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읽기

9.8 스피노자 공지

작성자
헤원
작성일
2016-09-05 01:26
조회
611
9.8 스피노자 공지

4부에 들어서 스피노자는 드디어 어떤 방향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종종 강제될 정도의 운명의 힘’ 안에 있는 인간을 3부에 걸쳐 설명한 스피노자가 드디어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스피노자는 엄밀히 말해 자연에는 선도 악도 없다고 한 바 있습니다. 사실 자연에 실패라거나 실수가 있다고 느끼는 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세상을 보는 인간의 관점에서야 그런 것이니까요. 자연에는 실수가 없으므로, 선과 악도 없을 것입니다. 스피노자도 선과 악이 사유의 양태임을 설명합니다. 동일한 사물이 선도 될 수 있고 악도 될 수 있는데, 그건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일시적인 양태에 불과하다고요. 스피노자는 3부에 걸쳐 이미 우리가 형성하는 관념은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이 낳은 것이며 정서는 정서가 낳은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사실 어떤 사물에 대해 갖는 우리의 관념과 정서가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를 보인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피노자는 이 정서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의 전형’이라 볼 수 있는 관념을 형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선과 악은 결국 일종의 정서인데, 우리를 움직이는 욕망 역시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선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가? 그건 선이 정서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국 더 강한 정서에 휘둘리기 마련이며, 결국 선과 악을 정서로서 보존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인정하지 않았던 스피노자가 그 불안한 정서를 끌고 와서까지 선과 악을 새삼스래 강조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보다 좀 더 본성을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내 역량을 뜻하는 코나투스란 욕망을 의미하는데, 즉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양태이므로 결국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죠. 여기서 중요한 건 하는 것의 외부와 자기 원인의 비율입니다. 나에게 좋은 것을 내가 안다면, 그러니까 나에게 정서가 일어나는 매커니즘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어떨 때 내가 기쁨/슬픔을 느끼는지 보게 된다면, 그래서 잘 알게 되면 이것은 정서화되어 다시 욕망, 즉 내가 ‘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인간 본성의 전형’의 관념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까요?
스피노자는 ‘선’을 ‘아는 것’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이성을 사용하여 인식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의 최고선은 신의 인식, 즉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라고요. 결국 아는 것이 무엇보다 스피노자에게 중요한 문제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따로 추구할 ‘선’,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도덕관념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정해진 ‘선’, 행해야 할 ‘선’, 특별히 추구해야 할 가치로서의 ‘선’은 없다고 말입니다. 이미 조건은 다 주어져 있고, 우리는 여길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떠날 일도, 떠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여기서 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스피노자는 우선 1부의 ‘신’을 설명하고, 거기서 마치 게임 맵을 확장하듯 더듬더듬 나아가는 양태로서의 인간을 보여준 것일지도요. 그리고 4부에 이르러 드디어 이 맵의 방향성을 잡아줍니다. 이 앞이 깜깜하고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에서 나는 어떻게 외부와 관계 맺을 수 있는가. 그 첫 스텝은 일단 뭘 좀 아는 것이랍니다. 그것이 선이고, 악은 단지 선을 방해하는 것이라고요.
설명을 듣는데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에서 읽은 오이코스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어요. 집안일은 그때 냉장고를 열어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알뜰하게 그때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라고요. 생각해보니 때가 되어 당장 먹어야 하는 음식을 마련해야 한다면 일단 냉장고부터 열어서 뭐가 들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집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냉장고 재료를 어떻게 이리저리 조합하느냐에 달렸겠지요. 그리고 그 냉장고 속을 잘 파악해야 보다 더 다채로운 레시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고요. 그럼 ‘조건을 떠나지 못 한다’에서 출발한 스피노자의 윤리는, 그러니까 ‘인간 본성의 전형’은 생각보다 더 스펙터클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자세한 후기는 은정쌤이 쓰실 겁니다~
다음 시간은 4부 끝까지 읽어옵니다
간식은 현대쌤

다음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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