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2학기 첫 시간(4.23)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4-16 19:57
조회
86
한 주 뒤면 벌써 새로운 학기가 시작됩니다! 《성의 역사》 1권은 정말 재미있지만... 역시 매우 어려웠습니다. 짧은 책 안에 정말 다양한 층들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우리는 19세기에 이르러 성이 억압되기는커녕 ‘성’이라는 사변적 실체가 구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푸코와 함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성은 주체의 내밀한 진실을 이루는 중핵이자 인구의 조절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의 거점이 됩니다. 그리고 푸코는 고백의 절차에 대한 분석과 디드로 소설의 인용을 통하여 서양 문명이 ‘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성의 과학)를 발전시킨 유일한 문명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에 관한 앎의 두 가지 이미지(아르스 에로티카와 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를 비교하고 고민해볼 수 있었죠.

또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문제를 끌고 들어옵니다. 여기에서는 성이 육체를 훈육하고 그 힘을 최대화하여 이용하는 규율장치와 종으로서의 인간의 생명을 관리하는 생명정치의 교차점으로 나타납니다. 푸코는 과감하게, 자본주의의 발전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적 윤리가 아니라 성을 매개로 인간 종의 생명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권력의 기술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지적합니다. 또 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푸코는 부르주아 가족이 쾌락에 대한 억압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다른 관계들로 흐르지 못한 리비도가 폭발하는 장소, 성에 대한 감시 및 관리가 이루어지고 주체들에게 성적 특성이 부여되며 비정상적 성이 규정되는 동시에 배제되는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근대 가족은 혼인관계의 장치가 작동하는 곳이 아니라 성생활의 장치가 곳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족 내 범죄가 급증하는 동시에 정상가족의 해체가 활발히 논의되는 지금,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푸코의 권력이론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죠. 푸코가 자신의 권력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푸코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매우 중요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권리가, 마치 토지를 소유하듯 순수한 형태로 우리에게 속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문제는 훨씬 간단할 것입니다. 자유의 핵이 우리의 내부 어딘가에 마련되어 있고 그것이 가동되지 못하도록 막는 장해물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면,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연대해서 나쁜 권력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또 결백한 진실이 존재해서 우리가 어떻게든 그것을 손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면, 혹은 학문의 발전이 우리에게 객관성의 빛을 내려줄 수 있는 것이라면 세상사는 덜 골치 아플지도 모르겠죠.

그렇지만 문제는 주체도, 주체의 자유도, 진실도 모두 관계성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관계들. 앎은 그 관계들 안에서 구성되며 또 작동하고, 관계 속에서 주체로 만들어지는 중에 있는 우리는 그러한 관계 바깥에서 자유나 권리의 순수한 토대를 찾을 수 없습니다. 권력은 왕관이나 군대만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 또한 거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죠. 인식도, 자유의 추구도, 윤리적 실천도 이런 관계성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억압의 소멸로부터 자유를 찾거나 악의 절멸로부터 윤리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다른 방식으로 관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런 시도에서 자유와 윤리가 발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신의 광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적을 식별하도록 하고 윤리적인 것의 매뉴얼을 부여하는 진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봉기하는 앎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잡소리가 길었네요. 이제 우리는 8년의 공백기를 건너 《성의 역사》 2권으로 갑니다! 푸코는 어떤 질문을 품고 고대로 향했을지. 함께 알아보시죠! 다음주 금요일에는 《성의 역사》의 서론과 1장의 1번 ‘아프로디지아’ 까지 읽고 (1) 서론의 푸코 문제의식과 (2) 1장 1 아프로디지아의 내용을 각각 한 페이지 정도로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그럼 다음주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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