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3.6 니나노 일본어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9-03-08 14:44
조회
69
言葉にたよりすぎ、言葉にまかせすぎ、物自体に即して正確な表現を考え、つまりわれわれの言葉は物自体を知るための道具だという、考え方、観察の本質的な態度をおろそかにしてしまう。

要するに、日本語の多様性は雰囲気的でありすぎ、したがって、日本人の心情の訓練をも雰囲気的にしている。

われわれの多様な言葉はこれをあやつるにきわめて自在豊饒な心情的沃野を感じさせてたのもしい限りのようだが、実はわれわれはそのおかげで、わかったようなわからぬような、万事雰囲気ですまして卒業したような気持になっているだけの、原始詩人の言論の自由に恵まれすぎて、原始さながらのコトダマのさきわう国に、文化の借り衣裳をしているようなものだ。

말에 너무 의존하고, 말에 너무 맡겨서, 사물자체에 꼭 맞는 정확한 표현을 생각하는, 다시 말해 우리의 말은 사물 자체를 알기 위한 도구다, 라는 사고방식이, 관찰의 본질적인 태도를 소홀히 해버린다.

요컨대, 일본어의 다양성은 너무 분위기적이어서, 그 결과 일본인은 심정의 훈련도 분위기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들의 다양한 말은 분위기를 조종하기가 매우 쉽고 풍요한 심정적 옥토를 느끼게 해 기대할만 한 것 같지만, 실은 우리들은 그 덕분에 알 듯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만사 분위기로 해서 끝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될 뿐이다. 고대 시인은 지나치게 언론 자유의 혜택을 받아서, 마치 고대의  말의 영력이 행복을 주는 나라라는 것에서부터 문화를 빌려, 그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안고의 연애론은 코이()와 아이(愛)의 용법의 차이를 따져 묻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번 시간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아이(愛)는 더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이, 고이는 강렬하고 광적인 그리움의 감정이 담긴 말로 서로 뉘앙스가 다른데, 이는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죠. 이 둘은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뿐 당시 일본사회에서는 둘 다 불의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사랑을 설파하는 기독교가 도입되었을 때 사랑이라는 한 글자로는 신의 맑고 청순한 사랑을 표현할 수 없어 ‘신의 소중함’으로 번역할 정도였죠.

안고가 보기에 말을 사물에 맞게 물 자체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분위기를 덧입혀 안개처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었던 것이지요. 말 자체에 무게나 공허감이 있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안고의 이 지적은 일본의 고대 시인들에게까지 소급됩니다. 일본에는 말의 영력(言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에서는  ‘말(言:고토)’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事:고토)’이 동일한 개념이어서 말과 현실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말이 곧 진실이자 현실로 실재한다고 믿는 것으로, 말에 신이 있어 소리를 내어 말한 언어가 실제 현실에 무언가 영향을 준다는 믿음이 고대부터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이라는 국가도 언령의 힘에 의해 행복해지고 번영을 이루는 나라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고요. 이러한 일본의 문화를 고대 시인들이 많이 차용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한정선생님이 설명해주실 것 같고요. 안고는 이러한 일본의 문화적 분위기로 치장하고 있는 고대 시인들부터 그 기풍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물과 현장을 떠나지 않는 안고의 자세는 단어 하나에서 출발해 문화 전반까지 확대해가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마디의 말, 하나의 글자도 현장을 떠나, 나를 떠나 허공에 내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체 2

  • 2019-03-08 19:56
    일본어의 그 '분위기'에 끌렸던지라, 그런 분위기를 가져와서 찬양하는 기풍을 비판하는 안고의 글을 보면서 뜨끔 했었지요 ㅎㅎ
    언어의 나라, 일본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 2019-03-12 15:33
    말의 나라가 곧 일의 나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네요
    일의 나라에서 말의 나라가 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