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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8-29 21:31
조회
67
170829 절차탁마 M 공통과제 / 혜원


드라큘라, 한 뭉치의 타자한 종이들


<드라큘라>에는 제목과 달리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대신 <드라큘라>는 그에 대한 온갖 기록으로 구성된 책이다. 기록되기 전까지 드라큘라는 안개처럼, 분명 존재하는데 알지 못하는 존재였다. 드라큘라 성 주변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가 분명 어떤 존재인지 아는 눈치이지만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너선 하커의 드라큘라 성 방문을 계기로 편지, 일기, 전보, 속기, 신문기사, 타이핑 된 문서, 녹음된 음성에까지, 온갖 매체를 통해 드라큘라는 기록되었고 결국 ‘드라큘라’라는 괴물로 확정되었다. 드라큘라는 사실 마늘과 십자가, 그리고 목을 베는 칼날이 아니라 기록의 축적을 통해 정보화되고 ‘처리’ 된 것이다.

<드라큘라>에 나타난 기록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확정을 위한 기록. 갖가지 기록물로 이루어진 <드라큘라>는 요약하면 ‘드라큘라’라는 실체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안개 같은 존재를 필사적으로 움켜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모아놓은 것이다. 드라큘라는 안개가 되기도 하고 박쥐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 중 한명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혹은 우리 중 누가 자신과 동류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그의 운명을 확정한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말할 때 이들이 믿을 것은 당시 자신들이 쓰고 말하고, 타이핑했던 기록뿐이었다. 그것들을 모아 그대로 보여주는 수밖에, 드라큘라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재구성되지 않은 ‘실시간’ 증거. 조너선 하커는 기록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큘라>는 기록의 나열로 끝난다. 왜냐하면 기록을 재구성하는 순간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사실로 받아들여달라고 하는 여지조차 잃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록을 믿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당시 관계자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때 정신상태는 어떠했는지를 보여줘야 믿는다. <드라큘라>에서 날짜를 쓴 기록만을 취급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시 ‘실시간’ 기록은 일기였고, 비망록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온갖 CCTV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 영상들일 것이다. 이런 기록은 가끔 현실을 압도하여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믿는 기록은 속도와 연관되어 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얼마나 빠르게 자신이 무엇을 보았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 기록하느냐가 그 기록의 신뢰와 연결된다. 조너선과 미나는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거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 그건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되지만 기록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자신과 기록을 일치시키려면 시간의 문제가 중요했으리라. 수어드 박사 역시 다시 열어보기도 어려운 (선택구간 재생이 안 되므로) 녹음을 계속해서 고집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꺼내보는 어려움보다는 우선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바로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드라큘라>에 나타난 기록은 딱히 정리를 위한 것은 아니다. 기록을 돌아보는 것 보다는 기록 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셋째, 기록을 통한 자기규정. 기록을 돌아보는 것은 미나의 몫이었다. 미나는 수어드 박사의 녹취를 타이핑 하고 온갖 증언들과 기록을 정리하며 드라큘라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는 사람이다. 루시의 구혼자들이 안개 같은 드라큘라를 잡으러 다니며 미처 몰랐던 것, 혹은 각자 알고 있었던 것은 미나에게 모여 드라큘라에 대한 정보가 된다. 그런데 그러면서 미나는 한 가지 능력을 얻게 된다. 최면 상태에 빠져서 드라큘라의 실시간 비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정보를 더 많이 얻게 될수록, 그 존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서 그것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 정보가 모일수록 미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각자 능력을 갖게 된다. 이것은 정보가 단지 자신과 동떨어진 종이뭉치가 아니며, 그것을 접하면서 자신 또한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19세기는 전국이 거의 동시에 같은 신문을 읽고 책을 읽게 되면서 자신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이루던 시기였다. 드라큘라의 흡혈은 단순히 그에게 피를 빨려 먹이가 되는 게 아니었다. 흡혈을 당하면 그와 동류가 된다. 또 드라큘라를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점점 그가 갖고 있는 능력을 하나씩 얻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공통된 정보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것과 닮았다.

드라큘라는 결국 온갖 기록의 집적을 통해 퇴치되었다. 그를 죽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는 참을 수 없었던, 반드시 기록을 통해 확정해야 했던 근대인들의 욕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과연 퇴치 된 것일까? 결국 미나는 그의 피를 마시고 아이를 낳았다. 미지의 것을 모두 지우려고 했던 근대인의 욕망, 그래서 순수한 앎, 가족공동체를 이루려고 했던 욕망은 사실 많은 피가 섞인 불순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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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30 10:01
    드라큘라는 결국 '글'을 통해 창조된 존재였군요! 드라큘라 덕분에 불순하게 창조된 이 놈의 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