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영화 후기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18-08-27 19:57
조회
70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영화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는 있다. 그 중에서도 예술 영화는 문제의식이 심오하다던가, 스토리가 다층적이라거나, 인물의 심리 묘사가 치밀할수록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런데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예술 영화에 대한 기존의 환상을 깨준다. 영화의 내용이나 사건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기존의 관점으로 포착되지 않는 방식으로. 영화와 현실, 배우과 관객, 연기와 실제의 경계들이 만들어졌다가 허물어지는 장면들이 계속 끼어들기 때문에 내가 보고 있다고 여긴 것이 자꾸 흩어져 버리는 느낌이다. 내가 어떤 틀로 영화를 보려고 하면, 영화는 바로 그것을 깨버리는 것이다.

가령 첫 장면에서 한 배우가 자신이 감독 역을 맡은 연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코커’라는 동네에서 여배우를 모집 중 이며 현지인들 중에 (기준은 모르겠지만) 몇몇을 배우로 뽑고 대기하던 조연출(?) 시바 부인이 이름과 주소를 받아 적는 장면이 이어진다. 처음엔 촬영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중심 소재인가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시바 부인이 배우들을 태우러 가는 길에 만난 행인과의 대화를 들으며 그 생각에 혼란이 왔다. 시바부인에게 분필을 주기 위해 기다리던 그는 알고 보니 <올리브 나무사이로>의 전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선생님 역을 했던 사람이었다. 익숙한 배우를 만났다는 반가움도 잠시, 낯설은 주민으로서의 배우의 모습에 순간 배우과 일반인의 경계가 흐려진다. 일반인으로서 그가 자신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생계 때문에 역할을 맡았다는 모습이 이전 배우의 모습과 겹치면서 의문이 들었다. 그럼 이제 그를 일반인으로 봐야 하는 걸까? 배우로 봐야하는 걸까? 이 영화에 다시 출현 했으니 주민으로 출현한 배우일까?

이 영화의 대부분의 배우들이 이렇게 현지인 중에 뽑았다고 한다. 영화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계속해서 배우이자 현지주민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덕분에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려는 생각은 자꾸 어깃장이 난다.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함은 그대로 배경과 사건으로도 이어진다. 인물들이 영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것처럼 보이니 배경과 사건 역시 그 흐름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인물들의 동선에 따라 그들의 발이 닿는 곳이 그대로 촬영장이 되고 연기와 실제가 영화의 사건이 된다. 영화 속 촬영이 중단 된 틈에 감독이 셋트장과 외부를 가르는 줄을 넘어 동네 아이들의 시험 문제를 봐주는 모습, 촬영장에 가는 길에 만난 주민과의 대화, 촬영장에서 허드렛 일을 하다 배우가 된 후세인의 풋풋한 구애 장면과 후세인의 구애를 받는 동네주민이자 여배우 역의 테헤라의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모습 등이 모두 영화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영화의 중심 인물이나 스토리를 예측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사건을 그냥 보게 된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사건들을 본다고 해야 할까. 인물들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들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거나 어떤 문제들이 이렇게 해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장면은 올리브 나무 사이로 후세인이 테헤라를 한참을 쫒아가며 화면에서 아주 조그맣게 보이며 멀어진다가 갑자기 뒤돌아오는 데서 끝난다. 보통은 이런 장면에서 나레이션이 나오거나 뒤돌아선 남자 배우의 표정을 보여주며 알듯말듯한 실마리를 주는데 여기서는 후세인이 테헤라게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답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그저 풀밭으로 보이던 올리브 나무 숲이, 테헤라에겐 지름길로 보이고, 후세인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가는 길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내가‘잘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방식들이 어쩌면 굉장히 편협한 태도가 아닌가를 질문하게 한다. 내가 보는 방식이 전부가 아님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것 같다. 이상 감상 후기 끝~
전체 2

  • 2018-08-28 11:01
    그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감정선을 건드리는 상업 영화들만을 보다가, 압바스류의 영화들을 보니 참 낯설어요. ㅋ 뭔가 내용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어요. 호세인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궁금한데 영화 안에서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공부가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쨌든 밋밋한 듯하지만 뭔가 매력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 2018-08-28 15:38
    오오 그러네. 인물이나 스토리를 예측하며 보는게 아니라 보이는 사건을 그냥 보게 되는 영화와 다큐의 경계를 넘어가는 영화ㅋ 키아로스타미,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