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 에이징 세미나

4.1 몸살림 세미나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03-26 20:24
조회
77
기(氣)에는 아홉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격기(膈氣), 풍기(風氣), 한기(寒氣), 열기(熱氣), 우기(憂氣), 희기(喜氣), 경기(警氣), 노기(怒氣), 산람장기(山嵐瘴氣)가 그것입니다. 이중 재밌는 건 산람장기인데, 더운 지방의 산과 숲이나 안개가 짙은 곳에서 습한 열기가 올라갈 때 생기는 나쁜 기운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북쪽에 사는 중국인들은 적도 부근에 살면 그 습한 기운을 몹시 답답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럼 그 기운장과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을 한가지 증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기(氣)라고 하는 것은 마치 방향 없는 바람처럼, 혹은 공기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그 공간성 자체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가 맑다든가 탁하다든가 하는 것도 내가 그 공간과 어떻게 통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을 해석하느냐에 달린 이야기인 것입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내쉬는 숨이 많고 들이쉬는 숨이 적어' 병에 걸리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단순히 말해 들어가는 것에 비해 나가는 것이 더 많으니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럼 사람이 기운이 빠져 죽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내쉬는 숨은 적은데 들이쉬는 숨이 많은' 경우에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사기(邪氣)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병의 원인을 외부의 나쁜 바이러스와의 접촉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기 역시 '나쁜 기운'이라는 게 있어서 그게 우리 몸에 침입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이처럼 들이쉬고 내쉬는 관점에서 보면 사기는 공기중에 떠도는 기 중에 특별히 나쁜 기운 같은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호흡은 기본적으로 우리 몸이 외부와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우리 몸은 그것들을 해석하여 에너지로 쓰고 다시 내쉬면서 몸의 순환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해석하지 못한 잉여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쌓인 기가 몸의 순환을 저해하게 되는 것이지 달리 사기라는 게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중풍(中風)과 중기(中氣)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었습니다. 중풍과 중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증상이 비슷합니다. 결국 기가 막혀서 거품물고 까무라치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증상은 같더라도 중기와 중풍은 전혀 다른 병입니다. 중기는 기가 가라앉는 게 원인이고 중풍은 기가 치솟는 것이 원인이죠.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중기인데도 중풍에 쓰는 약을 처방하면 큰일난다고 몇번이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중기 같은 경우는 약을 쓰지 않아도 깨어나는데 기를 내리는 중풍 약을 쓰면 사람이 죽는다고 말이죠.

 

 
중풍은 대개 잘 치료되지 않지만 중기는 얼마 가지 않아서 곧 깨어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대개 중풍과 중기는 원인이 같은 바, 모두 분노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의 오지(五志) 가운데서 성내는 것이 제일 심하여 발병도 갑자기 일어난다. 대개 젊은 사람은 기혈이 허하지 않고 진수가 마르지 않았으므로 화기(火氣)가 수기(水氣)에 눌려서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몸이 싸늘하고 가래침이 없으며, 얼마 안 가서 곧 깨어난다. 그러나 노쇠한 사람은 기혈이 모두 허하고 진수는 이미 고갈되었으므로 화기가 눌리는 데가 없이 올라가기 때문에 몸이 덥고 가래침을 흘리며, 흔히 치료되지 못한다.

 

 

중기와 중풍의 이야기는 우리가 증상과 질병 자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증상은 병의 단서가 되지 그것 자체는 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 만약 열이 난다고 해서 무조건 해열제를 쓰면 그게 대체 어떤 원인으로 난 열인지 알 수 없듯 말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증상들을 가지고 의사는 어떻게 다른 병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 <동의보감>은 맥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맥이 뜨면 중풍이지만 맥이 가라앉으면 중기라고 말이죠. 그런데 맥이라니! 우리가 저번주에 짚어본 그 애매~한 맥으로 과연 이것들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래서 옛날에는 마을의사가 중요했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 의사는 그들의 생활을 평소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보를 바탕으로 병을 변별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요. 그 사람의 먹는 습관, 자는 습관, 걷는 습관까지 고려하는 것이 의학이라고 생각되는 시대의 텍스트가 <동의보감>이 아닐까요. 이건 단지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고 말입니다.

 

 

사이드 텍스트로 읽은 책은 <생명자본>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인상으로는 생명의 상품화를 맑스와 푸코를 원용하여 비판적으로 그리고 미래적으로(!) 비판하는 텍스트라는 느낌입니다. 네 무척 어려웠고요...ㅠㅠ 게놈과 염기서열과 맑스가 도대체 뭔 상관인지 파악하느라 애먹은 서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토론을 시작하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생명공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고 심지어 소비한 사례도 심심찮게 있더군요. 대표적으로 조모혈세포 혹은 제대혈이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태만과 탯줄에 있는 조혈모세포를 냉동보관하여 나중에 큰 병에 걸리면 그 세포를 이용하여 치룔르 한다 뭐 그런 원리였는데 실제로 판매되는 상품이고 검색을 해보니 기증이나 이식에 대한 정보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에 난자와 정자를 냉동시켰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수정해서 착상시키는 상품도 있고요. 멀리 갈 것 없이 줄기세포 배양에 대한 열기가 뜨거울 때는 거기에 온갖 재화가 투자되었고 난자 기증자 및 피험자 대우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뜨거움에도 여전히 각관받는 산업이기도 합니다. '생명공학'이라고 하면 마치 SF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인데 사실 피부로 닿는 현실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명'이 물질이 되어 사고팔 수 있다는 인식 속에 있게 되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상품으로 팔려나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고 말입니다.

 

맑스주의는 공장 노동자 같은 문제만 생각이 됩니다만 이렇게 보니 무엇이든 상품화 할 수 있다는 정치경제적 '인식'을 비판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생명이란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만, 그것과 별개로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고 축적하는 동물이라는 경제적 인식 또한 우리에게는 견고합니다. 이런 인식부터 의심하지 않으면 '건강'이라든가 '생명연장' 같은 말에 금방 생명을 사고파는 일에 무감해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생명자본> 4장까지 읽어옵니다.

 

 

수요일에 만나요//
전체 2

  • 2020-03-27 11:42
    이번 세미나에서 邪氣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사기는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사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물론 인간의 신체를 위해하는 바이러스나 외기의 조건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신체 조건에 따라 사기가 될 수도 아닐수도 있는 것이죠. 자신의 기를 강건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백신이죠.
    <생명 자본>도 무척 재미있는 텍스트였죠. 이번에 읽은 부분은 게놈지도를 통해 인간의 생명이 '정보화' 되어 물질처럼 다뤄질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상품이 되어 미래의 '가치'에 투자 가능한 것이 되었다는 것이죠. 어렵다고 하면서도 열띤 토론을 벌였던 것 같아요. 몸세미나답게 이 코로나시국에도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죠.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지금이라도 노크하세요. 굿굿

  • 2020-03-27 15:12
    저도 사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외부에 실체가 있는 '악'한 기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외부기운과 소통한 결과 그것이 잉여로 많이 남겨진 상태를 사기라고 볼 수 있다는 토론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