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7월 13일 카프카 세미나 세번 째 시간 - 후기

작성자
보영
작성일
2017-07-13 13:41
조회
148

카프카와 글쓰기, 그리고 펠리체 이 셋의 관계는 도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이번 주 역시 카프카의 편지를 읽으며 이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지만 여전히 이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정영우 선생님은 처음에는 무슨말인가 싶었는데 카프카가 기존 체제나 질서 사회 고정된 것에 나름대로 질문 , 의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고 하십니다. 카프카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글을 통해서 였을거라며, <말하다보면 외적 요소때문에 말의 중요성이 변질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발췌해 글을 엮으셨습니다. 이응샘은 카프카가 사회와 대립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실존에 대한 고군분투를 한다고 해석하셨고, 선민샘은 글을 쓸 때 카프카와 만나서만 나올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그 부분에 집중해 글을 엮어보라고 방향을 잡아주셨습니다.  이를테면 카프카의 편지에서 ‘글’과 ‘낯설음’ 이라는 키워드를 포착했다면 이 둘을 가지고 카프카가 쓴 편지글이 나에게 낯선 이유를 찾는 방식으로 질문을 풀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한 부분을 읽더라도 텍스트를 보다 꼼꼼히 읽을것을 조언해주셨습니다.


이응 선생님은 카프카에게 있어서 문학과 결혼이 어떤 관계였는지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이전까지는 카프카가 사랑하는 방식이 다소 이기적으로 보였지만 마지막을 읽고 나니 이 사람이 정말 사랑했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지셨다고 해요. 그렇다면 이응 샘의 테마는 <카프카가 사랑하는 방식>이 될 테고, 그렇다면 1) 무엇을 사랑했나? 2) 어떻게 사랑했나? 하는 질문에 대답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문학과 펠리체를 둘 다 사랑했으나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한 카프카. 도대체 문학이 그에게 무엇이었길래 그는 펠리체를 포기했을까요? 우리는 카프카가 아니므로 그가 그런 편지를 쓴 의도나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남은 편지를 가지고 그 편지가 (혹은 그가 펠리체를 사랑해서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가져다준 효과와 그 편지를 쓰는 일이 카프카에게 어떤 시간을 남겼는지는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로 1914-18년은 세계대전이 진행중이던 시기입니다.  더군다나 카프카가 살았던 당시의 프라하는 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체코라는 독립국으로 전환되는 시기였고, 그 안에서 유태인 등 카프카를 둘러싼 세상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 시종일관 카프카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기만의 논조로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등을 돌린 사람이 아닌지라 카프카 역시 신문을 읽고 정치적인 의견을 말하고 하는데… 동시에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그는 글쓰기에 집중하고 나머지 삶을 최소한으로 유지합니다. 그는 솔직히 글에 자기 밑바닥을 다 드러냅니다. 그는 판결해달라고 말하지만… 카프카의 글쓰기는 정말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는 글쓰기인가요? 주변사람들 의견이, 애인 친구 가족의 태도가 그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성연 선생님은 이번 과제에서 카프카의 ‘두 자아'를 화두로 제시하셨습니다. 카프카가 원하면서도 못견뎌한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주는 소음, 그리고  듣고싶어하는 마음 내면의 소리 뭔가를 추동하는 마음 속 욕망이었던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 둘의 싸움이 문학이었던걸까요? 마음 속 소리가 이사람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인걸까요? 두번째 자아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므로 결혼을 피했던 것일까요? 카프카에게는 도달해야할 어떤 지점이 있다기보다 작업을 계속 하는 것만이 중요한데 그것은 첫번 째 자아와의 싸움 속에 있고, 카프카는 그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그러나 첫 번째 자아가 없이는 두 번째 자아도 작업을 할 수 없다면 이들은 어떤 관계인걸까요?


수경 선생님은 ‘유령'을 고독이라 해석한 글을 작성하셨습니다. 그의 글에는 ‘유령'이라는 개념이 몇 번 등장하는데, 과연 이때의 유령은 어떤 의미일까요? 만약 고독이라면 카프카에게 고독은 어떤 의미일까요? 카프카는 유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하지만 이 때의 자유는 과연 어떤 자유인걸까요? 편지를 읽고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카프카는 편지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유령에 둘러싸여있다고 느낀 것일까요? 근대 소설이 등장하던 시기에, 발자크 같은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자기의 입지를 공고히하고자 했답니다. ‘발자크풍'을 만들어내려 했고, 소설이 성공하자 이거 되는구나! 하고 그 일에 매달렸다고 해요. 그러나 카프카는 출간을 목적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작품을 불태워버리라고 했으니까요. 쓰는게 그에게는 중요했지만 그것은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고 나는 이런사람이야라고 설명하거나 자기를 이해하려고 쓰는것과 달랐던 것 아닐까요? 카프카의 편지를 읽는 내내 카프카에게 글쓰기가 정말 중요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에게 글쓰기란 자기 안에 들어와있는 제도 법 한계 통념을 깨뜨려나가고 그 말 , 그 언어로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를 포착하거나 다른 삶의 진실을 보기 이해서 언어를 쓰는 작업이었던걸까요?


들뢰즈와 가타리는 카프카가 펠리체의 피를 흡혈하며 글을 썼다고 했지만, 선민 선생님은 카프카가 자기 자신의 피를 흡혈해 글을 썼다고 보셨습니다. 실제로 마지막에 카프카는 결핵에 걸려 삶을 마감했더라구요. 그러나 펠리체는 여전히 카프카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한데, 선민 선생님은 그를 '유혹자'라고 보았습니다. 카프카는 한계에 부딪히면 그 한계에 맞서 싸우거나 그 한계를 넘어가고싶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펠리체는 카프카에게 '법'과 대응하는 존재였는데, 표준적인 삶,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고 그녀 역시 계속 그 삶을 이어가고 싶어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카프카가 스스로 편지에서 밝히듯 '두 개의 자아' 개념을 대입해보면,  펠리체로 대표되는 첫 번째 자아와의 세계와 두 번째 자아가 꿈꾸는 '작업'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카프카는 첫 번째 자아의 세계를 비틀고 싶어하는데, 그렇다면 첫 번째 자아와 관계를 맺은 상대가 괴로워질텐데요.


여전히 수많은 질문을 남기는 카프카의 편지. 수수께끼같은 그의 편지를 읽다보면 통념과 내가 전제하고있던 개념과 대치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이렇게 아는데'를 모두 밀어두고, 오로지 ‘카프카에게 이것은 이랬다' ‘카프카는 이렇다'에 집중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란 말씀을 새기고,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카프카의 편지를 읽는 시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 수신인이 바뀝니다. 이번에 편지를 받는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해 읽어보면 재미있을거라고 하셨는데요, 아버지에게는 카프카가 어떻게 글을 썼을지 궁금하네요. 그러면 또 다른 편지 뭉치(?)와 또 다른 질문과 함께 다시 만나기로 … 다음주에 뵈어요!

전체 3

  • 2017-07-13 19:07
    보영 선생님의 후기 데뷔를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개인적으로 저는 일기보다는 편지에서 카프카를 더 알고 싶어졌네요^_^ 아버지에게는 또 어떤 편지글을 작성했을지 기대됩니다아.

  • 2017-07-13 20:20
    우왕~ 신속한 후기 감사합니다 ^ㅇ^ 보영샘 백수된거 축축축~!! 미모의 여성이 공부방에 있으니 훈훈했어요ㅋ 자주 얼굴 보여주세요 ~

  • 2017-07-14 00:14
    미모의 여성이 공부방에 있는 풍경... 내가 봤어야 했는데!! 규창아, 후기계의 미풍양속으로 사진이랑 기록 남겨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