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0월 25일 주역과 글쓰기 후기

작성자
고원
작성일
2020-10-29 23:35
조회
143
이번주 주역팀은 지화명이와 풍화가인, 화택규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주역의 서른 여섯번째 괘인 지화명이는 해가 뜨기 전 캄캄한 어둠의 상황입니다. 밝음(明)이 상함을(夷) 당하는 때에 어떻게 자기의 밝음을 보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게 됩니다. 명이괘 괘사는 ‘利艱貞 - 어려울 때는 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입니다. 어두울수록 바름을 지킨다는 것은 어두울수록 신중하라는 말인데, 남에 대한 신중함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신중함을 말합니다.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스피노자의 좌우명도 신중하라! 였다고 해요. 동양에서 밝음은 밝은 인식이나 지혜를 말하기도 하고, 불교에서는 무지를 無明이라고 하듯이 어둠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인식에 대한 신중함입니다. 즉 자신의 사고에 대해 확신하지 말고 나의 行을 부디 조건 속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기미를 볼 수도 있고 단사에서 나온 문왕이나 기자처럼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역에서 신중하라는 것은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하였지요. 자기 인식을 확신하고 맹신하면 경솔함을 부르고, 경솔하면 때를 간과하기 쉽습니다. 또한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질문하지 않기 때문에 무명에 빠져 사는 것일테구요. 어두울수록 신중함으로 깨어 있기입니다. 또한 밝음이 상하여 주위가 온통 어두울 때를 살아가는 지혜는 억지로 불을 밝히려 들지 말고 어둠을 겪어 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상전에서 군자는 ‘밝음이 땅속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무리를 대할 때에 어두움을 써서 밝게 한다(用晦而明)’고 하였지요. 어둠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쌤은 쨍하게 햇볕을 비추듯이 사람을 몰아세우거나, 앞장서서 자기 스스로 잘났다고 등불이 되지 않는거라 했습니다. 어두움에 묻어 가서 모른체 하기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무명속에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묻어가되 밝아지는 것이니 어두울수록 군자처럼 공부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집안의 도를 말하고 있는 풍화가인괘입니다. 家人은 집안사람으로 '여자의 바름이 이롭다(利女貞)'하여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는 괘입니다. 가인에서 집안이란 우리시대에서 정서로 똘똘 뭉치고 위계가 분명한 핵가족 개념이 아니라 집안이란 내부 공동체를 뜻하는 것으로 내부의 질서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괘인겁니다. 공부공동체건 마을공동체건 모든 조직은 외부와 접하면서 가는 것으로, 외부의 바람이 유입되어야 내부의 불길이 잘 타오르기도 하고, 불이 잘 타오르면 외부에 바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엄격함과 위엄이라 했습니다. 상전에서 바람이 불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고 군자는 ‘말이 사실적이고 행실에 항상함이 있게 한다(言有物而行有恒)’고 했습니다. 내부에서 위엄을 세우는 것은 나의 언행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가인괘의 상구효는 신뢰가 있고 위엄이 있으면 마침내 길하리라.입니다. 상전에서는 위엄을 갖춰 길한 것은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때문이라고 했지요. 이미 가인괘의 끝에 다다랐는데도 자기 수양의 치열함을 놓치 말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그렇고 내부공동체에서는 너무 밀접해서 서로의 감정이 뻔히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의 언행 하나 하나가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언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괘였습니다.

가인괘가 내부공동체 사람들의 질서와 화합을 다루는 괘라면 화택규괘는 대립과 분열을 다루고 있는 괘입니다. 대립과 분열이라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불과 물이 서로 상극이 되기 때문에 치성한 열을 내리고 살 수 있게 하듯이 대립이 있기 때문에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해 내기도 하고, 분열하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가 출현하기도 하는 것이죠. 사람도 사춘기 때 분열을 겪고 난 후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 것과 같다 했습니다. 대립과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런 일임을 알면 그 다음으로 양극단의 대립에 고착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립을 '화이부동'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지요. 규괘 상전에서 군자는 ‘같으면서도 다르게 한다(同而異)’고 했습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세상의 의견을 받아 들이면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규괘 초구는 사이가 나쁜 사람을 만나야(見惡人) 허물이 없을거라 합니다. 내 허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악인을 만나야 한다는 것인데, 이때 허물이란 의견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상대를 원망하고 감정의 찌꺼기를 쌓아두는 것입니다. 의견이 다른 것은 다를 뿐이라고 받아들여야지 미움과 원망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원한의 감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원한 심리를 르상티망ressentiment라고 한다지요. 사랑이나 원한 등 감정을 계속 반복하는 것으로 사건을 실체화하며 나의 조작으로 인과를 만들고 번뇌를 곱씹는거라 합니다. 또한 이것이 경향성이고 업이라 했지요. 우리의 경향성 즉 습관이 바뀔 때까지 약속을 이행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구요.  이상 수업후기를 마칩니다.
전체 1

  • 2020-10-31 19:39
    주역은 항상 구체적이 지점에서 시작하기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큰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고 하지 말 것.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경향성을 바꾸는 것은 작은 실천! 이것이 곧 공부인 것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