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생 1주차 철학 강의 후기

작성자
윤순
작성일
2019-11-10 07:42
조회
153
소생-러시아 1주차/철학 강의 후기/아나키즘/2019.11.10./윤순

러시아 혁명과 아나키즘

1905년과 1917년 두 차례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905년 짜르 정부의 붕괴와 1917년 사회주의 혁명에서 우리는 그 당시 러시아 기존 체제의 붕괴에 따른 혼란과 재구축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혁명을 주도한 세력은 민중이었지만, 그것을 이끈 자들은 막시즘적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었습니다. 기존 제체를 뒤집는 효과를 가져 오게 되는 혁명은 역사에서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지만, 혁명의 과정은 커다란 공포와 기대감으로 가득 찬 혼란의 장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포함해서 다수의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저항하는 과정을 겪지 않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혁명을 겪었습니다. 이 사실은 국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은 폭력적으로 국민들을 억압하는 기능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국가에 복종하거나 저항하기 전에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사유해 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국가는 없는 것이 더 좋을까요? 스피노자는 국가(공동체)가 인간을 위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어떻게 국가의 역량과 권리를 위임한 개인의 역량이 대립적이지 않고 동적인 평형을 이룰 수 있는가를 사유했습니다. 이 사유는 국가권력과 개인을 대립적으로 두었을 때는 결코 일어날 수 없고, 기존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윤리의 문제를 제기할 때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국가가 폭력적이라는 전제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동참하는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이 점에서 혁명 당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은 합치될 수 있었고, 이들이 추구하는 이상은 달랐지만 함께 혁명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저는 러시아 혁명이 노동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막시즘적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 혁명가와 함께 현장에서 민중을 이끌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 봉건적 농노제를 가장 늦게까지 유지한 러시아에서 노동자 중심의 혁명은 사회 환경과 맞지 않은 듯 보입니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전복이라는 이상에서는 혁명 지도자들은 일치했지만, 농민의 배제는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큰 의견 차이를 가져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시민 권력을 대표하는 당의 권력화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인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은 농민 자치를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1917년 혁명 이후, 이 두 지도 세력은 결별하게 됩니다.

아나키즘의 특징은 자급가능한 농민사회, 공동체의 자치(간디의 ‘스와라지’), 어떻게 ‘능동적으로’ 살 것인가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상에서 어떤 소수의 대표 세력이 권력을 가지는 것은 인간 삶에 해롭게 작용한다는 전제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 아나키스트인 바쿠닌은 당 독재, 사유재산, 대의제를 반대하고 민중 자치(풀뿌리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혼란스런 혁명 과정에서 민중 자치는 실제로 작용하기 어려운 점이 많이 도출되기 때문에 현실적 효력이 미비했습니다. 바쿠닌의 뒤를 이은 크로포트킨은 인간의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상호 부조를 문명의 힘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 분석. 노동 생산물만이 아니라 지식의 공동 소유를 주장했습니다. 크로포트킨의 사상에 대해서는 앞으로 읽을 『크로포트킨 자서전』과 『만물은 서로 돕는다』에서 자세히 논의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아나키즘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나키즘과 인류학의 연관성이었습니다. 함께 읽어간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이미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에서 우리는 인류학에서 원시 부족을 연구해 보면 이미 독재 권력이 출현할 수 없도록 하는 대항권력(기존 권력에 포섭될 수 없는 권력)을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작용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기존권력을 전복시키고 대안권력을 세우는 혁명이 아닌, 인간 무의식에는 대항권력 존재했고 따라서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권력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것에 대한 반대는 원시 부족 연구에서 이미 발견되고 이 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체 4

  • 2019-11-10 17:02
    아, 이번에도 새로운 세상을 만나네요. 아나키스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여지 없이 깨지는군요. 이 세상에 미련 따윈 없다는 듯한 시크한 이미지,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것 같은 테러리스트의 이미지가 와장창. 게다가 마냥 평화로울 것만 같은 생태주의와 아나키스트의 교집합에 이르러서는. 하. 참. 흥미진진하네요. 생각해보면 저의 이 무지가 더 흥미진진한 건지도. 어떻게 이렇게 사실과 동떨어진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요?

  • 2019-11-10 19:53
    아나키스트들을 무책임한 자유주의자라고 함부로 비난한 지난 일이 떠오르네요. 국가라는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치를 기반으로 능동적인 삶을 추구했다는 것이, 저 역시 깨지는 지점이었습니다. 크로포트킨의 자서전도 기대됩니다.

  • 2019-11-10 20:45
    아나키즘과 인류학의 연관이 재밌었어요. 인류학적 분석을 따라가면서 나카자와 신이치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아나키즘이 탄생한 토양도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어떤 사건들이 있었기에 아나키즘이라는 게 탄생했고, 크로포트킨은 이걸 어떻게 만물상호부조론으로 연결시킨 건지... 그거 하나 정리해야 겠네요.

  • 2019-11-10 21:34
    강의 듣기 전에 아나키즘이 단순히 반정부 세력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나키즘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능동적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는 점에서 좀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기 자료 읽으면서 대안권력이 아니라 대항권력이 인간의 무의식에 이미 내재되어있다는 점에서 아나키즘과 인류학의 연관도 재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