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중용 20~21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2-06 16:40
조회
103
171202 중용 후기

 

-20

 

修身則道立 尊賢則不惑 親親則諸父昆弟不怨 敬大臣則不眩 體群臣則士之報禮重 子庶民則百姓勸 來百工則財用足 柔遠人則四方歸之 懷諸侯則天下畏之

몸을 닦으면 도가 확립되고, 현자를 높이면 미혹되지 않고, 부모를 친히 하면 친척들과 사촌형제들 사이에도 원망함이 없으며, 대신(大臣)을 공경하면 어지러움이 없고, 군신들을 제몸처럼 여기면 선비들이 예로 보답함이 중하고,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면 백성들이 권면하고, 백공들을 오게 하면 물자가 풍족해지며 먼 지방의 사람들을 예우하면 사방에서 살러 오고 제후들을 품으면 천하가 경외합니다.


앞서 아홉 가지 經을 공자께서 말씀하셨는데요, 이번 문장은 그 九經의 효과에 대해 말합니다.

도가 확립된다는 것은 자기를 닦은 자를 모범으로 삼아 백성들도 그렇게 된다는 뜻입니다.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 없이 잘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고요.

親은 부모를 뜻하고, 諸父는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등등 친척 어른들, 昆弟는 자기 동생 뿐만 아니라 사촌 동생들까지 아우르는 말입니다.

재용이 足하게 된다는 것은 무역이 활발하게 되면서 물자가 풍족해진다는 뜻입니다. 주에는 ‘通功易事’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맹자> [등문공] 장에도 나오고, 박제가와 연암도 사용했던 개념으로 지금 말로는 ‘무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柔遠人의 遠人은 관광객을 뜻하기도 하고, 이민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歸는 목표를 가지고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來와 달리 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인구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국력이 강화되는 정책이 바로 ‘유원인(柔遠人)’ 정책인 것입니다.

畏는 나라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수준 높게 대우해주는 문화외교 정책의 효과입니다. 방문객에게 많은 선물을 안겨주면서 다른 나라로 하여금 기가 팍 죽게 만들고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정책인 것입니다.


齊明盛服 非禮不動 所以修身也 去讒遠色 賤貨而貴德 所以勸賢也 尊其位 重其祿 同其好惡 所以勸親親也 官盛任使 所以勸大臣也 忠信重祿 所以勸士也 時使薄斂 所以勸百姓也 日省月試 旣禀稱事 所以勸百工也 送往迎來 嘉善而矜不能 所以柔遠人也 繼絶世 擧廢國 治亂持危 朝聘以時 厚往而薄來 所以懷諸侯也

재계하고 깨끗이 하여 옷을 갖춰 입어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몸을 닦는 것이며, 참소하는 자를 제거하고 을 멀리하며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어진 이를 높이는 실천입니다. 그 지위를 존중하고 그 녹을 많이 주는 것은 그 好惡를 공유하는 것이며 부모부터 친히 하는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관속을 많이 두고 인사권을 맡기는 것은 大臣을 권면하는 것이며 진심으로 믿어 녹을 많이 주는 것은 선비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때에 맞게 부리며 세금을 적게 걷는 것은 백성들을 권면하는 것이고, 매일 검수하고 다달이 시험하며 일에 맞게 값을 쳐주는 것은 백공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가는 이는 잘 전송하고 오는 이를 환영하며 능력 있는 사람을 잘 대우해주고 능력 없는 이는 불쌍히 여기는 것은 먼 지방 사람을 예우하는 것이며 끊어진 세대를 이어주고 망한 나라를 다시 세워주며 혼란한 나라를 다스려주고 위태로운 나라를 잡아주며 조회와 빙문을 때에 맞게 하고 갈 때는 후하게 주고 올 때는 조금만 가지고 오게 하는 것은 제후들을 품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구경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그럼 방법을 먼저 말하고 효과를 그 다음에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非禮不動은 <논어> [안연] 四勿章의 네 가지 조목 중 한 가지를 쓴 것입니다.

色은 단지 여색을 뜻하지는 않으며, 여색, 식색 등 몸의 욕망을 뜻합니다.

勸이란 자발적으로 그 덕목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旣禀은 원래 餼禀(희름)이라고 읽으며, 월급을 뜻합니다. 그 당시 관청은 장인들이 만든 물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장소였고, 급여는 월급으로 줬다고 합니다.

朝聘은 행하는 주체가 각각 다릅니다. 조회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것, 빙문은 제후가 대부를 보내서 보고하게 하는 것.


凡爲天下國家 有九經 所以行之者 一也

무릇 천하의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아홉 가지 경이 있으니, 이것을 행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여기서 一은 주자에 의하면 誠입니다. 그러나 九經을 설명하는 내내 誠이 한글자도 안 나온다는 놀라운 사실(!) 반면 공영달/주현 같은 경우 一을 다음 문장과 연결하여 豫, 즉 사전 준비라고 풀었습니다.


凡事 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跲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㡱 道前定則不窮

모든 일은 미리 정해 놓는다면 실행되며 미리 정하지 않는다면 실패합니다. 말을 먼저 정하면 넘어질 수 없고, 일을 미리 정해놓으면 곤란해지지 않으며, 행하는 것을 미리 정해놓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고, 도를 미리 정해놓으면 궁하지 않습니다.

豫 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주자는 이 문장을 위의 문장과 이어 모든 일은 먼저 誠에 서고자 해야 한다고 풀이 했습니다.


在下位 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獲乎上 有道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信乎朋友 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順乎親 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 誠身 有道하니 不明乎善 不誠乎身矣

아래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으니,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것에는 방법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합니다. 친구에게 신임을 얻는 것에는 방법이 있으니,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에는 방법이 있으니 자기 몸에 돌이켜보아 성실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몸을 성실히 함에 방법이 있으니, 을 밝히지 않으면 몸을 성실히 할 수 없습니다.

주자에게 誠은 毋自欺라고도 할 수 있고, 愼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집중하여 人心과 天命의 본연을 고찰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죠. 이런 점은 주자의 내면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이며, 성실하려는 것은 사람의 도입니다. 성실한 자는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에 맞으니, 성인입니다. 성실히 하려는 자는 선을 택하여 굳게 지킵니다.

성인은 生而知之한 사람입니다. 공자님 같은 분이요. 날 때부터 천명을 지키고 있으니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도에 척척 맞습니다. 다만 저희 같은 사람들은 정말 굳게 선하고자 마음먹고 그것을 고수해야만 그 경지에 이를 수가 있지요. 굳게~!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배우기를 넓게 하고, 질문하기를 깊게 하며, 생각하기를 신중히 하며 판단하기를 분명히 하며, 행동하기를 돈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誠의 조목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공자가어>에 나와 있는 문장이 아니며, 이 문장은 차라리 21장과 연결하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주자는 이 문장의 學問思辨은 선을 책하여 현명해지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篤行은 그 택한 선을 굳게 지켜 인을 행하는 것이며, 인를 이롭게 여겨 행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道에 맞는 행동을 하는 성인과 달리, 仁의 이로움을 알고 행하는 것이죠.


有弗學 學之 弗能 弗措也 有弗問 問之 弗知 弗措也 有弗思 思之 弗得 弗措也 有弗辨 辨之 弗明 弗措也 有弗行 行之 弗篤 弗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우는데 능하지 못하면 놓지 말며, 묻지 않을지언정 물었는데 알지 못하면 놓지 말고,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는데 알지 못하면 놓지 말고, 판단하지 않을지언정, 판단하는데 분명하지 못하면 놓지 말고,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하는데 독실하지 못하면 놓지 말아야 합니다. 남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천 번을 해야 합니다.

공부할 때 어디 써 붙여야 할 문장이 나왔습니다^^ 배움은 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한다면 반드시 성취가 있어야 한다는, 그러지 못하면 포기할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무시무시한 문장이네요.


果能此道矣 雖愚 必明 雖柔 必强

참으로 이러한 방법에 능하다면 비록 어리석더라도 반드시 밝아지며, 비록 유약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진다.

明이란 선을 택하는 것의 공입니다. 强이란 굳게 지키는 것의 효과이고요.

우리는 각자 다른 기질을 타고 났습니다만,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리석고 유약하더라도 분명히 자기 세계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不仁은 바탕이 못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21

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에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이라 하고, 에 말미암아 성실해지는 것을 라고 하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

21장부터는 자사의 말입니다. 그리고 21장은 앞으로 나올 모든 문구의 주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誠은 사실 성인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실하고자 하는 자, 그러니까 성인과 같은 生而知之가 아닌 사람들은 배워야 明, 즉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주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배우지 않을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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