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Q 6월 7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6-05 10:14
조회
157
스피노자는 왜 세상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신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미 스피노자가 살고 있는 시대는 신을 세상을 자기 마음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로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실제로 열심히 성경을 읽고 나서 신에게 의지를 부여하는 것은 그를 불완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예를 들면, 신이 지금 한 것보다 더 완벽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현재 벌어진 일들은 불완전한 일들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신이 정말 완전무결한 존재라면 그가 당장 벌인 행위보다 더 완벽한 행위란 없을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생각을 시작으로 자기의 주장을 펼쳐가며 결국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신이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스피노자가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을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신을 버리고 다른 개념을 사유할 수 없었던 것은 스피노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채운쌤의 말씀 덕분에 이런 생각이 섣부른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삶을 결핍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완성된 것으로 긍정할 수 있는 지점은 초월적인 존재의 신을 거절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을 거절하는 것은 신에 대한 사유를 깨지 않고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신에 대한 사유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사실 기독교적 신을 믿는 것이나 그 신을 아예 사유하려 하지 않는 것은 똑같이 무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부딪힌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고 뜯으면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스피노자는 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르게 사유할 수 있었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아예 다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태도 역시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스피노자는 신을 다르게 사유했을 뿐이지 누구보다 독실한 신앙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여태 많은 강의에서 들었지만 이제야 알게 된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놓인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편적이나마 시대를 보는 사람이 철학자인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가지게 해주지만 사실 그것은 끊임없이 사유하라는 말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요? 자신이 신을 다르게 사유하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사유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아닐까요? 스피노자가 끝까지 신을 놓지 않고 다르게 사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자신이 놓인 시대적 한계를 볼 수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철학한다는 것은 자신이 놓인 시대적 한계를 보는 일일 뿐이고, 그런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들의 치열한 사유와 방식을 배우는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놓인 시대를 본다는 게 정말 어려운 것이겠지만 그런 노력이 없다면 공부를 하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여태껏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스스로에게 반성이 드네요. ㅎㅎ;;
다음 시간은 2부 정리 31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주제는 '부적합한 인식'입니다.
간식과 후기는 길례쌤과 소영쌤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피노자가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을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신을 버리고 다른 개념을 사유할 수 없었던 것은 스피노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채운쌤의 말씀 덕분에 이런 생각이 섣부른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삶을 결핍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완성된 것으로 긍정할 수 있는 지점은 초월적인 존재의 신을 거절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을 거절하는 것은 신에 대한 사유를 깨지 않고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신에 대한 사유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사실 기독교적 신을 믿는 것이나 그 신을 아예 사유하려 하지 않는 것은 똑같이 무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부딪힌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고 뜯으면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스피노자는 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르게 사유할 수 있었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아예 다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태도 역시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스피노자는 신을 다르게 사유했을 뿐이지 누구보다 독실한 신앙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여태 많은 강의에서 들었지만 이제야 알게 된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놓인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편적이나마 시대를 보는 사람이 철학자인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가지게 해주지만 사실 그것은 끊임없이 사유하라는 말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요? 자신이 신을 다르게 사유하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사유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아닐까요? 스피노자가 끝까지 신을 놓지 않고 다르게 사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자신이 놓인 시대적 한계를 볼 수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철학한다는 것은 자신이 놓인 시대적 한계를 보는 일일 뿐이고, 그런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들의 치열한 사유와 방식을 배우는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놓인 시대를 본다는 게 정말 어려운 것이겠지만 그런 노력이 없다면 공부를 하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여태껏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스스로에게 반성이 드네요. ㅎㅎ;;
다음 시간은 2부 정리 31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주제는 '부적합한 인식'입니다.
간식과 후기는 길례쌤과 소영쌤입니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정확한 워딩 찾았슝! 채운쌤 보고계시쥬?) 이상의 이 문장은 스피노자의 사상으로는 참 이상한 말이죠!
우리 모두 능동적 신체변용을 위해 절차탁마Q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