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2학기 1주차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21-05-11 23:35
조회
93
스피노자팀도 방학을 잘 보내고 2학기를 시작했습니다. 2학기는 본격적으로 글을 써나가야 하지요. 스피노자 저작들을 다시 읽고, 참고도서도 함께 보면서, 글을 풍부하게 해야 하는 본격 레이스에 진입했네요. <내가 만난000>을 준비하는 모든 팀이 무사히 완주하길 바래봅니다.

 

글쓰기는 전략이다

무슨 책 제목 같지요. 채운샘께서 해주신 코멘트입니다. 우린 조금 전략적으로 글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스피노자와 접속한 많은 지점 중 어떤 대목을 선정할지,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어떤 방식을 택할지, 스피노자의 어떤 면과 내지는 어떤 이론이 자신의 변화 지점을 잘 설명할지 글의 진행을 생각하는 전략 말이죠. 파편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직조해내야 글로 나올 수 있다고 샘이 강조하셨습니다. 그 직조법이 질문이란 건 이젠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지요. 가장 쉬운 게 자기 얘기라 생각하는데, 막상 글을 쓰자니 가장 보편화하기 어려운 게 또 자기 얘기란 걸 새삼 느낍니다. 그 말은 아직 자기에 머물러 있어서인데, 자신이 습관적으로 걸리는 지점을 살피는 것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습니다. 스피노자도 말년에 마키아벨리의 서적들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정서를 정치의 중요 요소로 본 스피노자가 마키아벨리에게서 발견한 정치론을 어떤 것일까요. 2학기 내내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를 비교하며 정치를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패치워크 르네상스

마키아벨리(1469-1527)는 르네상스 발상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인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우리가 알 듯 문화와 사상이 활짝 꽃핀 시대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단테 등등 이름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예술가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이죠. 정치, 사회적으로 볼 때 르네상스는 절대 평화로운 시대는 아니었지요. 세속적 야망에 불타오르는 교황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가문들,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외압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의 약소국 피렌체의 운명, 시대의 혼란만큼 다양한 가치가 혼종 되었고, 시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지요. 피렌체는 이탈리아 내에서는 약소국이었지만 역사상 가장 큰 부를 누린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면서, 많은 문화 사상가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해요. 걸출한 예술가들이 피렌체에서 쏟아져 나온 이유가 있었네요. 채운샘은 이 시대를 펠트에 비유해주셨죠. 앞에서 보면 매끈하게 예쁜 펠트의 뒷면은 온갖 실들로 뒤엉켜 있지요. 이것이 당시 르네상스를 대변하는이미지입니다. 온갖 사회적 힘들이 뒤엉겨 있고, 사람들도 그 힘들 사이를 오가며 몇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 시대 사람들이 거의 전인적 인간들이라 정치인이자 경제인이고 시인이고 건축가였는데 그 많은 정보 중 예술가는 가장 뒤에 소개되는 정보였던 거죠.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화가나 예술가로 칭하는 것을 몹시 자존심 상해했답니다. 피렌체가 이 대립의 와중에 경제인·상인의 힘을 키우며 자신들에게 맞는 사상을 만들어낸 것이 르네상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메디치가의 사치와 부패에 반기를 든 사람이 사보나롤라였는데, 결국 화형대로 사라져 그의 쿠테타는 실패하게 됩니다. 쿠테타 이후 서른도 안 된 젊은이,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의 제2서기관으로 14년을 보냅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피렌체 정부의 취약성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1513년 그 지위를 잃고 <군주론>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군주국의 군주를 상상하다

그의 정치론은 마키아벨리즘으로불리는데, 우리에겐 교활한 계책과 이기적인 권력추구를 방법론으로 하는 권모술수쯤으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죠. 과연 그럴까요? 마키아벨리즘이 한 극단이라면, 다른 한쪽엔 아주 우아한 시인이자 문필가인 마키아벨리가 있다고 합니다.

샘은 마키아벨리의 정치론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지 큰 틀을 잡기 위해 알튀세르의 <군주론> 해석을 중심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책의 제목이 <군주론>이니 마키아벨리는 군주제 옹호론자로 보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질문합니다. 군주의 미덕과 악덕이 무엇인가? 군주가 시민시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덕만으로 충분한가? 군주가 두려움을 써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과연 문제인가? 알튀세르는 그의 질문이 선악의 구도를 깨트린다고 평합니다. 이 질문 안에서 나온 것이 포루투스와 비루스(운명과 덕)입니다. 통치란 덕만으로는 되지 않는 운(運)의 흐름 세력의 방향이 있다고 말하는 아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사유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정치를 하나의 흐름, 역동성으로 본다는 것인데, 국민국가 형성 시기에, 내부적 분열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하나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전제조건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속에서 나온 질문이라고 합니다. 분열된 상태를 통합하는 힘은 무엇일까? 마키아벨리가 보는 국가는 결코 자연적 방식으로 탄생하지 않습니다. 자연 상태를 극복하고 법을 만들고 축적이 이루어져 국가로 전화되는 것이 아니란 거죠. 약탈, 도둑질, 강제징수 폭력적 강제수탈 등 갖은 투쟁과 힘들의 교차가 일어나는 장이 국가인 거죠. 그 힘들의 방향에 덕과 운이 함께 작동한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정치제가 군주론제인가 공화제인가라고 묻는 것은 마키아벨리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마키아벨 리가 보기에 현존하는 모든 국가들은 낡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모델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 과제를 완수하려면, ‘새로운 군주국의 군주’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군주는 인민의 편에 서는 군주입니다. 모든 국가는 그 안에 안정으로 나아가는 계기와 무너질 수 있는 것을 다 포함하고 있기에, 그 관계에서 인민의 문제가 중요하게 관련되어 집니다. 귀족이나 용병에 기대지 않고, 대중의 마음을 얻을 때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기존에 있는 국가를 모델로 하지 않고 새로이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앞으로 전개될 군주론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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