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1.22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0-11-18 14:54
조회
276
어느덧 아홉 시간 가까이 규문각에 있는 게 당연한 'Team-주역'입니다. 이번에는 아예 저녁을 냠냠 먹고 수업 연장전에 돌입했네요. 예상보다 늦게 끝난 수업에도 아랑곳 않고 예습까지 하는 열정!! (채운샘 왈 : 부담스러운 집단이야!!)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죠. 함께 하니까 같이 낭송하고 토론하고 수업 듣고 시험 보는 등등 이 많은 활동을 압축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간에 배운 <주역>의 지혜도 혼자서 잘되거나 어려움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움에 빠지든, 일이 잘 되든 인간은 항상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주역>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에 배운 괘는 택지췌(澤地萃), 지풍승(地風升), 택수곤(澤水困)입니다. 각각 대중의 운집, 성장과 전진, 곤란한 상황을 상징합니다. 살면서 계속해서 부딪히는 이 일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지혜를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지요~!

택지췌는 못 아래에 땅이 있는 괘입니다. 이렇게 물과 땅이 함께 있는 괘로 지수사와 수지비, 지택림이 있지요. 땅과 물은 모두 아래로 처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서로 친밀한 관계를 이룹니다. 따라서 주로 사람들이 서로 모이는 상황을 상징했지요. 물 중에서도 큰 물을 상징하는 택(澤)이 땅 위에 올라가 있는 택지췌의 경우 그 결집 규모가 큽니다. 대중의 결집! 중구난방, 오합지졸이 그래도 한 자리에 모였으니 군주는 뭔가를 해 볼만한 동기와 여력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갈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단결한다 싶으면 어느새 흩어져 버리죠. <맹자>의 고자 상편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지며 출입함에 일정한 때가 없고, 그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하니, 오직 마음을 말하는 것이로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그럼 사람 마음은 어떻게 잡을지? 췌괘에서는 우선 제사와 같은 큰 행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나누는 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굶주리게 하면 그들은 바로 폭도로 돌변하기 쉽지요. 따라서 췌괘의 핵심은 풍요롭고 후덕함[豊厚]을 제대로 쓰는[用]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죠. 대상전에서는 군자가 "무기를 소제하고 불우의 사태에 대비한다[除戎器 戒不虞]"고 나옵니다. 대중은 군주의 권력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해체합니다. 따라서 군주는 대중의 양면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췌괘입니다.

지풍승은 이름이나 괘상이나 모두 상승의 괘입니다. 바람[風]은 나무를 뜻합니다. 지풍승괘는 나무가 땅을 뚫고 쑥쑥 자라나는 모양이죠. 언뜻 보면 참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승괘의 '좋음'은 어디까지나 군자에만 해당됩니다. 소인에게 승괘가 나오면 오히려 거꾸러지는 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군자는 상승기운을 탈 때 어떤 태도를 지닐까요? 승괘의 대상전에서 군자는 "덕을 순히 하고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한다"고 나옵니다. 군자는 상승세를 타고 있을수록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서 단계를 건너 뛰려고 하지 않는 것! 승괘의 나무가 그렇게 주의하고 성실하게 올라오면, 구삼효는 빈 고을에 올라가는 것처럼 순탄하게 갈 수 있다고 나옵니다. 군자의 덕은 어디까지나 지성(至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승괘는 계속 말하는 것이죠. 군자는 오로지 종일건건 자강불식(終日乾乾 自强不息)한다! 어떤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사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상황이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휩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택수곤괘는 드러난 못에 물이 말라버린 상황을 뜻합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려면? 곤괘의 괘사는 대인(大人)이 되는 것이 조건이라 말합니다. 대인을 만나면 이롭다거나 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대인에게 곤괘의 어려움은 오히려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기회가 됩니다. 곤괘의 어려움은 어디까지나 소인의 어려움이죠. 소인은 상황의 영향을 받아 못이 말라버린 것 같은 어려움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맙니다. 그러나 대인은 어려움 앞에서 흔들리는 대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더 성실하게 추진하여 완수합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덕을 놓지 않고 밀어붙이는 역량! 이것을 발휘하는 자가 대인이고 군자이며 곤괘가 생각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조건인 셈이죠. 군자가 이렇게 어려움 앞에서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나 이윤을 추구하는 대신 내면의 덕을 쌓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인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윤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돌아오면 연연하게 됩니다만, 군자는 그렇게 외부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내면의 덕을 갖춘 것이죠. 그렇다면 군자의 역량이라 할 수 있는 덕이란 뭘까요? 그건 아무리 어려워도 타자와 만나고 부딪치며 공통적인 것을 형성할 수 있는 관계의 힘 같습니다. 곤괘의 효는 곤란함을 혼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가령 자기와 응하는 초육효와 응하려고 해도 구이효에 막혀 부끄러움에 처하고 맙니다. 또 구오효는 아래위로 함께 하는 이가 없어서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 각 효들이 할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그저 느리고 고된 만남이지만 바르게 관계를 추진하는 것뿐이죠. 혼자서 어려움을 빠져나올 수는 없다! 이것이 <주역>의 주된 메시지 중 하나인 것입니다.

<주역>에서 세 가지 지혜를 얻은 팀-주역은 저녁을 먹고(!) 들뢰즈의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에 대한 수업을 들었습니다. 들뢰즈가 마지막으로 쓴 이 글은 드러난 것은 각자 자기 고유의 잠재적인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혼자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는 괘와 효들의 관계를 떠오르게 하지요. 들로즈는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일방향적이지 않고 지속적인 교환 관계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는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변화는 외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늘 내재하고 있다가 펼쳐지는 것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우리가 변화나 정체에 대해 전전긍긍하거나 휩쓸릴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 계속해서 변화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 이를 생각하는 것이 <주역>을 읽는 한 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은 井, 革, 鼎괘 읽고 정리해 옵니다.

<시몽동, 개체화 이론의 이해>는 140페이지부터 시작하는 '2. 정신적 개체화' 챕터를 읽어옵니다.

간식은 정옥샘


일요일에 만나요//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