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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차 후기 및 공지 :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I)

작성자
애면글면
작성일
2019-05-23 00:06
조회
118


 
“통치실천에 대해 논한다는 것, 혹은 통치실천에서 출발한다는 것, 물론 이것은 최초의 기본적인 소여로 보이는 몇몇 개념, 예를 들면 주권자, 주권, 인민, 신민, 국가, 시민사회 같은 여러 개념을 확실하게 방치하는 방식입니다. 요컨대 이 상당수 개념은 사회학적·역사학적·정치철학적 분석이 통치실천을 실제로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 개념입니다. 저는 이와 정반대로 연구해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주어진 그대로의 이 실천에서, 하지만 또 동시에 자신을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합리화하려는 것 그대로의 실천에서 출발해 국가나 사회, 군주와 신민 등, 당연히 그 지위에 대해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는 몇 가지 것들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저는 보편적인 것에서 출발해 거기에서 구체적 현상을 연역해낸다거나, 몇몇 구체적 실천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격자로서의 보편적인 것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이와 같은 구체적 실천에서 출발하고 또 이 보편적인 것을 이 실천의 격자에 통과시켜보고자 합니다.” (미셸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도서출판 난장, p.22)

드디어 푸코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명정치, 통치성, ... 낯선 개념들이 많아서 그런지 책을 읽는 동안 절망에 빠졌던 순간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핵심적인 맥락을 짚어줄 겸, 이번에는 채운쌤이 특별히 강의해주셨습니다. 이번 후기는 선생님께서 말한 내용을 제가 이해한 바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생명정치, 혹은 ‘생명관리정치’는 불어로 Biopolitique, 영어로는 Biopolitics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생정치’(Bio+politics)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분석에 방점을 찍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사태 이후에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고 이에 대한 분석이 시도되는 중이지만, 푸코의 분석은 그보다 앞선 70년대부터 진행된 것입니다.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경제학적 개념에 한정하지 않고, ‘정치경제학’의 일환으로 사유했습니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본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통용되던 관점이었습니다. 마르크스에게 경제현상은 화폐의 유통으로 이해되지 않고, 사회적 관계의 총화를 말합니다. 여기서 사회적 관계란 곧 계급 관계로 이해되었기에, 정치경제학은 자원들의 배분을 둘러싼 계급 간의 갈등과 역학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해됩니다. 이때 중요시되는 것은 유통이나 생산 및 소비와 같은 경제활동이 인간들의 사회적인 관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입니다.

생명정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의 권력론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푸코에게 근대적인 의미에서 권력 개념은 ‘소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권력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작동합니다. 권력의 작동은 신체와 정신이 특정한 방식으로 길들여지는 것에서 포착됩니다. 그렇기에 권력은 언제나 개인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유도하는데 필요한 기술(Technic)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생명정치 개념과 밀접한 ‘생명권력’은 <감시와 처벌>에서 일찍이 푸코가 제시했던 ‘규율권력’과 더불어 근대적 권력양상을 대표합니다. (*참고로 이 둘은 엄밀하게 따지면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규율권력은 감옥, 병영, 병원, 공장, 학교 같은 근대국가장치를 통해 사회적으로 유순하게 길들여진(모범적 인간형, 심신이 반듯한 인간형ㅡ한마디로 말 잘 듣는!), 표준화된(Normal한) 개인을 양산해내는 테크닉을 수반한 권력입니다. 규율권력은 생명권력과 마찬가지로 근대적 권력에 해당하는 반면, 근대 이전에는 ‘주권권력’이 존재했습니다. 주권권력이 통용되는 배치에서는 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자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여기서는 왕위세습처럼 권력을 양도할 수 있고, 주권자가 자신의 권력을 다른 이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형벌제도가 통용됩니다. 요컨대 주권자는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이를 형벌에 처할 수 있는 것이죠. 주권권력의 통치술은 한마디로 ‘생살여탈권’인 것입니다. 군주 혹은 영주의 권력은 자신이 통치하는 자들을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규율권력과 생명권력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권력의 특징은 ‘삶을 관리하는 것’(생명관리)입니다. 주권권력이 ‘살게 내버려두고, 죽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생명권력은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으로 작동합니다. 예컨대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사망률’을 집계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망률과 출산율, 인구의 반출과 유입을 비롯한 지표들이 등장한 까닭은 자본주의의 출현과 관련되어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통계학은 근대 자본주의의 논리와 밀접하게 연계된 학문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관리하는 것은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내의 생명권력은 규율권력과 연계되어 개개인을 ‘정상적’으로 길들이는 동시에, 취업을 통해 사회적 자원을 생산하는 현장에 투여할 인구의 유동성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여기서는 사람(Human)이 아니라 인구(population)가 중요해집니다. 근대 자본주의 권력의 특징은 삶 곳곳의 미세한 부분에 규율을 적용하는 미시적인 차원에서도, 사회의 수많은 변수를 숫자적인 흐름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제하려는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발견됩니다. 예컨대 자본주의의 권력은 ‘인구주택총조사’와 같은 실태조사, 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상시적인 도시설비, 질병의 확산을 사회적 차원에서 미리 방지하기 위한 의료체계, 복지 정책들도 안정적인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식으로 기획된 장치입니다. 언제든지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현장 속에 투입 가능한 인력으로 만들기 위해 살게끔 하되, 그렇지 못하면 죽게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주요 시스템이 되었다는 것은 그에 최적화된 인간의 삶도 함께 만들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이념적 토양은 신자유주의입니다. 여태껏 저에게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국가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를 추구하는 경제적 이념 같은 것으로 단순하게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생명정치의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는 스스로의 일생을 ‘자유롭게’ 경영하고 관리할 것을 요청하는 사회적 권력으로 설명됩니다. 일생을 설계하고 기획할 것을 권유하는, 계획하지 않으면 위험한 것으로 내모는 모든 관계의 실천들은 그것 내부에 이미 ‘통치성’이 작동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채운쌤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읽기 위해선 앞서 살펴본 근대권력(규율권력, 생명권력)과 통치성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치성이란 무엇일까요? <감시와 처벌>을 발표한 후에 푸코는 권력과 저항을 새롭게 사유하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예컨대, 권력자는 이미 나를 억압하고 있으며, 나는 그것에 대항해 고민하거나 내심 저항하고.. 이런 방식으로 저항을 사유할 경우, 저항은 (말의 뉘앙스와는 좀 다르게) 굉장히 반응적인 개념으로 정의되기 때문이죠. 푸코가 ‘통치성’ 개념을 발명한 것은 저항과 권력 작용이 시시각각으로 생겨날 수 있으며, 상호적으로 규정될 수 있음을 밝히려 했기 때문입니다.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은 govern+mentality로 풀이됩니다. 전통적 의미에서 통치(지배)에 해당하는 govern은 mentality를 만나서 새로운 ‘통치’의 양상이 설명됩니다. 멘탈리티는 심성이나 정신뿐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규정하는 사고양식을 말합니다.

‘통치성’은 한마디로 우리의 사고 및 행위양식을 특정한 방식으로 양도하는 힘의 작용입니다. 여기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주도하는 습속이 문제적으로 이해됩니다. 주변에 스타벅스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습관’,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라고 다그치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말버릇’ 등... 통치성 개념은 권력을 가진 주체와 그렇지 않은 주체를 미리 가정하면서 저항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통치성은 ‘우리는 어떤 조건 속에서 이러저러한 행위를 하는 자로 주체화되는가?’를 묻습니다. 통치성 개념은 우리의 실천이 우리의 ‘욕망’과 결합되면서 어떻게 특정한 방식으로 양식화되는가를 조망해줍니다. 지금 우리가 다니는 학교와 직장, 우리가 보는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 우리가 듣는 음악 ... 먹방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것, 부유한 사업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것, 사랑과 결혼에 대한 로망 ... 자본주의 질서에서 우리의 삶은 언제든 ‘통치’될 수 있고, 또한 언제든지 '도주'할 수 있습니다. 권력의 작동은 특정한 힘-관계와 결합하고 있는 일상적 욕망, 무심코 ‘지르는’ 실천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도주는 어떤 힘-관계와 접속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때 저항은 다른 행위양식을 만들어내는 능동적 실천이 됩니다.

자본주의를 논하는 문제란 단지 자원의 배분,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회에서 우리의 멘탈리티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일리치가 ‘전문가들의 사회’를 비판한 것은 전문가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가 우리를 행위양식을 더욱 의존적으로, 자신의 행위역량을 키우지 못하는 방향으로 거듭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에 대한 동기부여를 정당화한다는 명목으로 ‘성과급 제도’가 인정될 때, 우리의 욕망은 시장의 논리와 결합됩니다. 시장의 논리에서 통용되는 위계는 각자의 능력을 언제나 더 많은 생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에 한정합니다. 크고 작은 시련이나 위기마저도 부를 늘릴 수 있다면 마땅히 감수해야한다고 이해하는 합리성은 투기주의와 닮아있습니다. 시장의 논리가 정치의 논리를 견인하고, 시장이 모든 앎의 판단 기준이 되는 심급으로 작용되는 사회, 노동의 성과를 내기 위한 효율적인 지침들이 만들어내는 분업(전문)화ㅡ이러한 현상을 견인하는 합리성은 이 사회에서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가치의 공리체계를 구성합니다. 요컨대 어떤 행동이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 손해를 가져다줄지 고민하는 ‘합리성’에는 이러한 사고과정 자체에 질문을 던질 수 없게 만드는 어떠한 통치성이 이미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통치를 이해하는 푸코의 관점은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를 역사적 산물로 이해했던 맥락과 일치합니다. 그의 관점은 먼저 국가, 사회, 주권자, 신민 같은 보편적 개념이 원래부터 존재했다는 가정에서 벗어나, 그렇게 가정된 어떤 사실이 기초한 질서 내의 사건들과 실천들을 역사적으로 이해해보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료에 근거해 일반적인 원리를 도출하려는 ‘역사주의’와는 다른 관점입니다.

 
“저는 광기에 대해 이와 동일한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광기가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 아니었습니다. (...) 제 방법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요컨대 광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본다면, 그 순간 광기라고 가정된 어떤 것에 기초해 질서지워진 것처럼 보이는 상이한 사건들과 실천들에 대해 어떤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 요컨대 비판의 방법으로서 역사를 사용해 보편 개념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 자문하기 위해 보편 개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제 방법입니다.” (pp.22-23)

푸코의 책과 친해지기 위해 필히 복기해야할 강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기가 다소 길어졌네요. 푸코의 신자유주의 분석은 다음 시간에 읽어올 4,5,6강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 같습니다. 발제는 민호 & 건화쌤과 제가 순서대로 맡았습니다. 이번에 발제를 맡았던 부분의 요지는 나중에 기회 되면 간략히 말해보겠습니다. 공부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체 5

  • 2019-05-23 11:03
    일단 저는 '실천의 격자'라는 말을 안고 다음 후기를 기다리겠습니다. @.@ 통치성은 결국 '내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연관되는군요.

  • 2019-05-23 11:06
    우와 꼼꼼하고 철저한 정리, 엄청 납니다.
    엄청난 푸코님의 분석을 알아보는 일에 참여한다는게 기쁘군요. 신자유주의 네이놈 기다려랏

  • 2019-05-23 11:46
    오호 강의 내용을 잘 정리해주셨네요. 앞으로 푸코의 기본적인 관점이 뭔지 헷갈릴 때는 이 후기를 참고하면 될듯!
    아무튼 푸코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온 청강생의 마음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가 봅시돠

  • 2019-05-23 11:50
    몇 년 전 <감시와 처벌>을 읽으며 공부했던 푸코의 개념들이 아주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네요. 그 때도 지금도 충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나도 모르게 작동되고 있는 '통치성' 개념만큼은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고생 많았어요~^^

  • 2019-05-23 13:57
    저는 책 제목만 보고 어려운 정치철학책이라고 생각하고 겁부터 먹었는데, 읽으면서 어려운 개념들도 있었지만 푸코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재밌었습니다. 그동안 강의로만 들었던 푸코의 계보학적 접근 방식에 대해서 푸코가 설명해주는 부분이 기억이 남네요. 계보학이 기원을 추적하고 하나의 보편적 원인을 찾는 게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된 조건과 그것이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에 주목할 때만이 정치적인 실천과 연동된다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