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숙제방

어둠의 심연

작성자
보영
작성일
2017-10-10 22:05
조회
20
방랑의 탈을 쓴 이기주의

그 땅은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네. 우리는 정복당한 괴물이 족쇄를 찬 광경에는 익숙해 있네만, 그곳에는, 그곳에서는 어떤 흉악한 것이 자유롭게 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 아니야,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네. 실은 그것이 제일 고약한 일이었네. 그들도 어쩌면 인간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일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인상을 썼는데,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도 - 자네들과 똑같은 - 인간이라는 생각, 즉 이 야성적이고도 격렬한 소란이 우리와 아무 관련 없진 않다는 생각이었네. 흉측했네. 그래, 정말 흉측한 생각이었지만, 자네들이 사나이라면, 그들이 내지르는 무서우리만치 가식 없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네의 내면에서 약하디 약한 호응이 있었음을, 즉 자네들도, 태초의 밤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진 자네들도 이해할 수 있는 의미가 그 야만적인 소리에 담겨 있다는 의구심이 어렴풋하게 들었음을 인정해야 한단 말일세. (80)

말로는 방랑하는 구경꾼이다. 소설에서 말로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 즉 자연과 주변 인물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묘사한다. 그런데 그가 주변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기저에는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말로는 끊임없이 백인 제국주의자와 자신을 구분 짓는다. 그는 일반적인 유럽 제국주의 선원과 달리 돈을 바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모험심에 이끌려 무역선에 승선했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를 전형적인 영국인이 아니라 말한다. 그러나 영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쓰고 유럽 국적 배를 지휘하는 백인 선장 말로가 전형적인 영국인이 아니라면 전형적인 영국인은 어떤 특징을 지녀야하는 걸까? 동시에 말로는 비백인들과 자신 또한 구분 짓는다. 그는 어둠 속 세상을 세상이라 취급하지 않으며, 그에게 그곳에 사는 원주민은 차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흉악한 것이라 여긴다. 말로에게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은 오로지 '나'의 영역이고 나와 다른 흉악함과 흉측함은 '그들'의 몫이다. ‘그들’은 백인이기도 하고 비백인이기도 하다. 즉, 자신과 다른 모든 이는 ‘그들’이 된다. 말로가 자신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는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과 비슷한 조건 위에 놓인 백인들과도 자신을 구분하는 이유는 말로가 백인에게도, 비백인에게도 스스로를 의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백인들의 위선을 보았다. 그는 제국주의자 백인이 비백인을 착취하는 제국주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즉, 그는 ‘자네들도 이해할 수 있는 의미가 그 야만적인 소리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비백인과 백인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원주민을 인간으로 존중할 정도의 의식이 그에게는 없다. 그는 제국주의 사고구조를 그대로 답습하여 원주민을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호기심 가득한 말로는 방랑을 꿈꾼다. 빈 공간을 어떻게든 메워가는 제국주의 무역선은 말로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제국주의 시스템 하에서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고 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등한 원주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제국주의가 가진 폭력성을 보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제국주의를 존속하는 우열구조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 방랑객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남들과 다르다는 말로의 자기규정은 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하면서도 남들보다 낫고 싶다는 그의 이기심을 드러낼 뿐이다.
전체 1

  • 2017-10-11 08:30
    제국주의 자체의 모순과 위선도 비판할 줄 알고, 식민지에 대해서는 암흑이라는 규정도 할 줄 알고. 이것이 어째서 이기적인지? 이기심에 대해 더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