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에티카 에세이 후기 풍년일세

작성자
호정
작성일
2017-07-17 13:20
조회
187

에티카 에세이 발표 후기


벌써 지난주네요. 그 강렬했던 15시간의 에세이 발표 대장정! 시간적으로는 길었지만,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번 에세이 발표는 제게 좀 흔적을 남겼습니다. 매번 에세이의 코멘트를 들을 때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준다 싶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감사의 마음과는 다른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끄러움입니다. 내가 계속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구나. 같은 사유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드니 저절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이 자각을 이번 에세이의 소중한 선물로 받고, 다음 학기 공부할 때는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아보겠습니다.

공부란 나 자신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각자의 에세이에 대한 세부적인 코멘트야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평상시 본인의 생각에 스피노자의 개념을 가져와서 이리저리 꿰맞췄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매번 변하지 않고 똑같은 습관을 반복하는 걸까? 나는 어떤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일까?’라는 나의 질문은 사물의 복잡한 연관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마치 나라는 사람이 하나의 단일한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처럼, 내가 놓여있는 상황과는 분리되어, 즉 연기조건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개체처럼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다수의 실재를 동시에 바라봄으로써 실재들 사이의 합치, 차이 및 대립을 이해하도록, 블라블라. 적합한 관념을 구성한다는 건 사물들 사이의 복잡한 연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이 구절만 이해했어도, 저런 질문은 나오지 않았을 텐데. 전혀 스피노자적이지 않은 질문이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문맥 속에서 문장을 이해하고 지은이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부의 기본이지만, 독해로서의 공부일 뿐입니다. 공부는 그 독해를 통해 이해한 저자의 개념, 철학을 가지고 나를, 타자를,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매번 선생님이 입이 닳도록 말씀하신, 철학을 현재 내 삶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굳어온 생각의 패턴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작 한 학기 철학자의 책 한 권을 공부했다고 해서 사유의 습관이 변하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욕심이겠지요. 어떻게 해야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 건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자신의 사유의 관성을 바꾸고자 노력한 다른 학인들의 글을 보면서 그 고민의 치열함과 간절함에 감동도 받고, 힌트도 얻었습니다. 잘 모르는 채로, 이들과 더불어(정수쌤 트레이드마크), 선생님과 함께 계속 공부하다보면 언젠가 제 사유의 습관에도 균열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차서가 있다

내 글을 발표하고 남의 글을 들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글의 우열을 가르고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사람마다 자신만의 차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 거야 똑같지만, 씨 뿌리는 기간, 꽃 피는 정도, 수확의 내용은 다 다릅니다. 나는 아직 땅도 갈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꽃이 탐스럽다고, 열매가 먹음직스럽다고 부러워하는 건 탐욕입니다. 싹이 나지 않았으면 발아를 기다리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윤리입니다.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주면 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에 있어 한 가지 확실한 건 독해로서의 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문장의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 비문을 안 쓰는 연습을 하고, 개념 이해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그것부터 제대로 익히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책임질 생각을 하니, 이 문장을 지워버리고 싶네요^^;;). 자신의 차서를 아는 것이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행간을 읽기 : 글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기

박맷집, 양도표, 임투기, 배와중, 이정념, 이더불어, 김 내알바아니고, 이욕망, 서계몽, 정미완. 이 이름들은 우리가 두 번의 에세이를 거치며 얻은 사랑스러운 선물입니다(제가 자의적으로 붙인 별명도 있으니, 양해는 각자의 몫^^). 규창이는 1학기에는 우리에게 ‘박규창’이었는데, 2학기가 끝나는 자리에서는 ‘박맷집’이 되었습니다. 절탁Q 학인으로 함께 하면서 서로에 의해 변용된, 현재의 규창이의 이름입니다.

에세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참 곤란한 지경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글쓴이조차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 한 글을, 듣는 이들이 또 자신만의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그걸 기초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면 1박 2일도 모자라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기를 쓰고 글을 쓴 이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아, 양도표는 세상을 도표로 이해해서 이런 말을 했구나. ‘가’라고 썼지만, 사실은 ‘가-1’을 말하려고 했던 거구나. 우린 온갖 상상으로 독심술을 펼칩니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글을 쓴 이의 마음에 전달되고, 글을 쓴 이는 자신이 글에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한 마음 속 이야기를 더듬더듬 말로 터뜨립니다. 서로 다른 신체들이 만나 그렇게 우린 공통관념을 형성해갔습니다.

봉쌤의 글로 갑론을박 시끄러울 때, 조용히 책을 뒤적이며 고민하던 정수쌤이 ‘본질’을 ‘속성’으로 대체하면 봉쌤의 의도에 가까워지지 않겠냐던 그 순간, 아 저는 감동먹었습니다. 미영쌤이 세상 근심 없는 표정 밑에 감춰뒀던 욕망을 주저주저 드러내던 그 시간들도 잊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규창이의 귀여움이란. 하하하.

아직, 별명 없는 분들 분발합시다!!

우린 아직 목마르다

대장정을 끝내고 규문을 떠나 회식 장소로 옮겨서도, 우리의 에세이에 대한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도 장장 3시간을 에세이와, 공부와, 학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왁자지껄합니다. 이 에너지는 뭐지? 정신줄을 살짝 놓아버린 이완의 상태에서 오는 편안함? 아직 해소되지 않은 갈증은 3학기에 다시 멀쩡한 정신으로 만나 풀어보아요. 다들 그때까지 안녕!!
전체 4

  • 2017-07-17 14:27
    "우린 아직 목마르다" ㅋㅋㅋ 3학기 에세이 발표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니체를 만나는 것보다 니체를 만난 선생님들의 글이 기대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걸까요? 하하하

  • 2017-07-17 15:12
    에세이 장장 13시간의 독심술 한마당이었던 것인가요 ㅇ0ㅇ 각자 에세이를 보면서 마음을 집중해 별명하나를 지어주는 것^^

  • 2017-07-17 18:42
    아, 나 설마설마 했더니 그 별명이 제 것인줄은 몰랐네요. 고맙습니다. 알아봐주시고 후기 올려 주셔서. 3학기에 만나요.

  • 2017-07-20 14:09
    무토의 땅은 참으로 넓고도 넓습니다. 이제 나무 몇 그루 정성들여 키우면 값진 땅이 되겠지요. 나만의 차서... 새삼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렇지요. 봄에서 가을로 못가는 법이니, 이 여름 값지게 땀흘리고 가을 수확을 기다려야겠지요. 나만의 차서를 알아가는 공부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습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