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제물론] 1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4-23 21:57
조회
66
180421 우한강 후기

夫言 非吹也 言者有言 其所言者 特未定也 果有言邪 其未嘗有言邪 其以爲異於鷇音 亦有辯乎 其無辯乎 道 惡乎隱 而有眞僞 言 惡乎隱 而有是非 道 惡乎往而不存 言 惡乎 存而不可 道隱於小成 言隱於榮華 故有儒墨之是非 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 欲是其所非 而非其所是 則莫若以明

우리의 말은 단순히 소리만 나오는 게 아니다. 말에는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그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별도로 시비가 확정된 것이 아니니 과연 말이 있는 것인가, 일찍이 말이 없는 것인가. 그것은 병아리의 소리와도 다른데 또한 구별이 있는 것인가 구별이 없는 것인가. 도는 어디에 숨었기에 진위가 있게 되었는가. 말은 어디에 숨었기에 시비가 있게 되었는가. 도는 어디로 가든 있지 않겠는가. 말은 어디에 있든 옳지 않겠는가. 도는 작은 성공에 숨었고 말은 화려한 꾸밈에 숨었다. 그러므로 유묵(儒墨)의 시비가 있게 되었으며 상대가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가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주장한다. 상대가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주장하려면 명(明)에 비추는 것(以明)만함이 없다.

-[제물론]을 읽는 법: 1. <장자>가 단독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각 구절의 순서와 연관성을 의식하지 않고 보는 것. 2. <장자>가 단독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맨 앞 구절 남곽자기와 안성자유의 대화의 연장으로 [제물론] 1장을 읽어보는 것.

-[제물론]의 구절들을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진 장으로 읽는다면 그 논증의 순서는; 자신의 내면/감정(我)에 집중하여 자연의 관점을 얻는 것(以明)

-장자가 살던 시대는 道가 분별되는 方의 시대=제자백가 시대.

-吹: 단순한 소리

-言者有言: 말에는 판단력을 거친 내용과 의도가 담겨 있다. 우리의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成心을 통과한 것.

-定: 확정된 是非.

物無非彼 物無非是 自彼則不見 自知則知之 故曰 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 方生之說也 雖然 方生 方死 方死 方生 方可 方不可 方不可 方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 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 果且無彼是乎哉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無窮 是亦一無窮 非亦一無窮也 故曰莫若以明 以指 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 喩指之非指也 以馬 喩馬之非馬 不若以非馬 喩馬之非馬也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으며 사물은 이것 아닌 것이 없다. 그것으로부터 하면 이것을 볼 수 없고 스스로 인식하면 상대방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것으로부터 나오고 이것 또한 그것으로부터 나온다. 그것과 이것은 동시에 나온다는 말인데, 비록 그러하나 생기는 것이 있어서 사라지는 것도 있고 사라지는 것이 있어서 생기는 것도 있으며 옳은 것이 있어 옳지 않은 것이 있고 옳지 않은 것이 있어 옳은 것도 있으며 옳은 것에 말미암음은 그른 것에 말미암고 그른 것에 말미암음은 옳은 것에 말미암는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여기에 말미암지 않고 天에 비추니 또한 이것에 말미암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것이며 그것은 또한 이것이다. 그것은 또한 시비가 하나로 된 것이고 저것 또한 시비가 하나로 된 것이다. 과연 그것과 이것은 있는 것인가? 과연 그것과 이것은 없는 것인가. 그것과 이것이 없어지는 것은 도의 지도리라고 한다. 지도리는 본디 고리 가운데를 얻어 무궁함에 응한다. 옳음은 또한 하나의 무궁함이고 그른 것은 또한 하나의 무궁함이다. 그러므로 명(明)에 비추는 것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으로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닌 것을 설명하는 것만 못하고 말(馬)로 말이 말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으로 말이 말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한 마리의 말이다.

-是: 1. 대명사 2. ‘저것’에 대비되는 ‘이것’ 3. 옳음 4. 因是

-因是: 1. 스스로의 인식능력에 집중하여 자연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以明에 이름. 2. 자연의 절대적인 是에 비추어 판단함.

-因彼: 因是와 대비되는 개념어.

-方: 동시에

-照: 균등하게 다 보는 인식능력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1. 천지가 아무리 커도 손가락으로 덮을 수 있다. 2. 천지는 분별. 明에 비추어보면 손가락 하나로 분리하는 것/말을 분류하듯 분리한 것. 끊임없이 분별한다는 의미.

可乎可 不可乎不可 道 行之而成 物 謂之而然 惡乎然 然於然 惡乎不然 不然於不然 物固有所然 物固有所可 無物不然 無物不可 故 爲是 擧莛與楹 厲與西施 恢恑憰怪 道通爲一 其分也成也 其成也毁也 凡物 無成與毁 復通爲一 唯達者 知通爲一 爲是不用 而寓諸庸 庸也者 用也 用也者 通也 通也者 得也 適得而幾矣 因是已 已而 不知其然 謂之道 勞神明 爲一 而不知其同也 謂之朝三 何謂朝三 曰 狙公 賦芧 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名實 未虧 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 聖人 和之以是非 而休乎天鈞 是之謂兩行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한다. 도는 걸어 다녀서 만들어지고 사물은 이름 붙여서 그렇게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그렇게 되어서 그런 것이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서 그렇지 않다. 사물은 참으로 그러한 것이 있고 사물은 참으로 可한 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사물은 없고 可하지 않은 사물도 없다. 그러므로 풀줄기와 큰 기둥, 문둥이와 서시를 들어 엄청 크고, 어그러지고, 이질적이고 괴이한 것에 이르기까지 도가 통하여 하나가 된다. 그것을 나누면 성립하고, 그것이 성립되면 훼손된다. 모든 사물은 성립과 파괴가 없으면 다시 통하여 하나가 된다. 오직 통달한 자만이 도와 통하여 하나가 됨을 알고 이것을 쓰지 않고 庸에 지식을 깃들게 한다. 庸은 쓰임이다. 쓰임이라는 것은 통하는 것이요 통하는 것은 얻음이다. 얻는 데로 나아가서 거의 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할 따름이다. 이미 그러함을 알지 못하니 그것을 도라고 이른다.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하나가 되려고만 하고 그것이 같음을 알지 못함을 朝三이라고 한다. 무엇이 조삼인가? 저공이 도토리를 나누어주며 말했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분과 실질에 어긋남이 없는데도 기쁨과 분노가 작동하는데 이 역시 이것에 말미암는 것이다.(因是)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을 조화롭게 하여 시비를 통하여 천균(天鈞)에서 쉰다. 이것을 양행(兩行)이라 한다.

-厲: 문둥병 라(癩)와 통용

-恢恑憰怪: 엄청 큰 것 / 어그러짐 / 이질적임 / 괴이함

-寓: 자연스럽게 깃들게 한다. (cf. 居: 그곳에 놓고 고수한다.)

-用: 자신의 에너지를 쓰는 것.

-通: 나의 에너지를 쓰는 것은 항상 다른 것과 통하는 문제. 나는 다른 것을 포함한 존재임.

-賦: 나누어주다. 쌓여있는 것을 풀어서 쓸 때.

-因是: 명분과 실질이 어그러지면 기쁨과 분노가 작동하는데 1. 이것이 작동하지 않으려면 是에 말미암아야 한다. 2. 이 또한 是의 작동이다.

-和: 齊=通

-休=遊

-兩行=道樞=天鈞

[제물론] 조금씩 나가고 있습니다. 역시 어렵네요ㅠㅠ 글자는 어려운 게 별로 없는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물론]을 읽는 방식을 이 책을 단독 작가의 작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我(상식세계)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의 감정과 인식에 집중하여 以明을 얻는가, 하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본문과 반대되는 뜻의 사족을 붙일 일이 적어졌어요. 또 다른 [제물론]을 읽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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