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읽기

스피노자 4부 후기

작성자
은정
작성일
2016-09-06 13:57
조회
479
 

3부를 간단히 마무리하고 드디어 4부에 들어갔다. 4부는 인간의 정념에 대한 예속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예속에 벗어나 어떻게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것인가? 각자의 방법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선악의 문제가 나온다. 우리에게 절대적인 선과 악은 있는 것일까?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정서에 따를 뿐이라고 한다. 아무리 참된 말, 진리라도 정서 화 되지 않으면 추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력하고 의지하여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고 한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선이라고 합리화한다. 우리는 내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은 항상 옳고 남은 틀렸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좀 더 시선을 확장해보면, 우리는 종교가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또한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가. 어떠한 커다란 명분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욕망과 이익에 의한 추동되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선악은 도덕적 차원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신 그리고 자연 안에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어떤 사건도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선악이란...사유의 양태나 사물을 비교함으로써 우리에게 형성된 개념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지만,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따라서, 선악이 발생하는 지점은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 속에 있다. 동일한 것도 누구에게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피노자가 선악의 문제를 말할 때 외부 신체가 기준이 되지 않는다. 기준은 나의 신체이다. ‘나의 존재에 유익한가’ 다시 말하면 ‘나의 활동 능력에 도움을 주어야하는가’ 이다. 우리 자신의 활동 능력이 증대하고 기쁨을 느낀다면 ‘선’이다. 반대로, 우리의 활동 능력이 감소되거나 슬픔을 느낀다면 ‘악’이 되는 것이다.

현옥샘이 질문했다. 우리에게 독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이냐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몸이 아파 죽음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기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 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단지 선악과가 아담과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안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담의 신체에 맞지 않았기에 독이 된 것이다. 그렇다. 내가 다른 모든 것과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맞고 공통관념을 형성한다면 우리에게 독은 더 이상 없다. 그런데 모든 것과 공통관념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것이 자유인의 능력 아닐까? 모든 것과 접속하는 신체. 어떠한 마주침에서도 매순간 적합하고 타당하게 인식하며 기쁨의 신체로 이행하는 능동적인 신체를 가지는 것.

스피노자는 덕이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덕을 선한사람 착한 사람을 떠올린다면, 스피노자에게는 즉, 코나투스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기를 보전하려는 노력은 덕의 첫째가는 유일한 기초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존재에 이익이 되는 것은 어떻게 알까? 이것의 역할이 이성이다. 이성은 무수한 마주침에서 우리에게 좋은 마주침을 가려낸다. 또한 본성에 맞게 관계를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현옥샘은 머릿속에 덕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자꾸 떠올려보라 한다. 덕스러운 모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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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6 18:49
    세심한 후기 감사요~^^
    4부 핵심이 뭔지 감이 확 옵니다.
    신체에 독을 막은 방법!!
    공통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좋은 것을 상상하고 경험해야하군요. 안그러면 내몸에 맞는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절대 알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