 의하면 태자가 탄생하자 많은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태자를 두 손으로 받들었고, 하늘에서 두 줄기의 온수가 쏟아져 태자의 몸을 씻어드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태자는 선뜻 대지에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내디디고서 오른 손으로는 위를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사자후를 토했다고 합니다. 이는 나 자신이 곧 우주의 중심임을 선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붓다는 아버지 숫도다나(정반왕)와 어머니 마야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야 왕비는 출산이 임박해 오자 당시의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꽃이 만발한 나무 아래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반왕은 여덟 명의 현자를 청해 아기의 이름을 짓고 왕자의 앞날을 점쳐달라고 했는데, 현자들은 왕자에게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란 뜻으로 ‘싯닷타’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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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7 12:04
    와우~ 요렇게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시다니! 현화샘덕분에 잘 읽고 복습합니다~ ^^

    인간은 따땃한 온대 지역에선 철학을 하기 힘들다는 게 그렇게 주어진 환경이 편안하고 안락하면 굳이 치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죠? 그것이 자연환경이건 사상적 다양성이건 자신이 경험하는 번뇌이건 인간은 결국 주어진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사유하고 고민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 불교는 인도라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다양성'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고민했기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라는 관점에 수긍이 가네요.

    불교와 고타마 붓다의 등장을 공부하고 나니 이제 다음 시간 어떤 불교의 사상사적 배경에서 나가르주나의 중론이 등장할 수 밖에 없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오, 이제 담주면 드뎌 중론의 시대로 고고~ ^^

  • 2021-03-17 23:11
    대륙성 온대 기후에 살지만 정신 못차릴 정도로 다양한 상품들 속에 사는 우리의 조건이라면 사유해볼만 하네여~ㅎㅎ
    현화샘, 마치 새학기에 헤어진 친구를 바로 옆반에서 만난듯 혹은 멀리 티벳으로 유학간 친구의 소식을 들은듯 반갑고 든든하고 그르네요~ 후기 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