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역사팀 후기

작성자
손지
작성일
2018-08-22 13:31
조회
66
후기가 늦어 죄송합니다! 역사팀 호메이니편 시작합니다~ 


이란의 현대사로 들어가며 - 호메이니와 이슬람 혁명 

역사팀에서는 고대의 역사에서 훌쩍 점프해서 이란의 현대사로 옮겨왔습니다. 이란의 현대사는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메이니’, 그리고 ‘이슬람 혁명’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1979년 일어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세계를 뒤흔드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서구화로 나아가고 있는 와중에 이란에서는 반근대로 나아가는 혁명이 일어났으니까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호메이니가 있습니다. 이슬람 혁명은 사실상 그의 지도력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이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서구화와 친미 왕권에 대한 오랜 저항운동 속에서 이슬람 세계에 최초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득특한 정치체제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슬람 공화국은 반미 운동으로 탄생한 우연한 체제가 아니며, 호메이니 또한 갑자기 나타난 영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담배 불매 운동 - 성직자의 영향력이 확대된 계기 

이란이 대표적 시아파 국가과 된 것은 사파비조의 수립과 관계가 깊습니다. 사파비조의 샤는 스스로 자신을 7대 이맘의 자손이라 자처하면서 성직자들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장악했고, 수니파에 대한 전쟁을 통래 이란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양시켜 하나로 통합합니다. 이때 성직자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시작하여 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활동 기반을 구축합니다. 이후 사파비족이 붕괴되고 카자르조의 시대가 되면서 왕조가 사치로운 생활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신자들은 성직자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으로 성직자의 역할이 부각된 계기는 ‘담배 불매 운동’입니다. 국가 재정이 고갈되자 정신을 놓은 왕정은 외국인에게 국가의 여러 이권을 양도하기 시작합니다. 철도 부설권, 은행 설립권, 지폐발행 독점권.. 등이 외국회사의 손에 넘어갔으니, 이제 외국회사는 단물을 쪽쪽 빨아먹으면 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담배 전매권까지 넘어가자 이란인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물담배를 애호하는 이란인들, 또 담배를 경작하는 상인들에게 이는 갈데까지 간, 충격적인 조치였던 것이죠. 성직자들은 담배사용을 종교법으로 금지시키고, 이란 국민의 대다수는 이를 지지합니다. 샤는 격렬한 저항에 굴복해 결국 외국 회사는 담배 독점권을 반납하게 되죠. 1891년, 담배 불매 운동은 성직자의 영향력을 확대시킨 결정적 사건이었고, 이 결합은 후에 이슬람 혁명으로 발전하는 씨앗이 됩니다. 


입헌혁명 - 입헌정부의 탄생 

이어서 이슬람 혁명의 불씨가 된 또 하나의 사건은 입헌혁명입니다. 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의 내정간섭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내부에서는 성직자와 상인을 중심으로 한 비밀회가 결성되면서 카자르조 중앙정부는 심히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중앙정부가 설탕가격의 폭등을 근거로 테헤란 상인을 체포하여 공개처형하는 명령을 내리자, 이것이 불씨가 되어 대중들의 정치운동이 폭발합니다. 담배 불매 운동에서 보여주었듯 이번에도 상인들과 성직자들은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상인들은 단합하여 테헤란 시장의 문을 닫고, 곳곳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개최되는 등 시위대들은 전제군주제의 종식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결국 샤는 이 운동에 굴복하여 망명하고, 이란은 독자적 헌법을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룹니다. ‘입헌혁명’은 이란의 정치체제를 전제군주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꾸어 놓는 사건이었습니다. 


팔레비 왕조의 탄생 - 친외세 왕조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소련에 대항할 근거지가 필요해지면서 이란에 눈독을 들이고, 또 이란 내부에서도 지속적인 외세의 개입을 막아줄 강력한 중앙정부를 요구하게 되면서 1921년 영국의 지원으로 새로운 왕조인 팔레비조가 탄생하게 됩니다. 샤로 등극한 레자 칸은 서구식 개혁을 적극 받아들였습니다. 근대식 군대 창설, 근대식 교육 도입, 근대식 법원으로 전환 등 이란을 서구 일색으로 물들이자 성직자들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물론 이는 외부적으로 볼때이고, 그 안쪽에서는 혁명의 물결이 다시금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석유 국유화 운동과 오일쇼크 

산업화를 거치면서 석유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세계 경체의 주요 변수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석유를 지배하려는 강대국들-미국, 영국, 러시아는 산유국을 두고 땅따먹기 싸움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그 기류를 타고 친미국가로 탈바꿈한 팔레비 왕정은 미국의CIA를 등에 끼고 철권통치를 강화했으니 사실상 미국의 개와 다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란에는 노동운동과 대중운동이 확산되었고, 공산당의 공식 출범과 민족주의 세력인 국민전선이 결성되는 등 나름으로 민중의 힘을 결집합니다. 무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머리 끝까지 솟아 있던 상태에서, 국민전선이 석유 국유화 운동을 주창하자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 된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세계 경제는 거의 막장이 됩니다만 이는 산유국이 전 세계를 물 먹인 사건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기존의 다국적기업들이 헐값에 석유 채굴을 해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산유국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자원 강탈이나 다름없었죠. 오일쇼크로 인해 중동국가들은 다국적기업의 수탈을 몰아내었고, 국가 재정은 천지 차이로 뒤짚어지게 됩니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계기로 중동권은 국제 무대에서 어느정도 발언권을 얻게 되었고, 이는 더이상 제국주의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 중동의 정치 지형은 다시 재편되고 있습니다. 현재 중동에서는 시아파가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시아파 국가인 이라크, 헤즈볼라와 함께 연대를 구축하고 있지요. 여기서 ‘헤즈볼라’란, 호메이니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에 대항한 시아파 민병대에서 출발한 수비대로 오늘날에도 이란과 시리아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시아파는 수니파에 비하면 굉장히 소수이지만, 그럼에도 이슬람 안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던 것은 혁명의 발자취가 그들의 역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이란의 현대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했지만, 아직 입체화가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음 세미나에서는 이란이 근대화를 거부하게 된 맥락이나 서구화에 저항할 수 있던 토대, 그리고 사람들이 호메이니를 환호하고 기대한 건 무엇이었는지, 세계 정세는 또 어떠했는지를 함께 토론하며 납작했던 이란 현대사를 조금씩 입체적으로 구성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체 1

  • 2018-08-24 14:07
    호메이니의 등장, 이슬람 혁명의 배경을 후기로나마 보면서, 수업 중에 이슬람이 근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지만 강렬하게 반항한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제 머릿속의 납작한 이란 현대사가 어떻게 입체적으로 구성될지, 다음 세미나에서 논의 될 내용들이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