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여덟번째 시간(4.9)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4-07 09:43
조회
87
이번 주에는 5장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 절반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이번 부분에서 푸코는 전까지 하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작년 ‘비기너스’ 세미나에서 읽은 바 있던 ‘생명관리정치’가 그것인데요. 푸코에 따르면 17세기부터 권력은 물건, 시간, 육체, 생명에 대한 탈취와 징수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선동, 강화, 규율, 관리, 조절, 최대의 이용의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푸코가 ‘생명에 대한 권력’이라고 말하는 이 새로운 권력 메커니즘은 ‘육체에 대한 규율’과 ‘인구에 대한 조절’이라는 두 극을 통해 전개되는데, 성은 이러한 두 극의 교차점이었다고 하죠.

푸코의 유명한 정식이 나옵니다.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과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 군주의 권리로부터 생명-정치로의 이행. 죽게 만드는 권력의 이미지는 쉽게 표상이 가능하지만 살게 만드는 권력은 역시 잘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권력’하면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첫 번째 모델이죠. 그리고 그런 권력이 지금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닐 테고요.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래집단에서, 또 직장에서 우리는 (상당히 제한되고 변형된 형태이지만) 군주의 권리 같은 무엇을 목도하게 되기도 합니다. 노골적인 폭력의 이미지를 띠고 있기 때문에 이는 비교적 식별하기가 쉽죠.

그렇다면 푸코가 말하는 두 번째 권력의 메커니즘, 즉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요? 저는, 좀 거칠지만, 우리 삶에서 ‘관리’되거나 ‘개발’되지 않는 영역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는 것도, 이동하는 것도, 연애를 하는 것도, 건강을 돌보는 것도 무엇 하나 관리와 개발의 시선 아래 놓여있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힘보다는, 앉아만 있어도 음식을 배달해주고 효율적으로 이동하도록 해주며 세심한 케어를 받도록 하는 힘 앞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이 모든 조건들을 여전히 권력의 작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조건이 우리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인구’로서 관리될 때 통계의 숫자로 환원가능해지는 것과 같이, 관리하고 개발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수량화한다는 뜻입니다. 수량화되지 않는 것, 특정한 맥락 속에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은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고유한 맥락, 스타일, 영토로부터 우선 뿌리 뽑히고 나서야 우리는 각종 지표에 숫자로 기입 가능한 평균적이고 길들여진 존재가 됩니다.

저는 20~30대들의 취미가 이상한 방식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의문을 갖고 지켜보게 됩니다.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특히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남자들이) 수집가가 되고, 큰 관심도 없던 운동을 배우겠다고 온갖 장비를 갖추고, 값비싼 음향장비를 마련하고, 유튜브 보면서 옷에 관해 연구하게 된 것일지. 우리의 여가와 쾌락은 점점 더 관리-개발 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그럴수록 소비행위 자체와 구분하기가 애매해져가고 있으며, 그에 비례하여 기쁨은 줄어들거나 피상적인 것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취미를 소비하고 자기 취향을 공부하는 데에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삶을 잘 돌보는 거라고 여겨지는 이 모든 상황에는 어딘지 슬픈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 이렇게 완벽하게 자본에 빨려 들어가는 것일까? 어쩌다 취미를 자동차 고르듯 고르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취미’라는 말 자체가 의심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냥 아무튼 우리는 왜 이렇게 그냥 만나고, 그냥 놀고, 그냥 살기가 힘든지 막막한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보니 생명권력에서 얘기가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제 후기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금요일에는 <성의 역사> 1권을 끝까지 읽고 오시고 2페이지 분량의 짧은 에세이를 써 오시면 됩니다. 주제는 '섹슈얼리티, 지식, 권력'입니다. 이 키워드로 지금 시대에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 하나를 짧게 분석해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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