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7월 5일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7-09 12:59
조회
94
드디어 이슬람으로 본격적인 돌입이 시작됐습니다. 라고 하면서 정작 늦게 후기를 올려서 죄송합니다. (_ _) 앞으로 금요일까지 공지를 올려놓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카렌 암스트롱의 《이슬람》 2장까지 읽은 걸 바탕으로 이슬람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익혔습니다. 채운쌤은 우리가 낯선 것을 받아들일 때 두려운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름다운 것으로 대상화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이슬람에 대한 평소 우리들의 편견 같은 것이 있었을 텐데, 《이슬람》을 통해 우리의 피상적인 편견들을 교정하고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너무 낯선 이름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정리가 잘 안되더군요. 우마르, 우스만, 알리,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이 정도는 그래도 어떻게 외울 수 있었는데, 수많은 이븐들 그리고 하디스, 하즈, 하디자, 히즈라, 샤리아, 지하드 등등은 이게 이건가, 저건가 계속 헷갈리더군요. 다음 시간 시험이 걱정되는군요. ^^;; 그래도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모두들 힘을 냅시다~!

다음시간 공지하겠습니다. 카렌 암스트롱의 《이슬람》 끝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시험도 있으니 각자 열심히 노트를 만들어 오시길 바랍니다. 후기는 매주 돌아가면서 쓸 예정이에요. 이번에는 제가 공지 겸 후기를 합쳐서 올립니다. 후기는 오전에 토론한 것을 중심으로 오후의 강의를 정리해주시면 되요. 이와 별도로 철학, 역사, 예술 각 팀에서도 후기를 써주세요. 간식은 지은 누나와 건화형에게 부탁할게요~

채운쌤이 이번 주 목요일 지방에 강의가 있으셔서 오후 튜터 강의를 팀별 세미나로 대체하고, 저녁에 영화《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봅니다. 등산은 7월 27일 금요일 8시까지 청계산으로 잠정적으로 확정이 됐습니다. 그럼 목요일에 봬요!

토론은 각자 《이슬람》을 읽고 느꼈던 것, 재밌었던 것, 인상적인 것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있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폭력과 약탈을 용인하는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일단 지금 우리는 폭력이란 말을 들으면 나쁘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하지만 카렌 암스트롱은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이 약탈 원정인 가주(ghazu)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들의 생존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역을 하거나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약탈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함마드가 본격적으로 교리활동을 시작하고 세력이 형성되자 무역이 끊기는 등 견제를 받게 됐습니다. 아사하는 상황까지 일어나자 무함마드는 약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따라서 그들의 약탈을 단지 선과 악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삶의 영역의 일부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슬람이 점점 영토를 확장하고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커져가는 공동체를 감당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사람들과 인두세를 지불하고 보호를 받는 딤미(신민)가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약탈할 수 있는 영역이나 세금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사막을 벗어나 해외로 가주를 떠나게 된 것이죠.

다른 하나는 무슬림들이 정치사회적 실천에 있어서 적극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회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분리합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 해결해야 하고, 종교는 개인의 신실함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무슬림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는 것은 곧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과 결부되었습니다. 카렌 암스트롱이 서문에서도 말했듯이, 이슬람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신의 존재를 찾으려했죠. 신은 다른 곳에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신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코란은 단지 신의 말씀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실천해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실천적 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코란은 무슬림들에게 따라야 할 지침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해주는 철학서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정확한 건 《꾸란 이펙트》를 읽는 철학팀에서 다뤄 주리라 생각합니다.ㅎㅎ) 이밖에 인상적인 내용으로 무하마드가 신성시되지 않고 똑같은 사람으로 공동체에서 생활했다는 것, 타종교의 사람들도 이슬람 안에서 같이 생활했었다는 것, 기독교처럼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실천을 강요하지 않다는 것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는 시아파와 순니파의 관계를 이슬람 내부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시아파와 순니파의 관계는 4대 칼리프인 알리의 사후에 형성됐던 그때와 달리 자본이 개입하는 것부터 여러 다른 지점을 같이 생각해야겠죠.

오후에는 지금의 이슬람권, 중동권을 살펴보면서 고대 페르시아 제국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일대를 살펴봤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이든 중동이든 모두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정복전쟁을 벌였다는 점입니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파키스탄부터 시작해서 이란, 이라크를 거쳐 터키까지 정복한 다음 지중해 건너에 있는 나라까지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20살에 제위에 오른 뒤에 당시 여러 강대국들을 정복하며 죽을 때까지 정복전쟁을 벌입니다. 채운쌤은 역사가 보여주듯, 인간의 본성은 모험과 폭력에 기반한다고 하셨습니다. 2차 세계대전까지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지금에 와서 전쟁이 종식된 것이죠. 우리는 이슬람에서 폭력이 사용되는 것을 이상하게 봤지만, 오히려 자본에 의해 전쟁이 거세된 지금이야말로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보면 이질적으로 느껴지겠죠.

또 재밌었던 것은 중동과 이슬람권, 아랍권이 지시하는 지역이 다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중동은 지역을, 이슬람은 종교를, 아랍은 정체성과 관련됩니다. 중동은 인더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을 중심으로 대략 동으로는 이라크부터 서로는 모로코 일대의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 중 이란은 중동, 이슬람권에 해당되면서도 스스로를 아랍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란은 이란어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채운쌤은 왜 자본주의가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와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무함마드를 비롯해 초기 무슬림들이 모두 상인이었고, 이런 점에서 이슬람은 상인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에서 가난한 자, 착한 자, 유약한 자가 되는 것과 달리 전혀 금욕적이거나 고행을 자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자본주의와 미묘하게 어긋납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관계를 맺었죠. 채운쌤은 이슬람의 특징으로 제도와 법이 코란에 근거하고, 코란은 ‘정의로움’을 지향한다고 하셨습니다. 교리가 사회적으로 실천적인 것도 이 정의로움이 관련됐기 때문일 텐데, 이때 ‘정의로움’이 어떻게 평화로운 사회의 건설과 이어지는지 공부해야겠죠. 공부할 게 너무너무 많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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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0 10:30
    반드시 자신의 언어를 실현시키려는 자들이라니! 후덜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