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7.13 공지와 후기 #독신자

작성자
이응
작성일
2017-07-06 20:26
조회
143
2017.7.6  7월 13일 공지와 후기


# 독신자

카프카는 연애 상대로는 조금 곤란한 사람인거 같아요-_-ㅋ 만나지도 않고, 전화도 안 되고, 편지만 줄창 보내오다니요. 왜 그녀를 갈망한다고 말해놓고도 직접 만나기를 꺼렸던걸까요. 그러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이런식으로 말하는거죠. “유감스럽지만 저는 이런 (혼자있어야 하고, 글쓰기에 절대적인 시간을 내어야 하는) 조건인데 그럼에도 제 아내가 되고싶으신지요?” 여기에 두 번이나 "좋아!"라고 했던 펠리체도 보통 빠져있던게 아닌 모양이예요. 제 눈에는 별로 연애편지스럽지도 않은데, 둘 사이에는 엄청 뜨거운 뭔가 있었으니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던거겠죠?!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카프카의 편지가 ‘연애편지’라기보다 ‘글을 쓰기 위한 도구’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었어요. 그 많은 편지들에는 순 '자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뿐이고, 펠리체의 생각을 묻는건 단 한줄도 발견되지 않으니 말이예요. 묻더라도 이런 식인거죠. “네 방 뒷 벽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는데, 좀 더 자세히 묘사해줄래?” “그날 그 부분이 불분명한데 더 설명해줘” 라고요. (왠지 자신의 글쓰기를 위해 정확한 묘사를 추궁하는거 같지 않습니까-_-?)

펠리체가 여기에 대해 어떤 답장을 했는지 몰라도 분위기상 카프카의 밀도에 비해 엉성하고 단순한 답장이었나봐요. 여기에 "다시금 정확히 설명해달라"고 몇 번 더 편지를 보냈으니 말이예요. 카프카는 약간 불만 섞인 어투로 이런 말을 하기도 해요. “당신은 나를 거의 본 적도 없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없고, 내 침묵에 괴로워한 적도 없는데 날 좋아한다는 그 마음이 스스로를 기만하는게 아닐지 생각해봐요” 라고요.

참 신기하죠, 이 둘은. 공간적으로도 멀리있고, 취향이나 기질도 다르고, 편지를 쓰는 밀도가 이렇게 달랐음에도 이런점이 연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태우게 했다니요. 사랑은 자기와 가장 먼 절대적 타자를 더욱 욕망하게 되기때문일까요? 아무튼 저는 카프카의 편지가 도무지 연애편지처럼은 읽히지 않았는데, 아마도 저한테 ‘연애편지는 이래야 한다’는 어떤 상이 투여되서인거 그런가봐요.

오늘날 생각하는 <편지>라는 형식은 근대 문학에서 많이 차용되었다고 해요. 그 맥락에서 편지는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것이었고, 편지를 씀으로써 쓰는 주체를 확인하는 장치이기도 했대요. 그런데 카프카의 편지는 그런 편지 양식을 따르지 않지요. 카프카의 편지에는 '편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 수없이 등장하는데요, 보내지만 가닿지 못하는 것,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를 맴맴 도는 거리감이 카프카에게는 전연 방해로 작동하지 않았던 듯해요.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거리감이 카프카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채롭게 만들었던 것일까나요ㅋ


암튼 카프카씨는 세번이나 결혼하려고 했지만(펠리체랑 두번, 율리랑 한번) 결국 독신자로 남았어요. 왜일까요? 일차적으로 결혼은 고독을 빼앗아갈 것이기 때문에? 카프카에 의하면 글쓰기란 필연적으로 자신을 ‘낯선 세계에 진입하게 하여 길을 잃는’ 것이라고 해요. 즉 글쓰기에는 고독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결혼하게되면 혼자 있던 시간을 배우자와 나눠야 하잖아요. 또 결혼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비판했던 아버지(입법자)가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아무도 안 만나고 글쓰기에 매진해도 됐을텐데, 카프카는 글쓰기의 세계만을 절대적으로 만들지도 않아요. 오히려 카프카에게 글이 가장 잘 써지던 시기는 연인과의 긴장도가 극에 달했을 때라고 하니 말이예요.

재미있는건 카프카의 작품속 인물들이 거의 다 독신이라는 점이예요(동물 아내가 있는 원숭이와 소송의 화부 두 작품을 제외한 모두). 그렇지만 세계를 등지고 사는 독신이 아니라 언제나 관계 속에 있는 독신이지요. 아버지의 집에 산다던가, 연인과 지척의 거리에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또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해요. <나이든 독신주의자>, <독신자의 불행>, <가장의 근심>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카프카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밀폐된 지하실’에서 글을 쓰고싶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살아온 모습만으로 보면 직장도 성실히 다니고, 부모님과 줄곧 함께 살고, 연애도 하고, 종종 친구들을 만나는 등 늘 관계 속에 있던 사람이예요. 그래서 카프카가 말하는 ‘독신’이라던가 ‘가족’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보여요.


다음주는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를 끝까지 다 읽습니당.

간식과 후기는 보영샘이 준비해주기로 하셨어요 (와아~)

고럼 다음주에 만나요~~
전체 2

  • 2017-07-07 10:16
    독신은 결혼을 하고 안 하고의 여부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 재미있네요. 자기 결혼 생활을 견고한 가족주의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다면 그 또한 독신자의 삶일 수 있지 않나... 정서적으로 사적으로 서로를 소유하려는 욕망에 붙들리지 않는다면 각자의 고독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거리감을 형성하면서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카프카의 편지에서 우리가 느끼는 의아함은 어쩌면 그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그런 실험을 할 수 없다는 게 함정!

  • 2017-07-08 16:55
    그렇죠. 카프카에게 '독신'의 문제란 단지 어떤 여자와 같이 산다 안산다라고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또, 단지 글쓰는 시간이 부족해질꺼다, 라는 우려 때문도 아니었지요. 가족이라는 이름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그 모든 것 즉, 안정적인 경제력, 통속적인 생활 설계, 권장되는 시민 사회의 여러 규범. 결혼이란 이 모든 것과 더욱 견고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요. 카프카는 사랑과 우정, 가족과 사회, 우리 일상을 둘러싼 고정 관념 전부를 의심해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주에도 '독신자'의 테마를 좀 더 연구해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