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NY 4학기 8주차(12.05)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12-03 17:54
조회
300
이제 에세이 쓰기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방향을 못 찾고 헤매고 있네요... 헤매는 만큼 다른 길이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에세이를 쓰면서 부딪치는 문제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방식의 문제 설정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문제’라고 알고 있는 지점에서 글을 시작하려니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을 맴돌게 되는 것이죠. 자유가 되었건 자아가 되었건, 제가 이미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문제 삼다보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미 문제이고 잘못이라고 알고 있다면 당장에 그러한 습관이나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어야 할 텐데 다 알면서도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왜 공부하는 걸까요? 분명 공부에 답이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니체를 열심히 읽고 그의 사유와 개념들로 무장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또다시 어떤 문제에 봉착할 것입니다. 진리로 무장하여 어떤 사사로운 욕망이나 우발적인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삶의 태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자신에게 닥친, 혹은 앞으로 닥칠 고통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고통을 모면할 수 있는 수단을 찾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손에 넣기 위해 안달복달하고, 자신의 나쁜 습관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를 계발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제도를 개선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들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철학적인 태도는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는 문제가 없는 상태를 꿈꾸지 않고 문제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게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문제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을 단념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체념적 허무주의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문제 상황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겪어내는 방식입니다. 어떻게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겪어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철학은 인식을 문제 삼습니다. 《아침놀》에서 니체는 ‘병’ 자체가 아니라 ‘병에 대한 사상’이 병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예속적인 상태에 빠트리는 것은 고통이나 병 그 자체가 아니라 병에 대해서 우리가 형성하고 있는 상식적인 인과들이라는 것이죠. 병을 악으로 규정하고 건강한 상태를 이상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를 불완전하고 부정적이고 무엇인가가 결여된 상태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이 우리를 병에 일방적으로 규정당하도록 합니다. 스스로 형성한 기억,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상식적 인과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약함이나 무기력함, 어리석음이란 사실 자기 전제와 기억, 습관적 가치평가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뻣뻣함인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다르게 아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채운샘은 과제 코멘트 중에 ‘괴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들뢰즈(와 니체)에게 철학이란 표준과 정상을 넘어가는 것이라고요. 이때 괴물이란 정상에 대해서 성립하는 비정상이 아니라, 사회적인 코드들 그리고 그것을 내면화하여 형성한 우리의 익숙한 규정들을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괴물-되기로서의 철학. 이것을 우리는 우리의 수준에서 실행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해결의 익숙한 구도 자체를 교란시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의 한계까지 이르려는 시도들을 통해서요.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가 이렇게 어렵고 이상한 일을 함께 하는 독특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저는 이쯤 하고 어떻게 익숙한 진단을 되풀이하거나 또 다른 진단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이 질척질척한 의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괴물이 되는 한 주가 되셨길 바라겠습니다.

벌써 8주차입니다. 9주차가 에세이 초고발표인 만큼, 이번에는 6~7장 정도를 써 오셔야 합니다(제가 제일 문제네요).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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