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Monday

"들뢰즈와 함께 읽는 철학사" 2강 후기

작성자
황지은
작성일
2018-03-07 21:04
조회
132
개인적으로 저는 작년에 ‘동화 인류학’ 세미나를 통해 <안티 오이디푸스>를 잠깐 맛보면서 처음 들뢰즈를 접했는데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저의 욕망이 어떤식으로 작동하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기회여서 개인적으로 매우 재밌었습니다. (제가 자본주의적 욕망이 좀 강한 편이라...) 또한 설명을 굉장히 과학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사회구조의 작동방식과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작동방식이 욕망 기계에 다같이 참여한다는 대목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들뢰즈님 사모합니다.... (뜬금 없는 고백 죄송합니다)

각설하고 후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서는 ‘-와'의 철학, ‘pop-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들뢰즈 철학의 특성을 알아보았습니다. 들뢰즈는 철학을 한다는 것이란 자신이 공부하는 철학의 개념들을 충실히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자신과 만나는지, 즉 그 개념들을 가지고 자신이 현재 마주한 문제를 어떻게 보게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1. 사유의 이미지, 이미지 없는 사유

이번 시간에는 들뢰즈가 비판을 가한 기존 철학의 특성들, 그리고 들뢰즈가 데이비드 흄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들뢰즈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깨버립니다. 보통 주위에 누군가가 철학 전공을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철학사를 꿰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각 철학자들이 어떤 이론을 가지고 있는지를 훤히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저 역시도 그런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이 철학의 역사가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며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철학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각 철학자들의 개념을 많이 꿰고 있다는 것은 지식의 축적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반드시 사유의 생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철학사를 꿰고 있는 것보다는 ‘내가 배운 개념을 가지고 지금 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사유로 도달하게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죠. 자신이 마주한 문제를 설명할 때 가져오는 개념은 그 개념이 이전에 지녔던 의미로 완전히 환원되지도 않고, 그 개념을 가지고 온 나 또한 더 이상 그 개념을 마주하기 전의 나와 동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즉 문제와 내가 만나 새로운 사유가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개념을 충실히 이해하고, 충실히 재현하는 것으로는 사유가 탄생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마주한 개인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개념이 초월적으로 모든 문제를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에 상관없이, 개인의 특성과 관계없이 모두가 똑같은 상황 안에서 똑같이 생각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겠죠. 때문에 사유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공준’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전제, 우리는 똑같은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통감, 언어에 담긴 특정한 가치(예: ‘이번에 OO이 벤츠 뽑았대'라는 언급에서 드러나는 ‘벤츠'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가치평가) 등 당연하게 또는 무심코 받아들였던 공준들을 왜 저렇게 생각하지? 왜 저렇게 얘기하지? 라고 의심하고, 깨부수는 것입니다. 사유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이미지 없는 사유에 이르는 것.

음 개인적으로는 저는 현재 청소년 교육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와중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교육에 관한 어떤 강한 전제가 제 안에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요, 가령 ‘교육은 어쨌든 필요하다’던지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육은 꼭 필요할까? 좋은 교육이라는 것이 있을까? 교육이라는 행위에는 어떤 관계가 작동하는 것일까? 어떤 욕망들이 만난 것일까? 라는 질문들은 좀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이들과도, 선생님과도, 제 자신과도, 즉 누구와도 제대로 만날 수 없을것 같은 위기감이 듭니다.....

2. 파도타듯 철학하기

철학사를 꿰는 것이 반드시 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듯이, 들뢰즈는 ‘기원'이나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어떠한 개념이 언제 최초로 나왔는지, 그것이 어디에 도달하는지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그는 마치 서핑을 하듯이, 중간에서 마치 ‘전투를 하듯이' 철학하라고 말합니다. 판단하지 않고, 다가오는 개념들을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미리 어떤 개념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중심삼아 어떻게 그 개념을 사용할 것인지를 궁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이것은 어떤 개념에 갇혀 기존의 우리를 고수하는 것이 아닌, 시시각각 달라지는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요소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그때그때 만들어내는 것도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파도 타듯이, 중간에서, 상이한 힘들과 전투를 벌이며.

3. 흄과 들뢰즈

들뢰즈는 철학사의 인물들 중에서도 기존 철학의 사조로부터 벗어나는 철학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들 중 하나였던, 들뢰즈에게 매우 중요했던 인물인, (저는 이름만 알고 있던) 데이비드 흄을 알아보았습니다. 들뢰즈는 흄이 어떻게 ‘그의 영토로부터 달아나고 있는가'에 집중하는데요, 흄이 활동하던 당시의 철학적 기조는 주체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긴 반면, 흄은 주체를 ‘지각의 다발'로 보았습니다. 이성이나 오성이 처음부터 완전히 주어져 있고 주체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과 오성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과정에서 주체가 구성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믿음을 내포합니다. 우리는 매일 태양이 뜨는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내일도 태양이 뜰 것이라고 ‘믿습니다'. 즉 태양이 뜬 사건과 우리의 믿음을 연결시켜 하나의 인식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건을 ‘믿음'에 연결시키는 우리의 인식은 항상 착각을 내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오류가 있느냐 없느냐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어리석음', 착각에 대한 고발입니다. 완전무결한 철학적 개념을 창안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 속에 내포한 착각을 안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를 묻습니다. 예를 들어 흄은 이성을 가지고 어떻게 정념을 억제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그 정념이 가진 경향성을 바라보고, 그 정념과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홉스처럼 정념을 ‘이기적인' 것으로 가치평가를 내리고 억제해야 할 것으로 보는 대신, 흄은 정념을 하나의 ‘편파성'으로 보고 그것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들뢰즈는 이렇게 흄이 기존의 철학자들과 단절하는 지점에서, 단순히 단절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갈 것인가를 보았습니다. 실천적 문제들 속에서 앎을 구성하고, 앎과 실천이 나뉘지 않는 철학.

다음 시간에는 이번 시간에 다 나가지 못한 흄의 나머지 부분을 마저 배우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루크레티우스라는 (저한테는) 생소한 철학자를 만나볼 예정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_+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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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8 15:15
    철학이 문제삼는 것이 '오류'가 아니고 '어리석음'이라는 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들뢰즈는 기존의 철학들이 전제하고 있던 것들을 전복시킴으로써 오히려 철학적 작업들을 훨씬 더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것 같습니다. 다음주도 기대가 되네요. 어떤 철학자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을 채운샘의 해석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꿀 같은 기회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