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1학기 7주차(4.3) 공지

작성자
정나영
작성일
2021-03-28 17:38
조회
133
봄비가 계속 내리네요. 촉촉한 음악을 들으면서 어제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볼게요. 이번 주 세미나에서는 총체성, 인격, 근대성(영양과 소화, 결혼, 국가), 평범함과 서열, 악과 덕, 힘의 척도, 행위와 가치, 강함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니체가 왜 그렇게 평범하고 평균적인 인간과 평등이라는 관념을 비판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평등 처돌이였던 저에게는 여전히 도발적인 내용이라서요. 니체는 우리 모두는 탁월함에 목말라하면서도 평등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니체에게 인간의 평등이란 “더 많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설정하려는 경향 아래 숨겨져 있는 것”(124쪽)입니다. 평등은 정의로운 가치가 아니라 모든 걸 동질화시키려는 힘의 작동일 뿐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위계도 없고 다양성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차이는 불편하고 위험하니까요. 이런 차이가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의 평등은 왜소한 긍정 혹은 낙천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나의 윤리, 나의 고유성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없겠죠. 

근대성 비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와 국가에서 작동하는 제도는 모두를 같은 욕망을 추구하게 만들고 개인의 역량을 말살시키게 만드니까요. 개인은 국가의 톱니바퀴로 존재하게 됩니다. 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연대성은 인간 착취의 극대를 표현합니다. 톱니바퀴가 되고 싶지 않은 우리는 니체의 평등과 진리 비판을 어떻게 현실에서 적용해야 하나를 고민했습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게 또 현실이니까요. 이런 사회에서 우리의 니체 공부의 윤리는 무엇일까? 영원한 진리가 없다는 걸 기억하며 살아가는 윤리란 무엇일까? 내 삶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 요것이 우리가 끝까지 놓치지 말고 가져가야 하는 질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격(215쪽)에 대한 구절을 읽으며 우리가 알고 있던 인격, 즉 품성이 아닌 인격의 정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인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의 태도입니다. 반대로 니체식의 인격을 갖춘 자는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죠. 힘의지 측면에서 모든 행위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인간은 극소수의 인간일 뿐입니다. 보통은 행위 뒤에 후회가 따라오게 되니까요. 후회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감당하지 못함에서 비롯됩니다.

강한 인간, 최고의 인간을 말할 때 “약해서가 아니라 강하기에 관용적인 인간”(130쪽) 괴테가 여러 차례 등장했어요. 반가워라. 니체는 무엇인가를 지켜야 하는 조건이 많은 상태, 고수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상태를 약함의 척도로 보았습니다. 덕에서 얼마만큼 벗어날 수 있는가가 힘의 척도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유용한 인간에 가깝습니다. 뭔가를 잃지 않기 위해, 더 얻기 위해 노력하며 열일하게 되니 얼마나 좋겠어요. 이러한 유용성과 대비되는 인간이 괴테 같은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인간입니다. 자신을 삶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는 인간이겠지요. 대립적인 것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고려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요. 총체성의 이해가 곧 염세주의의 극복이고, 니체가 말하는 강함이자 긍정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나와 상관있는 인간들이 괴로워하고 버림받으며 병들고 학대받고 모욕당하기를 바란다”(211쪽)는 구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반대로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게 일반적인데, 니체는 오히려 고통을 견뎌내며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후덜덜하긴 하지만 애착의 차원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을 말해요. 이런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여기에는 단순히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겠죠?

2교시에는 <모비딕> 첫 시간을 맞아 전체적인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첫 인상을 여쭤보았어요. 저는 <백년의 고독>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문체에서 오는 힘을 느꼈거든요. 앞 부분 백과사전식 설명이 있어 세밀해서 좋았다는 말도 나왔고, 저항과 도전 정신이 부담으로 느껴진다, 이슈메일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같이 불안해진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바다와 항구. 항구는 안전하고 안락하지만 나를 붙잡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구가 주는 자비로움에서 벗어나야만 해요.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서 도망쳐야만 모험이 가능하겠죠. “배의 유일한 친구가 바로 배의 가장 고약한 원수”라는 문장은 니체의 책에서도 여러 번 읽은 것 같은 문장이었어요. 니체 문장과 비슷한 문장이 꽤 많아서 놀라웠어요.

저는 지금까지 읽은 부분에서 미지의 세계인 바다에 대한 비전이 느껴지는 점이 좋더라고요. <모비딕>의 고래잡이 자체가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이 세상은 항해에 나선 배”라는 문장처럼요. 여기서 들뢰즈가 보는 니체 철학이 떠올랐습니다. 풍랑치는 바다, 그 바다에 위태롭게 떠 있는 배, 포탄이 날아오는 상황, 합심해서 노를 저을 생각이 없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니체는 끊임없이 묻고 있으니까요. 지금 저에게는 이렇게 욕망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지가 가장 큰 질문입니다. 욕망이 다른 사람이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생각할 지점이 많은 사건 같아요. 세상 참 맘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요. 저는 모두가 나와 같지 않음을 어릴 때부터 수없이 느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또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하며 그래도 에너지가 많고 회복력이 좋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그런데 니체를 공부하면서 이런 기대-실망-회복 패턴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의 함께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실험 중에 있고요. <모비딕>을 읽는 것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하나의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3교시 ‘내가 만난 니체’ 시간에는 자기주도학습을 위해 선정한 주제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카톡으로 공지드렸듯이 자기주도학습의 목표는 글감 마련이니 각자 어떻게 니체를 만나게 되었는지, 만나고 있는지를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저는 추천 도서는 그냥 추천 도서라고 생각해서 다른 책을 골랐는데 저만 다른 책을 골랐더구만요. 그래서 혼자 읽고 있습니다만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도 니체 공부가 주는 보이지 않는 연결인 것 같아요.(정신승리 아님ㅠ) 그럼 모두들 결과물을 들고 만날 수 있도록 애써보아요.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 정아샘, 주영샘, 경희샘, 지안샘, 현주샘, 난희샘

-수 프리도 <니체의 삶> :민호샘, 인영샘, 루이샘, 수연샘, 순이샘, 은옥샘, 고은샘, 승현샘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 나영...

 

[과제 및 공지]

1. <유고> 20권 335쪽까지 읽고 힘과 관련된 구절 10개 뽑기(이유와 나름의 해석을 짧게 붙여주세요) +유고 19권, 20권 두 권 다 챙겨오셔요!

2. <모비딕> 332쪽(54장 ‘타운호’호 이야기)까지 읽고 힘 개념과 함께 토론하고 싶은 구절 3개 뽑기

3. 자기주도학습 주제&공부한 내용 공유할 수 있도록 정리해오기

4. 다음 주 간식 : 은옥샘, 난희샘

5. 과제는 금요일 밤까지 숙제방에 올리기(새벽반 멤버들 힘냅시다!)
전체 2

  • 2021-03-30 15:10
    니체 공부의 윤리라는 말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조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평등과 정의를 원하는 의지가 차이나고 벗어나는 것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라는 말은 정말 공감이 되지만, 여전히 우리는 평등을 권장하고 불평등에 반대하는 사회에 삽니다. 특히 학교에선 그것을 가리치고 권장해야 합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렇다면 니체의 철학은 니체의 철학은 탁월한 통찰이긴 해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공론인 걸까? 그것을 공부하는 우리는 무엇을 달리하게 되는걸까?
    두고두고 풀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철학을 배우는 것과 그 철학대로 사는 것이 따로 있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때의 현실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평가 속에서 이뤄지지 않을까요?
    이미 사물과 사건과 사람을 힘으로 보고 있는 자는, 그가 비록 겉으로는 평등과 정의처럼 보이는 행동들을 하더라도 완전히 다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봄비 속에서 쓴 꼼꼼한 공지 감사합니다~

  • 2021-03-31 11:46
    인격을 갖춘다는 것이 자기 행위에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니...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네요! 물론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충동적으로 산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겠죠. 생각해보면 정당화는,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해주는 타자(구체적 타인이든 신이든, 여론이든)를 전제하는 것 같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인격을 갖춘 자는 누군가의 공감이나 용서가 아니라, 누구나 인정할 만한 상식적 도덕규범이 아니라 자기 힘의 느낌 속에서 윤리를 구성하는 자가 아닐까싶네요. 촉촉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