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재유 2~4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11-02 15:37
조회
45
《장자》는 번역본마다 구분이 다릅니다. 저희가 보는 텍스트는 그런 구분이 없는 상태로 읽고 있기 때문에 인물들의 대화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이게 지금 누구의 말인지 얼마든지 상상이 가능합니다. 가령, 저번에 노담과 최구의 대화를 봤었는데, 지금 다음 단락의 말도 노자로 보기도 하고 혹은 아예 다른 이야기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볼지는 각자의 상상력으로 스토리를 짜주세요~

 

今世殊死者相枕也, 桁陽者相推也, 刑戮者相望也, 而儒墨乃始離跂攘臂乎桎梏之間. ,甚矣哉! 其無愧而不知恥也甚矣! 吾未知聖知之不爲桁陽接槢也, 仁義之不爲桎梏鑿枘也, 焉知曾史之不爲桀跖嚆矢也! 故曰 絶聖棄知而天下大治.』」

 

지금 세상에서 사형당해 죽은 사람들이 서로를 베고 있으며, 버드나무 수갑을 차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밀고 있으며, 형벌을 당한 사람들이 서로 마주볼 정도로 즐비한데, 유가와 묵가란 자들은 항상 팔뚝을 걷어붙이고 수갑을 찬 이들 사이에서 애쓰고 있구나. , 심하구나! 부끄러움도 없고 수치를 알지도 못하는 게 심하다! 나는 성()과 지()가 수갑을 채우는 쐐기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고, ()과 의()가 질곡을 채우는 열쇠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으니, 어찌 증자와 사추가 걸왕과 도척의 시작이지 않음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을 끊고 를 버리니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침(相枕), 상추(相推), 상망(相望)은 인의정치가 행해진 이후에 형벌을 받게 된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효시(嚆矢)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화살’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증자와 사추 같은 군자의 등장은 주나라 걸왕과 도척과 같은 폭군을 알리는 신호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의 처음’이란 뜻에서 효시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皇帝立爲天子十九年, 令行天下, 聞廣成子在於空同之山, 故往見之, : 我聞吾子達於至道, 敢問至道之精. 吾欲取天地之精, 以佐五穀, 以養民人, 吾又欲官陰陽, 以遂群生, 爲之奈何?

 

황제가 일어나 천하를 다스린 것이 19년이 되자, 그의 명령이 천하에 행해졌다. 광성자가 공동(空同)의 산에 있다는 것을 듣자, 황제는 그에게 가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지극한 도()에 통달했다는 것을 들었으니, 감히 지극한 의 핵심을 묻고자 하오. 나는 천지(天地)의 핵심을 취함으로써 오곡(五穀)이 잘 자라게 하여 백성들을 기를 것이오, 나는 또한 음양(陰陽)을 주관함으로써 만물의 삶을 이루어주고자 하니, 그러려면 어찌 해야 하오?”

 

황제와 광성자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이거를 최구와 노담 사이의 대화 중에 들어간 액자식 구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화에서 황제는 인의정치를 행하는 사람의 대표적 모델로 등장합니다. 《신선전》에서도 광성자가 황제의 선생으로 그려지는데 도가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황제의 말 중에 오곡을 기르는 것은 인간 차원의 일이고, 음양을 주관하는 것은 인간을 벗어난 차원의 일입니다. 황제의 정치 목표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군생(群生)은 만물을 뜻합니다. 수(遂)는 만물의 삶을 제대로 살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廣成子曰: 而所欲問者, 物之質也., 而所欲官者, 物之殘也. 自而治天下, 雲氣不待族而雨, 草木不待黃而落, 日月之光益以荒矣. 而佞人之心翦翦者, 又奚足以語至道哉!

 

광성자가 말했다. “그대가 묻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지만, 그대가 주관하고자 하는 것은 사물을 해치는 것이다. 그대가 천하를 다스린 이래로, 구름은 기가 모여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비를 내리고, 풀과 나무는 [잎이] 누렇게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떨어지며, 해와 달의 밝음도 더욱 빛을 잃고 있다. 그대는 사람의 마음을 바쁘게 움직이는 말 잘하는 사람이니, 또 어찌 지극한 를 말해주기에 충분하겠는가!”

 

이(而)는 ‘너’ 여(汝)의 뜻입니다.

질(質)은 앞에서 나온 지도지정(至道之精)과 같이 사물의 핵심을 말합니다.

황(荒)은 ‘거칠다’, ‘황폐하다’라는 뜻으로 해와 달이 빛을 잃는 것을 말하는 글자입니다.

전전(翦翦)은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인의정치를 펼치면서 자기 뜻대로 자연을 재단하는 황제에 대해 풍자하는 대목입니다.

 

皇帝退, 損天下, 築特室, 席白茅, 閒居三月, 復往邀之.

 

황제가 물러나, 천하를 버리고, 한 칸 방을 만들어, 흰 띠풀을 깔고, 조용히 머문지 세 달이 되자, 다시 찾아뵙기를 구하였다.

 

특실(特室)은 VIP룸이 아니라 한 칸짜리 방을 말합니다.

 

廣成子南首而臥, 皇帝順下風膝行而進, 再拜稽首而問曰: 聞吾子達於至道, 敢問, 治身奈何而可以長久?廣成子蹶然而起, : 善哉問乎! ! 吾語汝至道. 至道之精, 窈窈冥冥至道之極, 昏昏黙黙. 无視无聽, 拘神以靜, 形將自正. 必靜必淸, 无勞汝形, 无搖汝精, 乃可以長生. 目无所見, 耳无所聞, 心无所知, 汝神將守形, 形乃長生. 愼汝內, 閉汝外, 多知爲敗. 我爲汝遂於大明之上矣, 至彼至陽之原也., 爲汝入於窈冥之門矣, 至彼至陰之原也. 天地有官, 陰陽有藏, 愼守汝身, 物將自壯. 我守其一以處其和, 故我修身千二百歲矣, 吾形未常衰.

 

광성자가 머리를 남쪽에 두고 누워있었다. 황제는 아래로부터 무릎으로 걸어가서는, 두 번 머리를 조아리고 물었다. “선생님께서 지극한 에 통달했다고 들었습니다. 감히 묻건대, 어떻게 몸을 다스려야 오래될 수 있겠습니까?” 광성자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좋은 질문이다! 이리 오시오! 내가 당신에게 지극한 를 말하주겠다. 지극한 의 정수는 그윽하고 어두우며, 지극한 의 핵심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보지 말고 듣지도 말며, 정신을 안아서 고요하게 하면, 형체는 장차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 반드시 고요하게 하고, 반드시 맑게 하여 당신의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당신의 정신을 흔들지 않으면 장생(長生)할 수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는 바가 없고, 귀로 듣는 바가 없고, 마음이 지각하는 바가 없으면, 당신의 정신은 장차 형체를 지킬 것이니, 형체는 이에 장생할 것이다. 당신의 내면을 삼가고, 외부의 감각기관을 닫아야하니, 지각하는 게 많으면 훼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당신을 위하여 대명(大明) 위로 올라가서 저 지극한 양()의 근원에 이르고, 당신을 위하여 요명(窈冥)의 문으로 들어가 저 지극한 음()의 근원에 이를 것이다. 하늘과 땅은 주관하는 것이 있고, 음과 양은 간직하는 것이 있으니, 삼가 당신의 몸을 지킨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자랄 것이다. 나는 그 하나를 지킴으로써 조화에 머무를 것이고, 나는 몸을 닦은 지 1,200년이 되어도 형체는 아직 쇠약해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포인트는 황제의 질문이 치도(治道)에서 치신(治身)으로 바뀐 것입니다.

순하풍슬행이진(順下風膝行而進)은 배움을 청할 때의 관습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요(窈)와 명(冥)은 《도덕경》에서 나오는 도(道)를 묘사하는 글자입니다. 혼(昏)과 묵(默)도 분별되지 않는 ‘도’를 묘사한 글자입니다.

정(正)은 사물이 인위적으로 다스려지다가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정(靜)과 청(淸)은 《도덕경》의 허(虛)와 같은 개념입니다.

여기서 지(知)는 견(見), 문(聞)과 같이 지각으로 얘기됩니다.

자장(自壯)은 인위적인 정치 속에서 살다가 자신의 본성대로 살게 되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우쌤은 화(和)를 신체를 그 날의 기운과 맞추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칭(稱)과 같이 저울질의 개념에서 ‘화’를 보니까 또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광성자가 말하는 1,200년 동안 수련했다는 얘기는 무위를 추구하는 도가사상이 신선사상으로 연결되기도 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皇帝再拜稽首曰: 廣成子之謂天矣!

廣成子曰: ! 余語汝. 彼其物无窮, 而人皆以爲有終., 彼其物无測, 而人皆以爲有極. 得吾道者, 上爲皇而下爲王., 失吾道者, 上見光而下爲土. 今夫百昌皆生於土而反於土, 故余將去汝, 入无窮之門, 以遊無極之野. 吾與日月參光, 吾與天地爲常. 當我,緡乎! 遠我, 昏乎! 人其盡死, 而我獨存乎!

 

황제가 두 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광성자야말로 하늘이라 이를만하다!”

광성자가 말했다. “이리 오라! 그대에게 말해주겠다. 저 사생변화의 이치는 헤아릴 수 없는데 사람들은 모두 끝이 있다고 생각하고, 예측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모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를 체득한 사람은 옛날에는 황제가 되었고, 후대에는 왕이 되었다. 반대로 나의 를 잃어버린 사람은 살아서는 빛을 받고 죽어서는 흙이 되었다. 지금 저 백성들은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니, 그러므로 내가 장차 그대로부터 떠날 것이니, 무궁(無窮)의 문으로 들어가서 다함이 없는 들판에서 뛰놀아라. 나는 해와 달의 밝기에 참여하고, 나는 하늘과 달의 밝음에 참여하고, 나는 천지의 항상된 흐름이 된다. 나에게 가까이 오더라도 형체가 분간되지 않을 것이고, 나의 뒤를 따른다 해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죽고 나면 나는 홀로 존재하지 않겠는가!”

 

천(天)은 무위(無爲)를 행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해석자마다 피기물(彼其物)에서 물(物)을 해석하는 게 다릅니다. 앞에서는 인위적인 제도 속에서 본성대로 살지 못하는 사물이었다면, 여기서는 본성대로 살아가는 사물 혹은 도(道)가 작동한 결과로서의 사물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무궁지문(无窮之門)과 무극지야(無極之野)는 〈소요유〉편에서 나온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뜻합니다.

상(常)은 자연의 항상된 흐름을 뜻합니다.

민(緡)과 혼(昏)은 《도덕경》의 황홀(恍惚)처럼 ‘도’를 따르는 자들을 분별하지 못함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雲將東遊, 過扶搖之枝而適遭鴻蒙. 鴻蒙方將拊脾雀躍而遊. 雲將見之, 倘然止, 贄然立, : 叟何人邪? 叟何爲此?

 

운장이 동쪽으로 놀러가다 신령스런 부요(扶搖)의 나뭇가지를 지나다 때마침 홍몽과 만났다. 홍몽은 막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뛰면서 놀고 있었다. 운장이 그를 보고 무언가 하고 보려 멈추고,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가 말했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그대는 왜 이와 같이 하고 계십니까?”

 

운장은 직역하면 구름의 장군으로, 여기서는 세속의 군주를 뜻합니다. 홍몽은 태극(太極) 혹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원기(元氣)의 의인화된 인물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부요(扶搖)는 신령스런 나무의 이름입니다.

상(倘)은 저게 뭔가 보려고 하는 것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지(贄)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鴻蒙拊脾雀躍不輟, 對雲將曰, !

雲將曰: 朕願有問也.

鴻蒙仰而視雲將曰,, !

雲將曰: 天氣不和, 地氣鬱結, 六氣不調, 四時不節. 今我願合六氣之精以育群生, 爲之奈何?

 

홍몽이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뛰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운장에게 대답했다. “놀고 있다!”

운장이 말했다. “제가 원하옵건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홍몽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운장을 보고 말했다. “그래!”

운장이 말했다. “천기(天氣)가 조화롭지 않으며, 지기(地氣)가 꽉 막혔으며, 육기(六氣)가 고르지 않고, 사계절이 질서에 맞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육기의 정수를 합하여 만물을 기르고자 하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포인트는 홍몽이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뛰노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서(不輟) 황제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쌤은 홍몰을 ‘원기’와 연결하면 그의 노닒을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멈추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吁)는 승낙하긴 하지만 전적으로 승낙하지 않을 때 쓰는 글자입니다.

울결(鬱結)은 우을증이 생기면 잘 풀리지 않듯이, 무엇이 응고되어 풀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鴻蒙拊脾雀躍掉頭曰: 吾弗知! 吾弗知!

雲將不得問. 又三年, 東遊, 過有宋之野而適遭鴻蒙. 雲將大喜, 行趨而進曰: 天忘朕邪? 天忘朕邪?再拜稽首, 願聞於鴻蒙.

鴻蒙曰: 浮遊, 不知所求., 猖狂, 不知所往., 遊者鞅掌, 以觀无妄. 朕又何知!

雲將曰: 朕也自以爲猖狂, 而民隨予所往., 朕也不得已於民, 今則民之放也. 願聞一言.

 

홍몽이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뛰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나는 몰라! 나는 몰라!”

운장이 더 질문할 수 없었다. [운장은] 3년이 지나고, 동쪽으로 놀러갔는데, 송나라 지역의 들판을 지나다 때마침 홍몽을 만났다. 운장이 크게 기뻐하며 총총 달려가서 그에게 말했다. “하늘께서는 저를 잊으셨나요? 하늘께서는 저를 잊으셨어요?” 머리를 두 번 조아리고, 홍몽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홍몽이 말했다. “떠돌아다니면서도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목적 없이 다니면서도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한다. 노는 것에만 신경 쓰며 망령되지 않음을 볼 뿐이다.”

운장이 말했다. “저는 스스로 목적을 놓았다 생각하는데 백성들이 제가 가는 곳을 따라오고, 저는 백성들로부터 어쩔 수 없이 다스리고 있으니, 지금 백성들이 저를 따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한 말씀 듣고자 합니다.”

 

운장이 홍몽을 천(天)이라고 부르는 것은 앞에서 황제가 광성자를 ‘천’이라 부른 것과 겹칩니다. 그래서 노담과 최구가 대화를 하면서 ‘황제-광성자’, ‘운장-홍몽’의 이야기를 삽입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창광(猖狂)은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방(放)은 ‘따르다’라는 뜻에서 효(效), 방(倣)과 통용됩니다.

 

鴻蒙曰: 亂天之經, 逆物之情, 玄天弗成., 解獸之群, 而鳥皆夜鳴., 災及草木, 禍及止蟲. , 治人之過也!

雲將曰: 然則吾奈何?

鴻蒙曰: , 毒哉! 僊僊乎歸矣.

雲將曰: 吾遇天難, 願聞一言.

鴻蒙曰: ! 心養. 汝徒處无爲, 而物自化. 墮爾形體, 黜爾聰明, 倫與物忘., 大同乎涬溟, 解心釋神, 莫然无魂. 萬物云云, 各復其根, 各復其根而不知., 渾渾沌沌, 終身不離., 若彼知之, 乃是離之. 无問其名, 无闚其情, 物固自生.

雲將曰: 天降朕以德, 示朕以黙., 躬身求之, 乃今也得.再拜稽首, 起辭而行.

 

홍몽이 말했다. “하늘의 법칙이 어지러워졌고, 만물의 실정에 어긋나니, 하늘의 현묘한 이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짐승의 무리들을 흩어버리고 새들은 모두 밤에 우니, 재앙이 초목에 미치고, 재화는 곤충에게도 이른다. , 다스리는 자들의 잘못이로다!”

운장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홍몽이 말했다. “, 너의 몸을 길러라! 근본으로 움직여 돌아갈 것이다.”

운장이 말했다. “제가 하늘을 만나기가 어려우니, 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홍몽이 말했다. “! 마음을 길러라. 네가 오로지 무위(無爲)에 집중하면 만물은 저절로 자랄 것이다. 너의 형체에 집착하지 말며, 너의 총명함을 벗어나며, 이치와 외물을 잊으면 우주의 흐름과 크게 합해질 것이고, 마음을 풀고 정신을 놓고, 알지 못하는 듯 할 것이다. 만물은 스스로 무성하게 자라니 각기 그 근본으로 돌아가고, 각기 그 근본으로 돌아가면서도 그 흐름을 알지 못하면 혼연한 에너지와 같아져서 몸이 다할 때까지 분리되기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를 알면 곧 이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그 이름을 묻지 말고, 실정을 엿보려 하지 않으면, 만물은 진실로 스스로 자랄 것이다.”

운장이 말했다. “하늘이 저에게 덕을 내리셨고 고요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몸소 제가 구하고자 했는데 이제야 얻었습니다.” 머리를 두 번 조아리고, 일어나 인사하고 떠났다.

 

경(經)은 ‘법칙’을 뜻합니다.

현천(玄天)은 현동(玄同)과 같이 하늘의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독(毒)은 《도덕경》 51장 “정지독지(亭之毒之)”의 ‘독’과 같습니다. ‘기르다’라는 뜻이고, 수일(守一), 포신(抱身), 심양(心養)과 통용됩니다.

행(涬)은 ‘움직이는 기 덩어리’이고, 명(溟)은 ‘에너지의 중심’입니다. 혼돈(渾沌)과 같습니다.

홍몽의 말을 보면 심(心)과 신(神)이 나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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