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교 of 티벳> 시즌2 네 번째 시간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0-08-12 14:47
조회
81
 

 

밀교와 현교, 티벳의 사원

이번 주에는 채운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원래 주제는 밀교와 현교였습니다. 하지만 달라이라마께서 당부하셨듯 밀교는 겪어보지 않고 그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망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일상적 언어나 논리로 설명이 안 되는 차원이기에 절대 밖에서 떠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밀교입니다. 그래서 채운샘은 “현교나 잘 따라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강의 중간중간 몇 가지 힌트를 흘리셨는데요. 내용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라도, 현교와 밀교는 방법적으로 확연히 다릅니다. 둘의 주제는 물론 공성(어떤 것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음)과 보리심으로 동일하지만 현교를 일반 보도라고 한다면 밀교는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빠른 길이지만 그만큼 철저한 계율과 높은 근기라는 자격을 지녀야만 갈 수 있는 길이 밀교입니다. 보도를 무리 없이 걸어갈 수 없는 자는 운전을 해서는 사고가 나고 맙니다. 지름길을 훈련 없이 가려 하면 집착과 아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선 현교를 잘 배우고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밀교에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티벳 사원에서 이뤄지는 어마어마한 공부 기간이 잘 보여줍니다. 저는 남인도의 세 사원인 데뿡, 쎄라, 간덴 사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으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우선 교육 시간이 5:30AM에서 11:00PM라는 것에서 첫 번째 충격. 하루에 17~18시간을 공부한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고3 때 15시간 공부하기를 목표로 잡고 번번히 실패했던 기억이...)? 일정은 아침 기도, 경전 공부, 대론식 교육, 철학, 대론, 밤 암송입니다. 매일, 매주, 매달의 대론과 암송 시험이 있습니다. 공양으로 먹는 것은 보리를 갈아 만든 경단 같은 ‘짬빠’와 차가 전부입니다(수험생들에게 쏟아지는 온갖 한약과 제철과일들이 생각납니다...). 교과는 아비달마론, 유식론, 중관사상, 논리학, 계율이 있으며 최근에 달라이라마의 제안으로 과학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기간이 20년이 지속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간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해야만 ‘게쉐’라는 호칭이 주어지는데요, 게쉐는 또 성적에 따라 네 가지 단계로 나뉩니다. 가장 뛰어난 승려들인 ‘하람빠’와 ‘촉람빠’만이 ‘하람진다’라는 밀교 수업에 입문할 자격을 얻습니다. 제 2그룹은 사원 내에서 승려들에게 강의하며, 제 3그룹은 대중들에게 강의를 합니다. 밀교라는 것에 접근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근기와 수련이 요구되는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파드마삼바바와 우리의 합리성

또 제게 인상 깊었던 말씀은 우리의 합리성 혹은 현실성이라는 관념이었습니다. <티벳 해탈의 서>에 보면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법을 전하고, 화형을 당해도 죽지 않으며,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적들을 행하는 파드마삼바바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팩트와 구분되는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들이 과연 팩트/픽션, 현실/비현실, 합리/비합리로 나눠질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 지금 우리가 합리적이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을까요? 채운샘은 먹방을 예로 드셨습니다. 가냘픈 BJ가 수십 킬로그램의 음식을 쓸어 넣는 일과 그것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즐겁게 바라보는 일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이고 이해할만할까요? 채운샘은 어슐러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얘기해주셨습니다. 저는 오멜라스 마을의 계약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옳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대다수가 행복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의 불행이 감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합리주의와 공리주의 속에서 다수의 행복을 담보하는 한 사람의 불행은 희생으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깨달았던 것이죠. 자신의 행복 아래 한 사람의 불행이라도 있는 이상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일 수 없다는 것을요. 그 낙원의 행복이 가진 비참함을 마주하는 것 말고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을요. 따라서 저희는 무엇이 이상한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합리주의가 파드마삼바바의 변신보다 더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들뢰즈는 세상에 상징이나 비유는 없으며 모든 것이 리얼하다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환(幻)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이 리얼하고 현실이라면 세상은 너무나 한정적이지 않을까요? 그러면 기껏해야 인간적인 감각 틀로 구성한 것만이 세계일 것입니다. 우리는 개나 고양이의 시선조차 추측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3차원 입체의 그림자가 2차원 면이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도 4차원의 그림자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추리만으로도 우리가 구축한 공간개념과 과거-현재-미래의 시간개념은 더 높은 차원의 그림자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꿈에 보는 영상들을 비현실적 환영으로 치부하거나 남미 소설의 ‘초록색 비’와 같은 묘사를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과오입니다. 우리가 ‘내면과 내면에 불화하는 바깥의 세계’라고 나누어 믿고 있는 근대인의 세계도 환영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동물-무생물의 경계가 뒤섞여 엄마가 늑대이고 오누이가 별이 되는 신화적 서사가 덜 ‘환영’적일지도 모릅니다.

 

한마음과 진자공명

<티벳 해탈의 서>를 읽다보면 ‘한마음’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것은 융이 창안한 개념으로 낱낱의 것을 발현시키는 동시에 그것들에 함축되어 있는 일자(一者) 혹은 우주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운샘은 이것을 에너지의 장으로 이해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공식 E=mc2이 잘 설명해주듯 질량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물질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에너지가 반응성이 낮은 진동으로 내려앉아 응축되어 형성된 form입니다. 그렇기에 마치 이것과 저것, 나와 너가 분별적으로 나눠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치 동영상의 재생속도를 올리듯, 시간을 빨리감기 한다면, 우리의 ‘일생’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져버립니다. 산이 솓았다 꺼지고 바다가 열렸다 닫히는 지질학적 시간에서 인간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살이 한번 이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조차 보이지 않을 찰나겠지요. 이렇듯 우리가 머릿속에 구축한 세계도 우주 차원에서 에너지의 일시적 응축과 흩어짐의 표현입니다. 분별을 없앤다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우주 에너지 장의 진동에 우리 마음의 진동을 맞추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몇 가지 파장을 수신하고 또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느리고 평온하게 흐르는 델타파는 우주 전체에 퍼져있는 파장과 닮아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선정에 들거나 해탈에 이르는 상태는 인간 의식의 파장이 우주적 무의식의 파장과 공명하는 것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채운샘은 ‘진자 공명 실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유튜부에 검색해서 보면, 서로 엇갈리게 흔들어놓은 100개의 메트로늄이 1분이 지나자 같은 주기로 운동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의 것들의 파장(혹은 전류 혹은 기운 혹은 정서)와 비슷한 파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그냥 물리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음을 이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너지의 응축물이며, 그렇게 존재하는 우리의 진동을 어떻게 우주적 진동 패턴과 일치시킬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그럼 이만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달라이라마 죽음을 말하다> 5장(~144쪽)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이림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 2

  • 2020-08-12 17:31
    하루 18시간의 공부를 20년간 하면.... (게다가 매일 암송을 하면서! ) 의식 무의식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겠네요. 게쉐는 꿈도 못꾸더라도 이렇게 티벳 불교를 언저리에서라도 계속 공부하다 죽으면 내세에는 그런 조건에서 태어나 공부를 해볼 수 있을랑가요?! ^^;;

    핵심 정리 짱~ ^^ 민호샘의 후기 보시 감사합니당~!

  • 2020-08-15 16:53
    밀교 수업에 입문하기까지 티벳 승려들의 생활, 파드마삼바바의 일생,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기에 비해 우리가 삶이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 여길 수 없다는 것. 후기 보시 덕분에 다시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