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절탁 Q 3학기 1주차 수업후기

작성자
현정
작성일
2017-07-27 18:53
조회
141
아.... 이제 니체와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을 읽은 첫 번째 시간, 매번 학기 첫 번째 수업후기를 쓰게 되네요.^^ 지난 학기 스피노자를 돌이켜보니 첫 번째 수업후기를 쓰던 저와 에세이를 통과한 지금의 저는 많이 달라져 있군요. 뭐라 딱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스피노자에 대한 제 사유, 감수성에도 차이가 생겼음이 느껴지구요. 이렇게 또 이번 학기 니체를 통과하고 나면 어떤 신체변용을 겪게 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기하학적 글쓰기의 스피노자를 만나 한동안 헤맸던 우린 이제 음악적 글쓰기에 귀를 기울일 차례입니다. 좀 더 가볍게 니체를 만나야 할 텐데요. ‘마음대로 읽어라’라는 쌤 말씀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진정 자기 사유를 하는 자들의 독창적이고 능동적인 멋진 해석들을 쏟아내기를... 우리 도반들에게 기대해봅니다.^^

니체의 언어는 규정적이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의 모든 저작이 비유고 상징이죠. 음악을 닮아 있는 그의 글쓰기는 문장부호 자체도 글입니다.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를 거부하는 글쓰기, 그의 사유 자체 철학하는 태도 자체가 그의 글쓰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니체 자신이 ‘제5의 복음서’, ‘미래의 성서’라고 표현하고 있는 <차라투스트라> 서문은 독일어의 라임을 잘 살리면서 성서적 어투를 사용하고 있지요. 이 책은 많은 상징들과 캐릭터들이 나오는 스토리로 전개되기 때문에 문학이라고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경 고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는 세계 자체를 선과 악의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보았는데요. 니체는 이런 부분을 능동적으로 가지고 와서 도덕주의자를 주인공으로 도덕을 넘어서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책을 읽어나가며 계속 고민을 해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쌤은 ‘우리가 만든 신을 우리가 죽였다’라고 설명하셨는데요. 인간은 변화무쌍하고 무상한 삶을 견딜 수 없어 삶의 이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신을 만듭니다. 그러나 더 이상 신으로부터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을 수 없는 세계가 되자 신을 몰아낸 자리에 인간의 진보, 공리, 합리성, 과학 등 미래적 유토피아로 그 자리를 대체하죠. 인간은 신을 끌어내린 자리에 새롭게 믿게 된 절대적 가치를 놓게 되는데 이것이 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여기서 신이란 모든 초월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형이상학을 상징합니다.

고대 그리스인과 기독교는 고통을 마주하는 대조적인 방식을 보여주는데요. 솔직히 저로서도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삶을 긍정하기보다는 고통이 없는 세계를 꿈꾸는 것을 더 쉽게 여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니체는 이런 수동적 니힐리즘에 반해 삶의 의미, 척도를 가진 가치 기준이 완전히 무너진 폐허 위에서 만들어 나가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중요 개념들은 큰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요. 초인이 가장 위대한 인간을 의미하거나 영원회귀가 영원한 어떤 것으로 회귀한다거나 힘의지는 권력에 대해서 갖는 의지라는 오해 등 말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개념들이 책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겠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낼지는 아직은 막막하지만요. 결코 무거워지지 말고 그러나 여전히 부여잡고 있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버릴 준비를 단단히 하면서, 니체를 통해 듣는 것을 배우고 투쟁하는 것을 배우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보겠습니다.
전체 2

  • 2017-07-28 20:31
    이를 어째요..... 스피노자는 참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니체는 재밌게 읽은 것 같은데 막상 쓰려니 막막합니다. ㅋㅋㅋ 몇 주 동안 헤매는 걸 감안하더라도 어, 어 하다가 금방 에세이가 눈앞에 올 것 같네요. (벌써 불길한 소리를 해버렸네요. ㅎ;;) 일단 마음 놓고 헤매야겠습니다~

  • 2017-07-28 22:20
    새삼 니체가 두렵습니다... 느낌만 남지 않을지... 어느때보다 직접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