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7월 26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7-21 16:02
조회
113
크~ 점점 더 더워지고 있어요. 초복을 지나고 대서(大暑, 21)와 중복(中伏, 23)을 앞두고 있습니다. 연구실에 있으면 사실 밖을 거의 안 나가요. 밖에 있는 건 4번 출구에서부터 연구실까지 걷는 정도인데, 그거 걸었다고 아침부터 에어컨이나 선풍기부터 찾게 되더라구요. 지하철도 기다리는 동안 땀이 등을 타고 주룩주룩 흐르는 게 느껴지기도 해요. 개가 왜 여름에 더위를 식히려고 혀를 내미는지 이해가 가는 요즘입니다.

 

이즈쓰 도시히코의 《이슬람》은 카렌 암스트롱의 《이슬람》보다 좀 더 읽기가 쉬웠어요. 카렌 암스트롱의 책은 얇지만 이슬람의 탄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보가 담겨있죠. 그래서 내용이 빡빡하게 채워졌다는 느낌이었고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반면에 이즈쓰 도시히코는 이슬람의 사상이 어떤 식으로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지, ‘윤리’와 ‘법’이라는 키워드에 맞춰서 설명해줬습니다. 하지만 책이 잘 안 들어오는 건 책 탓이 아니죠. ^^ 내용이 빡빡하면 내용 정리가 잘 안 돼서 술술 넘어가고, 술술 읽히면 읽히는 대로 꼼꼼하게 보지 않고 대~략적인 느낌만 캐치하는 우리의 신체를 이번 기회에 바꿔봅시다!

다음 시간 공지하겠습니다. 채운쌤은 두 권의 이슬람을 읽으면서 앞으로 어떤 관점에서 이슬람을 공부할 것인지 구체적인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 숙제가 드디어 나왔네요. 이번에 나눠주신 참고자료와 채운쌤의 코멘트를 상기하면서 각자의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하시면 됩니다. 어떤 내용과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이슬람을 공부할 것인지 A4 한 장 넘지 않게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저녁 팀별 세미나할 때는 철학팀과 예술팀의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두 팀의 발표를 기대합니다. ^_^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셔도 돼요~) 오전 토론과 저녁 강의에 대한 꼼꼼한 정리는 혜원누나에게 맡기고, 저는 참고자료에 나온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간식은 혜원누나와 윤희쌤께 부탁드릴게요~

 

성경은 역사적으로 단일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은 하나의 스토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하지 않습니다. 구약서와 신약서, 유대민족의 신화적 전승과 예수의 제자들의 기록으로 나뉘기도 하고, 게다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흔적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읽히고, 번역되고, 팔린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책인 거죠. 불경은 ‘붓다’라는 위대한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붓다 사후 제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이 기억하는 스승의 말씀과 스승과의 대화를 글로 기록한 것이 불경입니다. 비슷하게 논어도 제자들이 기억하는 공자의 말을 기록한 책이죠. 그러니까 신이나 조사(祖師)가 직접적으로 한 말은 없습니다. 모두 어떤 사람이 기억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로 적었습니다. 이는 곧 우리가 보는 경전들이 모두 최소 한 번 이상 왜곡된 기록임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코란은 어떨까요? 코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의 말씀이 직접적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알라라는 유일신이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리고, 무함마드는 그 계시를 자신의 언어로 기록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신은 기독교에 쓰인 것처럼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신은 오직 무함마드의 계시를 통해서, 무함마드의 언어가 기록된 코란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때문에 무슬림들은 무함마드 사후 코란에 쓰인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에 무엇이 진정한 무슬림이고, 이슬람 정신인지에 대한 논의와 순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된 어마어마한 역사가 모두 이러한 해석의 문제와 연관됩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해석하고 고쳐 읽기이며, 해석과 고쳐 읽기는 다시 쓰는 것이며, 다시 쓰는 것은 세상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12세기에 일어난 루터와 무함마드에 의해 촉발된 무수한 해석과 이로 인해 일어난 혁명을 ‘해석자의 혁명’이라고 말합니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한 ‘해석자의 혁명’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어보세요~

저번 시간과 연동해서 재밌었던 것은 코란이 상인의 언어, 쿠라이시족의 지역 방언으로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신에게 멋지게 돈을 빌려 줄 자는 없는가? 나중에 그것을 몇 배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은 그 손을 오므리는 것도 펴는 것도 마음대로 하신다.”(2:246/245) 신의 말씀이 속세의 사정으로부터 분리되어 성스러움, 통찰로 가득 찼을 것이라는 제 편견이 이렇게 깨지네요. 생각해보면,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라틴어가 아니에요)로, 불경은 빨리어로 쓰였습니다. 결국 신이나 조사(祖師)의 말씀을 적었다고 했지만, 모든 경전은 각자의 환경 속에서 해석된 것이죠. 채운쌤은 꿈에서 들뢰즈를 만났던 경험을 들려주시면서 어떤 문제에 깊이 골몰할 때 환청 비슷한 것을 듣게 되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도 그가 당시 가지고 있던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환청처럼 들려왔을 수도 있는 것이죠. 논어에서 공자가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다, 내가 꿈에서 다시 주공을 보지 못한 것이.”(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 〈술이(述而)〉 5장)라고 했는데, 주희는 공자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젊은 시절 가졌던 뜻이 쇠함으로 풀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들었듯, 공자도 꿈에서 문왕과 무왕, 주공을 보며 주나라 문화로 돌아가는 이상향을 들었을 것 같아요.

잠시 딴 얘기로 샜지만, 어쨌든 종교도 풍토, 관습, 당시 사회·정치적인 문제 등 역사적인 조건과 무관하게 발생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무함마드는 분명 당시 사막의 유목민인 베두인족과 심각한 갈등, 문제가 있었습니다. 코란에 아무리 이슬람을 수용하고 아무리 형식적으로 완전한 교도가 되었더라도 그들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여차하면 언제라도 태도를 바꾸어 우리를 배반한 인간너희 주변에 있는 베두인들 가운데에 겉으로만 신자처럼 보이는 자들이 많다.”(9:102/101, 9:98/97)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해석자들은 무함마드가 메카 시기와 메디나 시기, 계시를 받고 전반 10년과 후반 10년의 코란이 다르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코란은 무함마드가 처한 환경 속에서 적힌 것이죠. 건화형이 얘기한 것처럼, 신의 말씀이란 것도 무함마드가 환경을 극복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적힌 결과입니다. 지금 전체 세미나에서는 이슬람 전반의 역사, 사상으로 들어가지만, 플러스 세미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잡고 갈 것인지 맥락을 분명히 하면 더 재밌게 이슬람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우리 다음 주 금요일 27일 청계산 가는 것 잊지 않으셨죠? 8시까지 청계산 입구역으로 와주세요! 등산 후에는 수다풀이 회식이 예정돼있습니다. ㅎㅎ
전체 2

  • 2018-07-21 21:21
    코란은 성경이나 불경과 비교해도 정말 특별한 책이네요. 다시 쓰는 것을 무한히 가능하게 하는 경전이라니요.
    소생의 모험도 무한히 계속? 암튼, 청계산에서 이슬람을 외치시는 포오즈 사진도 기대할께요.

  • 2018-07-21 23:48
    해석하고 고쳐 읽고 다시 쓰는 과정은 결국 자기가 마주치는 세상 밖에 있는 게 아니니, 여기의 언어, 여기의 문화를 가지고서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것이군요.
    그런데 그런 다시 쓰기의 과정이 세상을 바꾼다니 뭔지 모르겠지만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