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3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12-29 02:05
조회
191
드디어 <주역> 64괘를 다 읽었습니다!(짝짝짝) <주역>은 수화기제(水火旣濟)와 화수미제(火水未濟)로 마무리 됩니다. 강을 다 건넜나 싶었는데, 어느샌가 아직 건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며 끝나는 것이죠. 게임 마지막 판까지 갔는데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푯말을 본 기분입니다. 그렇게 중천건으로 돌아가면 '군자 종일건건'이 기다리고 있지요. 시작도 끝도 없는, 오직 변화만 있을 뿐인 <주역>의 세계에 어울리는 마무리 같습니다.

그리고 주역팀도 이제 시작이지요. 바로 에세이가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이 강을 건널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한주가 더 남았으니 숙고해 보도록 합시다.


수화기제와 화수미제는 모두 물과 불로 이루어진 괘입니다. 물과 불은 구체적인 사물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둘은 상극이기도 하죠. 하지만 상극인 두 물상이 만나 만물이 생성됩니다. 상생상극. 극하는 기운은 적절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 서로를 생하게 하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 두 기운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는 단지 순한 조건만이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 성향과 반대되는 성향의 환경과 접함으로써 우리는 변하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제과 기제는 이 물과 불의 상을 통해서 구체적인 사물이 이루어지고 변하는 운동성을 포착해냅니다.


기제괘는 건너고 난 다음을 의미하는 괘입니다. 드디어 끝! 그런데 기제괘는 일의 끝이야말로 정말 경계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어떤 일이 마무리되고 난 다음에는 어쩐지 긴장이 풀리고 좀 쉬어야 할 것 같죠. 특히 그 일이 대업일수록 더더욱 더 크게 쉬어야(?) 할 것 같은 보상심리가 앞서곤 합니다. 기제괘의 괘사는 이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합니다. 괘사를 보면 "亨小"라고 나옵니다. '小亨'도 아니고 '亨小'는 뭘까요? 풀이를 보면 '작은 일들에 대해 형통하게 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큰 일을 마무리 하고 난 다음에 긴장 풀고 퍼져 있으면 안되며, 이제 잔가지들을 처리하고 뒷수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확실히, 한 고비를 넘겼다 싶어 퍼져 있으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데서 일이 터지고 맙니다. 큰 일을 마치고 휴가를 받으면 몸이 고장나서 누워 있게 된다거나, 열심히 일을 마쳤는데 갑자기 사소한 감정다툼으로 팀이 순식간에 와해되는 것 같은 일이 생겨나죠. 또 이만한 일을 해냈으니 이제 못할 것이 없겠다며 자만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합니다. 바로 기제괘가 경계하는 '작은 것에 대해 형통'하지 않으면 생겨나는 일들입니다.

기제괘의 대상전은 "환난을 생각하고 예방[思患而預防]"해야 군자라고 나옵니다. '思患'과 '預防'은 <주역>의 주제와도 같죠. 그런데 어떻게 환난을 생각해 예방하느냐. 그건 바로 자신의 기질과 역량을 헤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알면, 적어도 환난 앞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 있죠. 특히 기제괘는 자기 역량을 헤아릴 줄 아는 자가 편안할 수 있는 괘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의 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기제괘 구오효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데 처한 모습입니다. 이때는 머무르는 곳에서 검소하게 있는 것이 화려하게 다른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때는 정말 작은 것들에 형통할 수 있게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오만함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제괘는 기제괘 다음에 있는, <주역>의 마지막 괘입니다. 상황을 살펴보면 일이 이루어진 건 없고, 되도 일이 없습니다. 효들은 각각 어긋난 자리에 있고, 괘상은 물 위에 불이 둥둥 떠 있으며 제대로 섞이지 않은 모양이거든요. 하지만 괘의 재질은 물과 불, 만물의 근원이기에 에너지는 있는 상태죠. 힘은 있는데 일은 안되는 상황. 이럴  답답한 상황에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빨리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미제괘는 이 조급한 마음을 경계합니다. 일이 풀리지 않을수록 느긋하게, 심사숙고 하라. 이것이 미제괘의 교훈이죠. 이렇게 느긋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상황이 언젠가는 변할 것임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알지 못하면 인간은 억지로라도 자기 힘으로 뭔가 해보려고 무리를 하게 되지요. 물론 그렇게 해서 돌파되는 상황도 있지만, 미제괘의 경우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주역>은 인간의 힘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오만이라는 사실을 매번, 마지막까지 강조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힌트를 육삼효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미제 육삼효는 다소 아리송한 내용입니다. "가면 흉하나 대천을 건넘은 이롭다[征凶利涉大川]"라고 하거든요. 가면 흉한데 건너면 이롭다? 이게 뭔 소린가?!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도저히 안 풀리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손 놓고 포기하거나 분노하기 쉽습니다. 그럼 상구효에서처럼 술에 머리부터 들이밀며 자포자기성 홧술을 마시기도 하죠(정이천은 공자가어의 "儒有不隕穫於貧賤"을 인용해, 자기 자리를 편안히[樂] 여기지 않으면 의지를 상실[隕穫]하고 성내고 조급하게[忿躁] 된다 했습니다). 하지만 미제괘가 말하는 경계하고 기다리라는 게 포기나 분노는 아니닙니다. 중요한 건 문제 앞에서 내가 이 문제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숙고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삼효의 "가면 흉하다"는 것은 문제 앞에서 허둥대면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천을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어려움을 충분히 겪어야 문제를 건너갈 역량도 생긴다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월 3일에는 각자 에세이 문제의식과 개요를 가지고 모입니다.

물론 기제, 미제괘 테스트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평소보다 살짝 느긋~하게, 1시 30분에 시작하겠습니다.


간식은 정옥샘입니다.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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