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1.1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0-10-29 01:26
조회
113
주역팀에는 불별자리가 여럿 포진해 있습니다. 양자리, 염소자리, 사자자리... 이 별자리들의 특징은 일단 지르고 본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아직 주역 공부가 부족하다! 공부를 더 하자! 라는 외치며 시험 벌금제도를 폐지하고 한 효라도 틀릴 경우 해당 괘를 열 번씩 쓰고 가기로 결의한 결과, 주역팀 전원이 밤까지 남아 연습장을 채우는 아름다운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이 학구열(?)의 끝은 어디인지, 두렵고 설렙니다...

이번 시간에 배운 괘는 지화명이(地火明夷), 풍화가인(風火家人), 화택규(火澤睽) 괘입니다. 지화명이는 불이 땅 아래로 가라앉아 바야흐로 어둠의 시대를 맞은 군자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 말하는 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풍화가인은 집안을 다스리는 지혜에 대해서, 화택규는 갈등에 대처하는 지혜를 말하는 괘입니다. <주역>은 괘마다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온갖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양식을 제안합니다. <주역> 강의에서 매번 반복적으로 듣는 말 중 하나는 '모든 점은 대단히 구체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이 점을 치느냐에 따라 길한 점괘가 될 수도 있고 흉한 점괘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주역>의 괘들인데, 그러다보니 <주역>을 읽다보면 자연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살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명이괘는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나타내는 괘입니다. 이 괘의 주인공은 문왕이나 기자, 즉 주(紂)라는 혼군이 다스리는 시대를 살았던 성인들이지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시기 취해야 하는 태도는 뭐니뭐니해도 신중함입니다. 세간의 상식은 물론 나 자신의 사고에 대해서도 섣불리 확신하지 말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이 안 풀리는 암울한 시기를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못내 오버하게 되겠지요. 혹은 어둠을 몰아내려고 하면서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심보를 보이기도 할 테고요. 명이괘는 어두울 때일 수록 "어둠을 써서 밝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유배지에서 <주역> 괘사를 쓴 문왕, 미친 척 하면서 혼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기자는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보존하는 신중함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안 풀리는 때를 만나면 어떻게든 이것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것도 생의 국면으로서 겪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이에 대한 지혜를 말해주는 것이 명이괘입니다.

가인괘는 위로는 역동적인 바람이, 아래로는 밝은 불이 있는 모양입니다. 불의 일렁임이 바람을 일으키는 형상이죠. 가정의 내부적 관계가 외부까지 통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괘이기도 합니다. 이 괘는 집안에 대한 괘인 만큼 여성의 바름을 중시합니다. 여자가 집안을 잘 지키고, 남자가 외부의 자리를 잘 지킴으로써 천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죠. 따라서 이 괘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떤 역할도 무시받거나 소홀하게 대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는 괘이죠. 가정이란 가장 가까운 관계입니다. 아무리 밖에서 잘 처신한다고 해도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실체를 알고 있죠. 집 안과 밖의 태도가 다르면 가장 가까운 집안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집안을 다스리려면 무엇보다 항상성이 있어야 합니다. 상구효의 상전을 보면 "자기 몸에 돌이켜 살핌(反身之)"이라고 나옵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계속 점검하는 반구저기의 태도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괘의 도전괘인 화택규괘는 위로 불이 타오르고 아래로 샘이 흘러내리는 모양입니다. 즉 가는 방향이 정 반대죠. 하지만 꽉 막힌 천지비(天地否)와 달리 의견이 완전히 갈려서 대화의 여지가 없는 모양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물과 불이 정 반대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불이 제대로 타오르기 위해서는 약간의 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즉 괘의 재질이 완전 어긋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택괘는, 말하자면 의견의 대립을 통해 더 좋은 안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대립이 다 나쁜 것은 아니죠. 오히려 건전한 토론 끝에 더 좋은 안이 채택될 수도 있으니까요. 택괘는 그 대립되는 의견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소소한 문제에서부터 조금씩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괘사를 보면 "작은 일에 길하다(小事吉)"라고 나옵니다.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거기서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일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입장이 서로 다르니까요. 이럴 때는 서로의 공통적인 것을 찾아 조금씩 의견을 조율하며, 자기만 고집하는 태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이런 의견 조율의 지혜를 말해주는 것이 화택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전으로 오면서 좀 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괘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몽매함, 다툼, 꽉 막힘, 함정 같은 상황을 제시했다면 하전부터는 가정이라든가 토론이라든가 실제 정치에서 만날법한 위기를 보여주고 있지요. 이렇게 다채롭게 인간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생각했다는 것이 놀라운 한편, 이 구체적인 지혜를 따르려면 정말 사람이 유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사람이 당황하거나 감정적이게 되는 이유는 늘 변하는 상황에서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성인은 자신이 만난 구체적 상황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 역동적인 변용역량을 키우기 위해 <주역>을 읽는 것이겠고요.

이번에 시몽동에 대한 강의에서는 삶을 집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몽동에 따르면 생명의 단위는 개체가 아니라 조직화되 군(群)이고 단일 생명체는 그 하위수준인 '아(亞)개체'라고 라고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명체는 '생명'이라는 것이 주어진 개체가 아니라 생명운동의 결과라는 것. 그리고 그 생명운동은 군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다면 개체의 본성을 '나'로 환원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나'라는 것은 복합적 네트워크의 결과가 될 테니까요. 시몽동은 개체의 본성 안에는 그것의 활동의 산물이 아닌 것이 상당 부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단지 '인간'이라는 종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수한 타자성의 결정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때 '나'의 몸이나 마음, 정체성에 대해 묻는 것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는, 무척 역동적인 활동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무려 네 가지 괘를 읽어옵니다. 수산건(水山蹇), 뇌수해(雷水解), 산택손(山澤損), 풍뢰익(風雷益)! 그리고 모두 자진해서(!) 두 가지 괘를 짝지어서 과제를 써 오기로 했습니다(불별자리들!).

<시몽동, 개체화 이론의 이해>는 103쪽에서 170쪽까지 읽어옵니다(103쪽에서 140쪽은 이미 읽은 부분이지만... 뒷장을 읽으려면 앞장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ㅠ).



후기는 은남샘

간식은 규창



일요일에 만나요//



전체 1

  • 2020-10-29 10:45
    팀 주역에는 태양이 되었든 달이 되었든지 간에, 불별자리인 양자리, 사자자리, 사수자리가 모두 있고,
    풍화가인이 알려주는 것처럼 불이 붙으려면 바람이 필요하듯이,
    불별자리가 더 활활 타오르면 공기별자리인 쌍둥이자리, 천칭자리, 물병자리가 필요한데,
    공기 별자리가 모두 있어서 더욱 활활 타는 것 같습니다. 뭐가 활활 타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즐겁네요.
    시몽동이 이야기하는 생명의 단위는 개체가 아니라 조직화되 군이라면, 팀 주역이 하나의 개체로 생각되고,
    이의 하위 수준인 아개체들이 다수가 타오른 불과 이를 도와주는 공기의 기운을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불 타오를 수 밖에없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