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2.27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12-22 01:16
조회
225
여러분, 드디어 괘가 두 개만 남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수화기제와 화수미제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요. 1년간 뭘 했던가 돌아보면, 64괘를 읽었노라 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그 전야제(?)인 이번 시간에는 무려 여섯 괘를 읽었습니다. 중푼손, 중택태, 풍수환, 수택절, 풍택중부, 뇌산소과...@_@ 이 여섯 괘의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중풍손(重風巽)은 '공손하다', '낮추다'라는 뜻입니다. 바람은 항상 자신을 낮추기에 어디로든 들어갈 수 있지요. 그래서 들어감(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공손함에 해당하는 괘를 하나 배웠습니다. 바로 지산겸(地山謙)이죠. 자기를 낮추는 '손'과 '겸'은 어떻게 다를까요? 겸은 상황과 연관하여 양보한다는 의미가 강하다면, 손은 자기를 낮추어 누군가에게 소속되고 들어간다는 의미가 강하죠. 그런 점에서 손이 더 유약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점괘로 손이 나오면 시험에 합격하거나 돈이 들어오는 등의 의미가 된다니, 의리주역과 점서로서의 주역은 확실히 다른 면이 있지요.

손괘가 말하는 것은 한 마디로 '공손함에도 도(道)가 있다'입니다. 그 도란 무작정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따를 바에 대해 생각하고 알아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너무 자기를 낮춰 버리면 편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낮추는 것을, 손괘는 경계합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초육효입니다. 초육은 가장 낮은 자리인데다 유약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나아갈까 물러갈까(進退) 갈팡질팡 하기 쉬운 자리죠. 그래서 초효는 '무사의 바름(武人之貞)'을 가지는 것이 이롭다고 충고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기 중심을 가지고 굳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공손함이란 상황에 따라, 주체에 따라 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겁니다.

중택태(重澤兌)는 '기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이고, 좋다고 생각하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주역에서는 기쁨이라고 다 같은 기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태괘는 '기쁨의 도'를 말합니다. 그때 이 기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쁨을 감각적 차원이 아닙니다. 태괘에 따르면, 도가 아닌 것으로 기쁨을 구하면 간사함과 아첨이 된다고 말합니다. 간사함과 아첨이 나쁜 이유는 그것이 거짓이고 도덕적이지 못한 것을 떠나 그것을 하는 사람이 기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외부에 대한 두려움에 예속되고, 그럼 구차하게 아첨하거나 간사해집니다. 그럼 아첨을 듣는 사람은 물론 하는 사람도 편안하지 못하고, 결국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되겠죠.

태괘는 마음에 감하는 바가 있어서 어려운 일을 해도 기쁜, 마음으로부터의 기쁨을 권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을 구성하려면? 태괘의 대상전은 '붕우강습(朋友講習)'이라 합니다. 기쁨은 감각적 쾌가 아니라, 감정적 동요가 없는 편안함인데, 그런 편안함을 구성하려면 서로 그런 비전을 공유하는 친구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이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 지속적인 기쁨을 형성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안 그러면 인간은 언제든 감각적 쾌락, 자신에게 좋은 말, 달콤한 말에 금방 넘어가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쁨은 당장 좋을지 모르지만 지속적이지 못하고, 무엇보다 그것이 가셨을 때 아무래도 '현타'가 쎄게 오지요. 이것은 성인이나 범인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태괘의 구오효는 군주의 자리인데다 양강한 힘이 왔으므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괘입니다만, '양을 해치는 자를 믿으면 위태롭다'라고 경고합니다. 이 괘의 주를 보면 '성인도 소인이 얼굴을 좋게 바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하죠. 이렇게 보면 감각적 차원의 기쁨은 참 무섭습니다. 성인조차도 금세 자기를 내맡겨 버리고 마니까요. 따라서 기쁨에도 경계와 도가 필요하다고, 태괘는 말합니다.

기쁨 다음에 오는 것은 흩어짐입니다. 풍수환(風水渙)입니다. 환괘는 흩어진다는 의미죠. 바람이 물 위로 불어 고여 있던 물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양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 괘의 괘사에서는 왕이 종묘에 서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묘사합니다. 이런 괘사는 이전에 택지췌괘에서도 나왔죠. 췌괘는 흩어지려는 마음을 모으고 사람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왕이 제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환괘는 조금 다릅니다. 환괘는 이미 흩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새로 얻는 것이 관건입니다. 따라서 신진 세력에게는 길한 점괘라고도 해요. 새로이 세력을 규함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죠. 그러기 위한 왕의 제사입니다. 맹자는 백성을 얻으려면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과 같으니, 그 마음을 얻는 방법은 백성이 좋아하는 것은 모아주고, 싫어하는 것을 베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이루 上 : 孟子曰 “桀ㆍ紂之失天下也, 失其民也; 失其民者, 失其心也. 得天下有道: 得其民, 斯得天下矣; 得其民有道: 得其心, 斯得民矣; 得其心有道: 所欲, 與之聚之, 所惡, 勿施爾也..)

환괘는 어쨌든 모이는 것을 우선시 하는 괘입니다. 이리저리 사람들이 흩어지려 할 때, 누가 됐든 그와 힘을 합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지요. 환의 시대에는 일단 무리를 만들 수만 있으면 어쨌든 길한 것입니다. 가령 구이효를 보면 "환의 때에 안석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안석은 괴고 앉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의 때는 어쨌든 평상시는 아니죠.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드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고 주력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따라서, 구이효가 구오효를 놔두고 초육과 합하는 것을 다른 괘의 경우는 좋지 않다고 하겠지만 환의 경우는 후회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어 육삼효는 환의 때에 어떻게든 자기 몸을 지키는 모습입니다. 흩어지는 때일수록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 서로 응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환괘가 말해주는 흩어지는 때의 도리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수택절(水澤節)괘입니다. 우리는 여러모로 '절(節)'이 안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같은 모토가 대표적으로 '절'이 없음을 말해주지요. '얼심이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인간이 어쨌든 하려고 하면 된다고 하는 인간중심적인 오만함이 깔려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자연에 사시사철이 있듯 인간에게도 어떤 한계와 '절'이 있지요. 그것을 알고, 자기 그릇을 볼 줄 안다면 우리는 맺고 끊음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절'이란 뭘까요? 우리는 절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자기한테 왜 좋은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외부에 휩쓸려서 하게 되는 금욕이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요. 절괘는 절제의 도를 말하면서, '괴로운 절은 정고히 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괘사가 꽤 폐부를 찌르는 말이지요. 절제 하면 인간이 가장 쉽게 처하게 되는 폐단을 알고 이렇게 지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절괘가 말하는 절제의 도는 어디까지나 편안함,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경지에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감정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제죠. 가령 육사효는 재상의 자리에 있고 군주에 가장 가깝지만 자신을 굽힐 줄 압니다. 물은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낮은 곳을 향하면서도 편안할 수 있지요. 이렇듯 절제는 자신의 그릇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괘는 풍택중부(風澤中孚)입니다. 괘상을 보면 중간 3,4효가 음효로 비어있고 1,2,5,6효가 양으로 꽉 차 있는 형상이죠. 빌헬름은 부(孚)를 알 속에 새끼가 있는 글자로 보고, 중부괘를 알의 부화로 표현했습니다. 안이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어떤 힘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강도를 말합니다. 중부는 그 엄청난 강도의 믿음의 괘죠. 괘사를 보면 "돼지와 물고기까지 믿게 하는 것"이 중부라고 합니다. 동물들까지 믿게 할 정도면 모든 것이 신뢰하게끔 하는 태도겠죠. 그럴려면 엄청 성실해야 할 것이고요. 그래서 중부괘의 키워드는 성실함[誠]이기도 합니다. 이때 성실함은 계속 뭔가를 낳고 낳는 자연의 활동과 연관됩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분별없이 작동하는 것. 이 성실함은 자기 혼자서 결심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육사효를 보면 반드시 그 짝이 있어야 한다고 나오죠. 줄탁동시! 인간이 내적진실성의 역량을 기르려면 안에서의 노력과 함께 밖에서 쳐주는 힘 역시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뇌산소과(雷山小過)는 택풍대과를 떠오르게 합니다. 대과괘는 '오버에는 오버로' 라는 인상을 남겼지요. 본말이 약하게 생긴 괘상을 본 성인은 자기 본분을 넘어서라도 그 상황에 개입해 일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중(中)을 지키는 도리죠. 소과괘는 어떻게 보면 대과괘보다는 덜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음이 양보다 많고, 어쩐지 소인의 도리가 상식이 된 상황이 되어버렸죠. 이런 소과의 때, 군자는 사소해 보이는 일을 지나칠 정도로 경계해야 합니다. 이때 소과라는 괘 이름은 작은 것들이 지나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 과하게', '작은 것에 지나치게' 라는 의미도 됩니다. 작은 것에 지나칠 정도로 바르게 해야, 음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효사들은 거의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구삼효는 소인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방비하지 않으면 흉하다고 엄포를 놓지요. 소인의 태도가 상식이 된 때에, 정말 상(常)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상식을 따라가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소과괘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도리 같습니다.


에세이에 대해 공지 : 에세이는 두 종류를 씁니다. 하나는 내가 인생의 경계로 삼을 괘를 가지고 쓰는 에세이 입니다. 대략 3~4장 정도 분량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질문을 가지고 점을 쳐서 나온 괘를 해석하는 에세이 입니다. 일종의 실전편, 해석연습이랄까요. 이건 2장 정도 쓰면 됩니다. 의리주역과 점서로서의 주역은 어떻게 다른지도 신경 쓰면서 쓰면 되겠습니다. 점을 칠 때 중요한 건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는 행위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확신을 갖지 못한 일에 대해 질문하고 괘를 얻어서 해석해 볼 것! 이것이 점의 원칙입니다. 어느새 12월도 절반이 지났고, 주역 에세이 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습니다~_~ 조금씩 준비해 나갑시다~



다음 시간에는 수화기제와 화수미제 읽고 정리해 옵니다.

내 마음의 괘+점쳐서 얻은 괘가 어떤 것인지도 알아옵니다.

괘 시험 + 괘 이름 퀴즈 있는 거 잊지 마시고요~


간식은 태미샘.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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