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 복습] 자로편 22장 ~ 30장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2-28 15:50
조회
75
안녕하세요~ 뒤늦게 후기를 얼른 올려봅니다. ㅎㅎ;;

이번 시간에는 그 유명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나왔습니다. 전 몰랐지만 화이부동은 동이불화(同而不和)와 한 세트입니다. 그런데 역시 유명한 구절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간단명료한 문장이지만 평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화(和)하고자 했는지 아니면 동(同)했을 뿐인지 여러 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인 것 같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24장은 화이부동과 동이불화를 다르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자공이란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구절인 것 같습니다. 23장에서 군자와 소인이 타자를 사귈 때의 내면을 보여줬다면, 24장은 그들이 마을에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 맺는지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포인트는 모두에게 호감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는 데 진실로 구차함이 없다면 선한 사람의 호감과 악한 사람의 비호감을 사게 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소 타인과 비교하며 명성을 바라는 자공에게는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얻기보다 내면을 먼저 닦으라는 공자의 가르침이 나온 구절이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로 읽어야할지, 해석은 어찌해야 할지 헷갈리는 지점들이 있었지만, 다음 시간에 채운쌤의 복습을 통해 다시 생각해봅시다! 그럼 다음 주까지 모두들 복습 착실히 하고 오셔요~

 

▣ 제22장(第二十二章)

 

子曰 “南人 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善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쪽 나라 사람들 말에 “사람이고서 항상되지 않으면 무당이나 의사 노릇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좋은 말이다.”

 

南人 南國之人. 恒 常久也. 巫 所以交鬼神. 醫 所以寄死生, 故雖賤役而尤不可以無常. 孔子稱其言而善之

남인(南人)은 남쪽 나라 사람들이다. 항(恒)은 일정하고 오래된 것이다. 무당은 귀신과 교류하는 것이고, 의원은 죽음과 삶에 맡기는 것이니, 비록 천한 일이라도 더욱 항상됨이 없지 않아야 한다. 공자께서 이 말을 칭하여 좋다고 하신 것이다.

 

‘不恒其德 或承之羞’

'그 덕(德)이 항상되지 않으면 간혹 부끄러운 일을 당한다.'


 

此 易恒卦九三爻辭. 承 進也.

이것은 《주역》 항괘(恒卦)의 구삼(九三)에 대한 효사이다. 승(承)은 다가오는 것이다.

 

子曰 “不占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1) “점을 치지 않았을 뿐이다.” 2) “점을 치지 않아도 될 뿐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몰라서 1)과 2)로 나눴습니다. 1)은 성백효 선생님의 해석을 따른 걸로 ‘주역의 점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을 당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2)는 우응순 선생님의 해석을 따른 걸로 ‘항상된 덕을 가지고 있으면 따로 점을 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둘 다 얘기가 되는 것 같아서 같이 올렸습니다.

 

復加子曰以別易文也, 其義未詳.

楊氏曰, '君子於易 苟玩其占則知無常之取羞矣. 其爲無常也 蓋亦不占而已矣 意亦略通.'

다시 자왈(子曰)을 붙임으로써 《주역》의 글과 구별했으나 그 뜻이 상세하지 않다

양씨가 말했다. “군자가 《주역》에서 진실로 그 점을 완구했다면 그 덕이 항상되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항상되지 않음을 실천하는 것은 또한 점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니, 뜻이 또한 대략 통한다.”

 

▣ 제23장(第二十三章)

 

子曰,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남들과] 어울려도 아부하는 뜻이 없지만, 소인은 아부하는 뜻이 있지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和者 無乖戾之心. 同者, 有阿比之意

화(和)라는 것은 어그러지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동(同)이라는 것은 아부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尹氏曰, “君子, 尙義故有不同. 小人, 尙利, 安得而和.”

윤씨가 말했다. “군자는 의(義)를 숭상하기 때문에 아부하는 뜻이 있지 않고, 소인은 이익을 숭상하기 때문에 어찌 화(和)할 수 있겠는가?”

 

▣ 제24장(第二十四章)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분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싫어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분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一鄕之人, 宜有公論矣. 然, 其間 亦各以類自爲好惡也. 故善者好之而惡者不惡, 則必其有苟合之行. 惡者惡之而善者不好, 則必其無可好之實.

한 마을의 사람들은 마땅히 공론(公論)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또한 각각 나눔으로써 스스로 좋아함과 싫어함을 행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악한 사람이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은 곧 반드시 구차하게 부합하는 행동이 있었을 것이고, 악한 사람이 그를 미워하고 선한 사람이 그를 좋게 여기지 않는 것은 곧 반드시 좋아할 실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 제25장(第二十五章)

 

子曰, “君子 易事而難說也 說之不以道 不說也. 及其使人也 器之. 小人 難事而易說也 說之雖不以道 說也. 及其使人也 求備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을 도(道)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는다. 사람을 부리는 데 이르러서는 그 재능에 따른다.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을 도(道)로써 하지 않아도 기뻐한다. 사람을 부리는 데 이르러서는 그가 모든 것을 갖춰져있기를 요구한다.”

 

器之, 謂隨其材器而使之也. 君子之心公而恕, 小人之心私而刻, 天理人欲之間 每相反而已矣.

‘그를 그릇으로 여긴다’는 것은 그 재능과 그릇을 따라 그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군자의 마음은 공정하고 타인에게 미치는 데 비해, 소인의 마음은 사사롭고 각박하니,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사이는 매번 서로 반대될 뿐이다.

 

▣ 제26장(第二十六章)

 

子曰, “君子, 泰而不驕. 小人, 驕而不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평안하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나 평안하지 못하다.”

 

君子 循理故安舒而不矜肆, 小人 逞欲故反是.

군자는 이치를 따르기 때문에 편안하면서도 자랑하거나 방자하지 않으며, 소인은 욕심을 다하기 때문에 군자와 반대된다.

 

▣ 제27장(第二十七章)

 

子曰, “剛毅木訥, 近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면이 단단하고, 의연하고, 질박하고, 신중히 말하는 것이 인(仁)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程子曰, “木者 質樸. 訥者 遲鈍. 四者 質之近乎仁者也.”

楊氏曰, “剛毅則不屈於物欲 木訥則不至於外馳, 故近仁.”

정자가 말했다. “목(木)이라는 것은 질박하다는 것이고, 눌(訥)이라는 것은 더디고, 둔한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인(仁)에 가까운 바탕이다.”

양씨가 말했다. “내면이 단단하고 의연할 수 있으면 외물을 욕심내는 것에 굴하지 않고, 질박하고 신중히 말할 수 있으면 외물에 의해 치달리는 데 이르지 않게 되니, 그러므로 인(仁)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 제28장(第二十八章)

 

子路問曰, “何如 斯可謂之士矣.”

子曰, “切切偲偲怡怡如也 可謂士矣. 朋友 切切偲偲, 兄弟 怡怡.”

자로가 물었다. “어떠해야 사(士)라고 일컬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간절하게 이르고, 남김없이 권면하고, 화목하여 기쁜 듯이 하면 사(士)라고 일컬을만 하다. 붕우(朋友)에게는 간절하게 이르고, 남김없이 권면해야 하고, 형제(兄弟)에게는 화목하여 기뻐해야 한다.”

 

胡氏曰, “切切 懇到也. 偲偲 詳勉也. 怡怡 和悅也. 皆子路所不足 故告之. 又恐其混於所施 則兄弟有賊恩之禍, 朋友有善柔之損. 故又別而言之.”

호씨가 말했다. “절절(切切)은 간절하게 이르는 것이다. 시시(偲偲)는 남김없이 권면하는 것이다. 이이(怡怡)는 화목하여 기쁜 것이다. 모두 자로가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일러준 것이다. 또 베푸는 바에 있어서 혼동되면 형제 사이에는 은혜를 해치는 화가 있고, 붕우 사이에는 착해져서 유순해지는 손해가 있음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또한 나눠서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 제29장(第二十九章)

 

子曰, “善人 敎民七年 亦可以卽戎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인이 백성을 칠년 동안 가르치면 또한 군사로 [전쟁에] 나아가게 할 수 있다.”

 

敎民者 敎之以孝弟忠信之行, 務農講武之法. 卽 就也. 戎 兵也. 民知親其上死其長, 故可以卽戎.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효제충신(孝弟忠信)의 행동과 농사에 힘쓰고 싸우는 법을 배우게 함으로써 가르친다는 것이다. 즉(卽)은 나아감이다. 융(戎)은 군사다. 백성들이 윗사람을 친히 여기면 [그를 위해] 죽을 수 있으니 그러므로 군사로 [전쟁에]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程子曰, “七年云者 聖人度其時可矣. 如云“朞月三年百年一世大國五年小國七年之類” 皆當思其作爲如何, 乃有益.”

정자가 말했다. “칠년이라고 한 것은 성인이 때와 가능성을 헤아린 것이다. “돌아오는 달, 삼년, 백년, 한 세대, 대국은 오년, 소국은 칠년의 부류”라고 말한 것은 모두 마땅히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이에 이로움이 있다.“

 

▣ 제30장(第三十章)

 

子曰, “以不敎民戰 是謂棄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전쟁에 쓰는 것, 이를 일러 그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以, 用也. 言用不敎之民以戰 必有敗亡之禍, 是棄其民也.

이(以)는 쓰는 것이다.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써서 전쟁을 하는 것은 반드시 패망의 화가 있으니, 이것이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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