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주역 에세이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21-01-19 19:42
조회
272
1.10 주역 에세이 후기

팀주역으로 함께

지난 일요일 팀주역의 에세이 발표가 있었습니다.(왜 이렇게 오래된거죠??) 전 공부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좋은 학우들 때문에 늘 복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2020년은 이를 더욱 절감할 수 있는 한 해였습니다. 특히 우리 주역팀의 풋풋한 열정과 그 에너지는 한 해 동안 즐겁게 공부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죠. ‘주역의 사유와 변화의 철학’팀은 스스로를 꿋꿋하게 ‘팀주역’이라 부르며(샘은 '봉숭아 학당'이라 명명하셨지만), 처음이라 서툰 주역 공부 길을 공통의 힘으로 넘어보고자 했습니다. 이게 나름 통하는 게 있어, 모두들 공부에 힘이 쬐끔 붙었던 것도 같구요. (물론 결과를 묻는다면......그저 웃지요!!) 매주 자체 예습까지 끝내면, 밤 10시가 가까워졌지만, 아무 불평 없이 함께 했습니다. 시간의 문제보다, 그 시간에 모여진 마음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이건 주역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공부의 정도를 기준으로 팀주역을 본다면, 이제 막 건곤이 열린 후, 아직 막막하고 답답하고 어리석은지라, 그저 음식연락(飮食宴樂) 하고 공부하며 기다려야 하는 때라고 볼 수 있죠. 음식연락이란 깨달음을 향한 노력이죠, 물론 음식도 많이 먹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시작할 때, 어려울 때일수록 벗들과 함께 하는 게 필요함을 주역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에세이는 짧게 두 편을 썼는데, 자신의 주제 괘를 뽑아 한 편을 쓰고, 자기 신상의 질문을 들고 점을 쳐 그 점괘로 다른 한 편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해당 괘를 선정할 땐, 스스로 정하기보다, 그 사람이 넘었으면 하는 문턱을 중심에 놓고 필요한 괘를 친구들이 골라주는 우정(?)을 발휘했지요. 물론 그 과정에 뼈 때리는 말들이 오고 갔지만, 그 때문에 자기 문제에 더 접근할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자신의 문제를 에세이에 드러내고자 했지요. 2-3일 규문각에서 ‘합숙’ 투혼까지 해가며 에세이를 완성시킨 분둘도 있었네요. 덕분에 모두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가지고 왔지요. 우린 이걸 가장 기뻐했던 것 같아요. 어찌 한해 공부로 주역을 이해한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함께 한 고비를 넘었다, 그걸 기뻐하겠습니다.ㅎㅎ(同人于野 利涉大川)

문제화의 어려움

그래도 자신이 넘어서야 하는 ‘마디’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보아야겠지요. 은남샘은 흩어지고 떠다니는 생각들을 담고 모아내어 공부의 한마디(節)를 넘고 싶다는 의미에서 수택절괘(水澤節卦)를 쓰셨어요. 엄마와의 돈독하다 못해 서로 집착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는 문제를 통해 이 관계를 넘어 서로를 함께 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산뢰이괘를 통해 풀어보려고 한 수정, 학교 시스템의 일괄적 적용에 대한 문제의식과 나의 옳음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침과 마음의 갈등을 풍택중부괘로 풀어 쓴 영주림, 깊이 있는 진득한 공부를 하고자 애쓰시는 태미샘은 택화혁괘로 공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셨어요. 또 공부하는 삶을 결정했음에도 그 길을 담담히 갈 수 있을지 청년의 불안한 마음이 한편 숨어 있다고 고백한 규창은 화수미제괘를 풀었고,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프라이버시를 존중 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혜원이는 천하동인괘를 풀었습니다. 전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를 넘기 위해 좀 과한 자기 수행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뇌산소과괘를 풀려고 했습니다.

‘자기 문제를 솔직하게 직면하라’ 저희 에세이가 모두 문제 제기만 하고 자기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기에, 샘의 일성은 자신의 문제 앞에 솔직해지라는 것이었어요. 자기 문제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글을 끌고 가는 힘이 됩니다.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문제를 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풀어가는 과정에 지혜를 얻을 수 있어서이죠. 진솔한 글은 잘 읽히고 공감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죠. 근데 이상하게도 타인의 문제는 잘 보여도, 자신의 문제는 참 알기가 어렵습니다. 에세이를 준비하다 보면 특히 잘 느낄 수 있죠. 문제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이 제 길을 잃고, 당위적인 말만 범벅이 된 물건을 내놓게 되나 봅니다.

에세이 때마다 듣는 말이지만, 자신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즐겨 하는 것, 쉽게 하는 것에서 욕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 마디를 넘어설까요?? 그것은 삶의 ‘중심’과 ‘부차’를 두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자기 삶의 중심을 남기고 나머지는 단호히 물리치는 것, 이게 중심을 잡는 길이라고 하셨어요. 그때만 삶의 리듬이 바뀔 수 있어서죠. 마디를 넘는 것도, 수신이 필요한 것도, 삶의 중심성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주역팀 모두에게 필요한 조언이었어요.  에세이를 쓰다보면 자기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글을썼다고 생각하는데,  '나'라는 통로를 경유하다 보면,  보편적인 문제로 나가지 못하고 자의식으로 환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중심을 세우는 것으로도, 감추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 담담해 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중심이 자기 비젼이 될테니까요.

그래도 공부로

‘팀주역’의 특징 중 알 수 없는 하나가, 참~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는 그닥 알 수 없다는 것이죠.ㅎ 그러나 주역을 읽다 보면, 대들보가 휘어지는 대과괘에서조차 亨하다고 말합니다. 또 역으로 좋은 상황에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태도가 삶을 결정한다는 말이겠죠. 어떤 삶을 살겠다는 큰 비젼이 있다면, 각자의 조건에서 분명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들이 징후를 만들어 내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에세이가 끝나고, 10회에 걸쳐 수업 중 못다 읽은 시몽동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징후가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올해 팀주역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솟구치는 것은 숨기기 어렵네요.

에세이 사진이 한 장도 없네요. 여러가지로 조심스러워 송년회 사진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냥 나가면 심심하잖아요...

전체 6

  • 2021-01-24 20:32
    댓글이~차 암 빠르기도 하네요. 에세이의 발표는 한 학기 공부의 압축된 시간을 겪는 것 같아요. 어째 미련이 아직도 남는 게 힘드네요. 내년 주역 공부를 통해 강을 건너는 시도를 끝까지 놓치 않고 해봐야죠. 그것뿐인것 같습니다.

  • 2021-01-19 21:12
    웃음이 끊이지 않는 팀주역의 사뭇 진지한 면모가 묻어나는 후기네여... 잘 읽었습니다... 홍보영상의 과도한 지분으로 올해 대박나셨다고 들었는데... 연말까지 또 화이팅 하시길!!

  • 2021-01-19 21:29
    후기를 읽으니 또 감회가 새롭네요.
    무식이 용감하다고 일요일만 시간이 돼서 무턱대고 시작했다 스승님과 팀원들 땟목 삼아 겨우겨우 주역의 강을 건너왔습니다.
    아휴 이제 한번 훑어 본건데요 뭐!
    올해도 또 주역의 바다를 함께 탐험해 보자구요! 쨍강!

  • 2021-01-19 22:59
    이 후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요... ㅋㅋㅋㅋ
    후기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1회차는 얼레벌레 64괘를 읽었습니다만, 다음 학기는 좀더 심기일전 하여 주역이라는 강을 건너 봅시다!

  • 2021-01-20 15:02
    주역 에세이 어떻게 쓰셨는지 궁금한데 숙제방에 하나도 안 올라와 있어서요. 비공개인 것인가.. 에세이를 올려주신다면 동서양 횡단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 2021-01-20 18:18
      안 보시는게 동서양 횡단에 큰 도움이 되리라 사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