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생 6주차 역사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9-12-09 17:40
조회
82
이번에는 서양사를 이해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대신 다니엘 비뉴 감독의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을 봤습니다. 16세기에 일어난 ‘마르탱 게르’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요. 간단하게 말하면, 마르탱 게르란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집니다. 8년이 지나고 자신을 마르탱 게르라 소개한 사람이 돌아옵니다. 그는 마을을 떠나기 전보다 일도 잘해서 마을에도 큰 도움이 됐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그가 ‘마르탱 게르가 아니다’라고 의심하면서 재판까지 열리게 됩니다. ‘마르탱 게르’는 과거를 세세하게 말하면서 재판에서 거의 이길 뻔합니다. 친구와 아내 모두 그의 편을 들어서 아주 유리했었습니다. 마르탱 게르가 이기는 것으로 재판이 끝날 때쯤 진짜 ‘마르탱 게르’가 등장합니다. 가짜 ‘마르탱 게르’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아내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중세 공동체의 독특한 감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따로 자신을 입증할 물리적 증거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이게 이 사건이 이렇게까지 일어나게 된 원인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기억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 줄 공동체를 통해서 자신을 입증합니다. ‘퐁세트’라는 인물이 ‘마르탱 게르’라는 인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마르탱 게르’를 알고 있는 사람의 기억을 정확하게 재현했기 때문이죠. 아내와 친구들은 그의 달라진 성격, 얼굴, 체격, 발 크기보다 그가 증명하는 기억을 신뢰합니다. 그렇게 그는 공동체의 인정을 받아 ‘마르탱 게르’로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는 등록된 주민등록번호로 자신을 증명하죠. 그게 때로는 편하긴 한데 다르게 생각하면 등록된 정보가 없어지면 한없이 무기력해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판사는 바로 ‘마르탱 게르’가 자신을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점 때문에 의심합니다. 대략 “누가 이렇게 자신을 완벽하게 변호(기억)할 수 있지?”라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요. 퐁세트는 전우였던 마르탱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한 다음 진짜 ‘마르탱 기어’처럼 행세했던 것이죠. 그런데 아내와 마을 사람들은 그가 다른 마르탱 기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를 ‘마르탱 기어’라고 말하죠. 토론 중에 기존의 ‘마르탱 기어’가 돌아온 뒤 마을에 대해 궁금하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마을 사람들도 사실은 누가 ‘진짜 마르탱 기어’인지를 따지기보다 누가 ‘마르탱 기어’여야 하는지를 고민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르탱 게르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늙은이들까지 걸어오거나 마차를 타고 오는 장면이 있었죠. 한 사람을 ‘마르탱 게르’로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이렇게 공동체 문제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들의 공동체 생활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 생활과도 매우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는 방만 따로 있을 뿐 일하는 것부터 밥 먹는 것까지 마을 사람들이 거의 한 곳에서 생활하더군요. 신랑신부가 결혼하고 자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한테 둘러 쌓여있는 건 참 낯설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었습니다. 만약 제가 저런 상황에 처했으면 많이 의기소침해졌을 것 같습니다. 시대가 다르면 확실히 생활 감각도 다른 것 같아요.

여담으로, 진실의 생산에 대한 얘기도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판사는 버트랑에게 마르탱과의 성생활을 묻고, 정조를 지켰는지 확인합니다. 버트랑은 판사에게 자신의 기억을 털어놓고 판사는 버트랑의 고백을 진실로 확인합니다. 퐁세트가 마르탱 게르로 인정됐다가 다시 퐁세트로 규정되는 법정 장면은 진실이 생산된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종회무진 서양사’도 슬슬 끝이 보입니다. 점심시간에도, 산책시간에도 외우느라 정신이 없으신데요. 나중에 종합시험을 볼 때 분명 빛을 발할 겁니다. 그럼 나머지 시간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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