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교 of 티벳> 시즌2 다섯 번째 시간 후기

작성자
키키
작성일
2020-08-19 13:48
조회
106
안녕하세요! 불티의 색깔 담당(컬러풀 준기쌤이 나가시고 현저히 다운된 컬러를 중도에 맞추려는)키키입니다. 수도권 코로나가 심상치 않습니다. 무턱대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마스크 잘쓰고 손 잘 씻고 마음도 정화하며 건강히 흘러가요!

명상시간에는 냄새를 방편 삼아 <냄새 명상>을 했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한 오온의 감각이 모두 알아차림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체험케하는 윤지반장님의 친절하고 즐거운 명상이 참 좋습니다. 손수 향을 준비하셨지요. 냄새를 맡고 ‘이 냄새는 참 좋아. 계속 맡고 싶어’라는 집착과 ‘이 냄새는 싫어’라는 판단과 혐오없이 그저 느끼며 알아차리는 것은 연습했습니다.  판단해도 판단하는 걸 알아차리면 됩니다. 저는 아직 열린 알아차림과 방편을 통해 집중하는 알아차림 사이를 가로지르는 감각이 섬세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이걸 오가는 게 좀 덜컹거립니다.

낭송에서는 우연히도 이번 주에 읽은 책과 이어지는 「목숨의 경」을 낭송하고 함께 「중음도의 위험한 곤경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기원문, 두려움에서 해방된 영웅」이라는 시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 시는 제1대 빤첸라마, 로상 초끼 겔첸이라는 17세기 5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 지은 죽음에 대한 열일곱 연의 시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죽음의 순간을 영적인 진보로 사영하기 위한 불교의 특별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내적이고 정신적인 경험과 육체적 변화에 대해 기술한 이 시는 죽음과, 마음의 보다 깊은 층위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심오한 내용입니다.

토론 시간에는 이 시를 해제한 달 존자님의 책 『달라이 라마, 죽음을 말하다』 앞부분을 토론했습니다. 『티벳 해탈의 서』를 읽고 『죽음의 서』를 읽기 전에 달 존자님의 죽음에 대한 책을 브릿지로 읽었습니다. 경전은 어려워서 헤매는 재미가 있지만, 자비심 넘치는 달 존자님은 쉽고 명료하게 정리해주셔서 길잡이가 되는 듯 좋았습니다. 죽음하면 두려움과 공포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건 아마 우리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공포일 것입니다. 이렇게 쌩쌩하게 살아있는 우리가 죽음을 사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코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생과 사의 동시성

스피노자팀의 에이스(!)인 현정쌤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자유인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역시나 아나운서 딕션으로) 포문을 여셨습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생을 생각한다는 맥락에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자유인의 삶이 우리가 사자의 서를 읽고 죽음에 대해 사색하는 이유가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죠. 삶과 죽음은 하나의 선입니다. 생과 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거 같지만 사는 생 옆에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습니다. 생과 사의 이분법을 넘어 공성을 깨쳐야 알 수 있지만 다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생과 사의 동시성을 느끼며 반드시 죽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필연의 조건을 통해 우리는 생의 절실함과 소중함을 감사하면 수행이 정진해야 하는 것이지요.

죽음을 사유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시야를 내생까지 포함하게끔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자신이 처한 곤경을 철저히 이해함으로써 윤회라고 불리는, 한 생의 고통에서 다음 생의 고통으로의 윤회를 포함할 정도로 시야가 깊어지는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결국 모든 중생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해방되기 바라는 자비로운 소망을 통해 다른 이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이죠. 이를 통한 무상과 공성에 대한 사색은 수행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것이죠.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수많은 것들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이 부분에서 티베트 불교 문화에서 죽음의 무상성에 대한 명상을 가장 중요한 명상이라 했던 부분이 많이 오버랩되어 남겨봅니다.

<죽음의 무상성>에 대해 명상하여 이생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이생의 겉모습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돌이켜서, 다음 생에서부터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이끌어가는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음을 상기하지 않으면 이 생에 오래 머무르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음식, 의복 등의 생계 수단과 행복 안락함 명예 등을 얻기 위해 머리를 쓰면서 다음 생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지각 중에서 무상성의 지각이 최고이고, 모든 발자국 중에서는 코끼리 발자국이 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코끼리는 그 몸이 매우 크기 때문에 다른 모든 동물들의 큰 발자국을 포용하는 것처럼 무상성을 명상하는 지각이 이 세상에서 뭔가 얻으려 하는 생각을 멀리 버리게 하고, 다음 생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강력하게 끌어냄으로써 악업을 제거하고 선업을 짓게 하는 등 올바른 법을 행하도록 인도하는 데 있어 큰 발자국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해 명상하는 방법으로는 죽음의 확실함에 대한 명상과 언제 죽으리는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 죽을 때 법 이외에는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등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티베트의 불교문화 p96-

네네.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중에 죽을 거야, 나중에, 나중에 …”식의 잘못된 견해에 빠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자비심과 보리심은 어떻게 다를까요? 틀리면 큰일 날 것처럼 질문하신 현정쌤 덕분에 우리끼리 지혜를 모아보았습니다. 특히 불목한 민호쌤이 바바박 떠오른 직관으로 정리해주었습니다. 자비심이 보리심보다는 광의적인 개념으로 만물중생을 어머니처럼 여기는 마음이라면 보리심은 깨달음을 얻어 공성의 지혜를 깨친 것으로 지혜가 결합된 것이라는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오!) 윤지반장님이 자비+공성의 지혜=보리심으로 심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불교 수행 중 보시사트바라는 수행이 있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때 보리심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과 정진을 포함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윤회와 고통의 완전한 자성을 파악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내생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깊은 삶의 측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이해는 충만한 자비심의 개발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자비심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주고, 내적인 힘을 키워준다. 자비심은 일을 완성하게 해주는 일종의 원기다. 자비심은 용기를 북돋아준다.-달라이라마, 죽음을 말하다 p60, p69-

인간이라는 귀한 조건

우리의 몸이 지, , , 풍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서로 대치되는 상태에 있다고 본다. 즉 육체적인 행복이란 이 요소들 사이의 균형이 우연히 들어맞은 것일 뿐이지 영원히 지속되는 조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지닌 몸은 모든 문제의 고향이다. 질병과 기아 또는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몸의 본질은 괴멸이다. 제대로 들여다본다면 몸은 죽음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106p)

“얻기는 힘들고 잃기는 쉬운 이 좋은 기반”인 인간의 몸에 대해 서로 대치되는 상태라고 설명한 부분에서 다들 니체를 많이 떠올렸다고 합니다. 니알못인 저도 그랬든 걸 보면 규문 사람들의 공통감각이 있는 거 같습니다. 또 니체, 스피노자, 에피쿠르스 등 다양한 장에서 공부하던 쌤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부처님도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으셨어요.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은 백년 마다 물 위로 올라오는 바다거북이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나뭇조각을 만날 확률만큼 희박하다고 합니다. 이 귀한 인간이라는 조건을 알고 좋은 행동을 하기 위해 항상 조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상태로 마음을 길들이며 무상과 공성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몸을 받은 기회를 잘 활용하는 길입니다. 오랜 이분법의 사고와 현실의 감각적 쾌락에 이끌리는 것은 조율하는 “길들여진 마음”으로부터 나오죠. 깨달음은 불, 법, 승에 귀의한다고 해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준비시키고 닦아서 수행해야 하는 자신의 몫입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의 단계에서 죽음에 대한 자각은 세 가지 근원, 아홉 가지 자각, 세 가지 결론(115p)으로 친절히 소개됩니다. 기승전수행수행인데요, 결론은 반드시 지금 세상의 그 어떠한 것에 대해 아무리 좋아보여도 집착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입니다.(끙)

힐링& 홀리한 홀리데이 불티는 달 존자님의 법문을 함께 보며 홀리하게 마무으리 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달존자님이 과학자와 불교수행자가 함께 명상과 마음에 대해 토론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장기기억과 단기 기억 그리고 다중작업과 명상의 관계를 밝히려는 토론 같아 보였습니다. 쟁쟁한 사람들이 토론하는 진지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어깨에 뽕을 넣지 않고 위트 넘치는 에너지장이 저도 이완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명상이 주는 통제의 역할에서 인용한 붓다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은 마음이 결정하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된다. … 지혜로운 자는 생각이 최상의 목적을 향하도록 다스리고 최상의 지식을 얻는다” 이건 길들이는 마음과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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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는 『달라이 라마, 죽음을 말하다』 6장(145p)부터 끝까지 탈탈 읽어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매일 명상을 5분 이상씩 하면서 몸에 딱 붙이며 곰곰 친해져 보세요! 도반들이여 “조심해요, 그리고 정직해요. 또 하루가 가고 있어요”

덧: 제가 명상 자리에 붙여놓고 암송하려고 필사한 시 전문을 첨부합니다. 시를 끊임없이 되새김으로써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배우게 되고, 죽음이 실제로 일어나는 동안 유용하게 쓰일 지식을 얻게 됩니다. 죽음은 무의식인 심층의 마음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때이며, 이 시를 매일 읽고 수행하는 것은 이 심층의 마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고 하니 직접 체험해 보시지요.
전체 2

  • 2020-08-19 17:38
    후기가 이렇게 감칠맛 날 수도 있는 거군요! ^^ 키키샘, 생동감 있고 재미나게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다시한번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게 하는 후기 감사합니다. 게다가 빤첸라마의 시까지 직접 쓰셔서 보시해 주시다니... 오오, 감동~

  • 2020-08-22 11:12
    죽음에 대한 세 가지 명상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나중에...'가 아니라 다르게 사유하는 근육을 키워야겠습니다! 빤첸라마님의 시와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